에로비디오의 요상한 제목과 낯뜨거운 껍데기 포스터는 한번이라도 더 그쪽으로 손길이 가도록 유도하는 데에는 효과적이나, 빌리는 사람과 반납을 요구하는 사람에게는 적잖은 민망함을 주는 것 같다. 텅빈 가게에 들어갔을 때 그 아저씨는 분명히 에로진열장 근처에서 재빨리 무언가를 낚으려 하셨던 것 같다. 그러나 내가 설렁설렁 그 근처를 배회하자 내 눈치를 보시더니 결국 패배를 인정하고 나가셨다.
물론 프로들은 그런 눈치를 보지 않는다고 한다. 어느 영화전문가의 말에 따르면 에로비디오를 상습적으로 빌리는 사람들은 절대로 에로비디오만 빌려보지 않는다 하였다. ‘에로비디오와 타르콥스키’식으로 꼭 예술영화를 위에 한두개 얹어서 같이 빌린다나? 여하튼 아저씨가 나가신 후 나는 슬금슬금 에로코너로 가서 잽싸게 두개를 골랐다. 그때는 업무상 비디오의 껍데기까지 필요했고, 나는 의아해하는 아르바이트생의 눈빛을 피해 신경질적으로 발을 구르며 그렇게 서 있었다. 결국 그는 말없이 검은 봉지 안에 제목이 안 보이도록 곽들을 넣어주었고, 나는 비디오 가게의 봉지들이 대부분 검은색인 이유가 에로비디오 고객에 대한 배려 때문일 거라는 확신을 굳혔다.
그리고 며칠 뒤에 반납을 요망하는 전화가 왔다. 여기저기서 여러 개의 비디오를 빌려놓아 어느 비디오인지를 헷갈려하는 나에게 아르바이트생은 “비디오… 빌려가신거…”라며 말끝을 흐릴 뿐이었다. 그는 “<빠러2>랑 <여성동무 으뜸 가리개>, 곽까지 같이요”라고 말하기엔 너무 소심했던 것이다. 에로비디오의 곽과 그 제목만이 언제나처럼 당당할 뿐이었다. 손원평/ 자유기고가 thumbnail@freecha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