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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천국제판타스틱영화제 특별전①] ‘무서운 여자들: 괴물 혹은 악녀’에서 놓치지 말아야 할 영화들

페미니즘이 호러영화를 구원하리니

<더 빨리 푸시캣, 죽여라 죽여>

지난해 ‘강남역 살인사건’ 후, 살인자의 동기가 ‘여성혐오’였다는 것에서 촉발해 그 파장으로 미소지니(misogyny, 여성혐오)에 대한 담론이 형성됐다. 인터넷 커뮤니티에서는 ‘메갈리아’의 미러링 전략에서 파생된 사이버 설전이 페이스북 댓글에서까지 팽팽히 벌어졌다. DJ DOC가 <수취인분명> 노랫말의 ‘여혐’ 비판과 관련해 촛불집회 출연이 무산되었다 다시 성사된 일도 있었다. 이 모든 일을 둘러싼 “담론적 갈등 상황”과 페미니즘적 문화해석에 대한 고민이 시원히 해소되지 않고 있었다. 이것이 늘 남아 있다가 어느 날 밤 문득 여성과 호러를 연결시켜, ‘공포스러운 여성’을 영화제에서 특별전 주제로 삼아야겠다는 생각이 떠올랐고, 바로 기획서를 썼다. 호러영화도 여성혐오적이고 저급한 문화로 비판받아온 측면이 있다. 그런데 <캐리>(1976)나 <더 워먼>(2011) 같은 영화는 엄청나게 전복적이란 말이지. 호러영화 속에서 여성의 재현 문제를 잘 큐레이팅해서, “페미니즘적 시각을 통해 호러영화의 문화적 지위를 회복시키자”라는 게 기획의도였다.

<더 워먼>

여성의 생명적 특성과 공포

우선 작품 선정 과정에서 기획안의 피드백과 추천을 주유신 교수, 손희정 평론가, 동료 모은영·남종석·김봉석 프로그래머로부터 받았다. 손희정은 이 특별전과 깊은 연관이 있는 바바라 크리드의 <여성괴물>을 번역한 문화평론가로서, 조혜영 평론가와 함께 메가토크 패널로도 참여한다.

월경혈, 원시성, 자연에 가까운 존재라는 여성의 생명적 특성과 공포가 연결된 작품들을 보자. 스티븐 킹과 브라이언 드 팔마를 일약 대가의 반열에 올려놓은 걸작 <캐리>에서는 사춘기의 통과의례를 겪는 소녀가 괴물이다. 광신도 어머니 밑에서 자란 캐리 화이트는 고등학생이 되어서야 초경을 하고 동급생으로부터 놀림을 받는다. 동급생들은 짜고서 캐리를 학생무도회에 퀸으로 뽑아 무대에서 최고의 순간을 맞을 때 돼지피를 쏟아붓는데, 이 피는 수치와 모욕을 의미함과 동시에 캐리의 초자연적 힘을 일깨우는 계기가 된다. 이 피와 함께 캐리의 폭주가 시작된다. 여성의 섹슈얼리티를 악의 근원이며 월경을 죄의 징표라고 보는 어머니는 아버지의 질서를 체화하고 있다. 두 사람이 처벌받고 우리가 안심할 때 허를 찌르는 마지막 장면을 놓치지 말자!

<더 워먼>은 야성과 비문명에 속한 여성괴물을 그린다. 마지막 야생의 여자를 포획한 변호사가, 지하벙커에 여자를 묶어두고 강제로 문명화시키려는 과정에서 맞는 잔혹한 파국을 다룬다. 선댄스영화제에서 많은 남성 관객의 항의를 받은 문제의 영화. 문명이라는 방패로 원시와 야만에 가해진 폭력을 합리화하는 남성 가부장의 폭력성과 그 대물림에 대해 통렬한 비판을 가하는 작품이다. 여성의 원시성과 비문명성을 다룬 또 하나의 작품 <이어도>(1977)는 김기영 감독의 영화 중에서도 가장 시대를 앞서간 괴작이다. 근대와 남성의 상징계보다 근원적인, 아마도 줄리아 크리스테바가 봤다면 ‘기호계’적인 세계 그 자체라고 할 이어도와 그 속의 여성들의 신비로운 힘의 묘사는 영화사 속에서도 독보적인 지위를 차지할 만하다.

거세하는 여성/모성의 공포와 연관된 영화들도 있다. 손희정은 거세하는 여성괴물의 대표작으로 한국영화 <어미>(1985)를 추천했다. 윤여정이 인신매매를 당한 딸의 복수를 위해 칼을 드는 어머니를 연기한다. 어미의 복수의 대상이 권력과 시스템이 아니라 응징받아 마땅한 인신매매단이라는 점과 결국 폭주하다가 처벌을 당하는 여성괴물이라는 점에서는 안전한 결말이지만, 생생히 묘사된 ‘거세하는 여성괴물’의 재현은 기념비적이다.

모은영이 ‘강추’한 미이케 다카시 감독의 <오디션>(1999)은 42살 홀아비 아오야마가 신붓감을 찾기 위해 오디션을 실시하며 시작한다. 4천명의 후보자 중 신비롭고 순종적인 24살 야마사키 아사미가 발탁되는데, 그녀는 겉보기처럼 아름답고 순종적인 인물이 아니었다. 무라카미 류의 소설이 원작이지만 미이케 다카시의 독창성이 돋보이는 고문 장면이 압권이다. 오디션은 카메라의 권력과 남성 시선의 권력이다. 이는 후반부에 아사미의 응징을 통해 눈이 찔리고 다리가 잘리면서 참혹하게 거세된다.

<시리얼 맘>(1994)은 겉으로는 깨끗하고 아름답고 상냥한 존재이지만 그 속에 어둡고 더럽고 불온한 살인자의 본성을 갖고 있는 이중적인 모성을 그린다. <시리얼 맘>의 후반부는 법정극의 형태로 전환되는데, 시리얼 맘이 단죄의 대상이 아니라 오히려 인기인이 된다는 설정이 흥미롭다. 작품 이후에 실제로 O. J. 심슨 사건이 일어났는데, 재판과정 자체가 계속해서 조명되고 대중매체의 주목을 받는 현상이 나타났다. 존 워터스 감독의 통찰력이 보이는 지점이다.

<어미>

마지막으로 물리적인 힘을 지닌 센 여성 캐릭터들을 볼 수 있는 영화들을 골랐다.

남종석이 <더 빨리 푸쉬캣, 죽여라 죽여>(1965)를 강추했다. 러스 마이어의 65년작인데 수전 손택이 이 영화를 페미니스트적이고 전복적인 영화라며 거론했다는 것. 러스 마이어 하면 저예산 섹스플로이테이션영화의 대부로 알려져 있지만 이 영화는 쿠엔틴 타란티노가 리메이크하고 싶어했고, (리메이크는 미완이지만) <데쓰 프루프>(2007)에서 오마주했던 작품. 섹슈얼리티를 강조하는 육체를 지닌 채 사막에서 종횡무진 자동차경주를 하며 하이힐로 남근을 후려차는 과격한 60년대 언니들은 지금 봐도 매력적이다.

김봉석은 <여죄수 사소리1-701호 여죄수 사소리>(1972)를 강추했다. 타란티노가 <킬 빌>(2003)에서 오마주했고, 주인공 가지 메이코는 <킬 빌>과 <킬 빌2>에 쓰인 주제가를 불렀다. 도에이라는 메이저에서 제작했다는 게 믿기 어려울 만큼 노골적인 일장기의 모독과 감옥 내 반란 등 무정부주의적인 태도나 실험적인 연출기법이 돋보인다. 감옥 내 사소리의 수난은 거의 예수의 수난을 연상할 만큼 억울한 여자의 결백함을 강조한다. 권력을 쥔 남자들은 누구 할 것 없이 나쁜 놈들로 나오고, 눈이 클로즈업되거나 공격을 당하는 등 거세의 이미지가 강조된다. 여성 죄수의 반란과 사소리의 단호한 응징에서 해방의 순간이 있지만 마지막에 사소리는 감옥으로 돌아간다. 무질서하고 전복적이고 불온한 기운을 잠재우는 결말이면서 2편을 예고하는 결말이다. 타란티노가 경배했던 사소리란 캐릭터의 매혹을 극장에서 볼 기회를 절대 놓치지 말기를.

존 카사베츠의 <글로리아>(1980)는 여성의 외피를 지니고서 남근적인 권력을 갖고 있는 여성의 이미지를 그린다. 시종일관 계속되는 추격과 보호하는 푸에르토리칸 남자아이 필과의 ‘밀당’이 영화의 중심축이다. 필은 강요된 남성성과 가부장적 권위 때문에 고통받는 아이이자 글로리아를 바라보는 눈이다. 필은 글로리아에게 호통을 치다가, 총으로 응징하는 것을 보고 나서는 사과를 하고, 성적인 대상으로 언급하기도 한다. 마지막에 필은 말한다. “당신은 나의 아버지면서 어머니면서 가족이면서 친구면서 여자친구다.” 이 말이 글로리아의 캐릭터를 설명하는 가장 적절한 말인 것 같다.

<이어도>

예술의 세계로 들어온 괴물

줄리아 크리스테바는 <공포의 권력>에서 공포영화에서 괴물의 정의를 ‘비천한 것’이라 하면서 이를 정화하는 것이 종교의 기능이었지만 이제 예술로 그것이 넘어왔으며, 공포영화가 그런 제의적인 역할을 한다고 말했다. 우리가 악마의 모습을 보지 않으면 신의 모습을 그릴 수 없고, 더러운 것을 보지 않으면 무엇이 더러운 것인지 모른다는 점에서 불결제의 자체의 목적은 상징질서를 강화하는 것이다. 하지만 그 과정에 카타르시스와 쾌락이 있다. 더럽고 역겨운 것을 보고, 인간과 비인간의 경계를 계속 건드리는, 그런 것이 판타스틱영화제의 역할이자 우리가 함께 통과해야 하는 제의라고 할 수도 있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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