왼쪽부터 다케다 유스케(베이스), 노다 요지로(보컬 및 기타), 구와하라 아키라(기타).
신카이 마코토 감독의 빅 히트작 <너의 이름은.>은 영화음악이 작품의 무드를 결정하는 영화였다. TV애니메이션의 오프닝을 연상케 하는 <전전전세>가 영화 전반부의 유쾌한 분위기를 미리 잡아준다면, 혜성이 이토모리 마을로 떨어지는 재난 상황이 주가 되는 영화의 클라이맥스는 8분57초간 이어지는 <스파클> 없이 결코 완성될 수 없었다. 관객의 감정을 고양시키는 이 곡들은 예전부터 신카이 마코토 감독이 팬이었다고 밝힌 일본의 록밴드 래드윔프스의 작품이다. 최근 《人間開花》 앨범을 발매한 후 아시아 투어 중인 래드윔프스가 한국을 찾았다. 지난 6월 9일과 10일 서울 공연을 마친 후 래드윔프스는 가사를 모두 따라 부르며 환호하는 한국 관객의 열정에 놀랐다고 말했다. 2015년부터 건강상 이유로 활동을 쉬고 있는 드럼의 야마구치 사토시를 제외한 래드윔프스 세 멤버와 나눈 이야기를 전한다.
-이번 한국 공연을 비롯한 아시안 투어 공연에서 <Lights Go Out>이나 <AADAAKOODAA> 같은 《人間開花》의 수록곡을 많이 만날 수 있었다. <너의 이름은.> O.S.T와 거의 비슷한 시기에 앨범이 발매됐는데, 언제부터 구상한 것인가.
=다케다 유스케_ 최종적으로 이미지가 완성된 건 지난여름 정도였다.
=노다 요지로_ O.S.T를 만들면서 갑자기 밴드 앨범 작업에도 가속도가 붙었다. 멤버 각자의 개별 작업이 늘어나서인지 밴드가 모여 함께 소리를 만들고 싶다는 마음이 역으로 커지더라.
-그렇게 각자의 일을 하다가 모여서 앨범을 만들어보니 예전과 달라진 부분도 있던가.
다케다 유스케_ 우선 드럼의 야마구치 사토시가 활동을 할 수 없게 돼서 각자의 역할 분담을 철저하게 나누는 게 중요했다.
노다 요지로_ 전반적으로 곡의 분위기도 많이 밝아졌다. 신카이 마코토 감독으로부터 “래드윔프스 데뷔 초창기의 러브송을 굉장히 좋아한다. 그런 느낌을 O.S.T에 넣어줬으면 좋겠다”는 요구가 있었다. 최근 5~6년간 사랑 이야기를 다루지 않았는데, 밴드의 옛 향수를 떠올리며 O.S.T를 작업하다보니 《人間開花》 앨범부터는 다시 남녀의 사랑을 이야기하게 되더라.
-영화 <너의 이름은.> 시나리오를 읽고 곡을 만든 후 영상을 구상했다고 들었다. 일반적인 영화 O.S.T 작업과는 완전히 다른 방식인데.
노다 요지로_ 처음 시나리오를 읽고 4곡 정도 먼저 만들었다. 이중 <전전전세>와 <스파클>도 있었다. 우리가 만든 곡을 들은 후 신카이 마코토 감독도 영화를 어떻게 만들어야 할지 비전이 보이기 시작했다고 얘기했다.
-신카이 마코토 감독이 래드윔프스의 열성 팬이었다는 사실은 유명하다. O.S.T 작업 이전에 래드 윔프스 기존의 특정 곡과 비슷하게 해달라고 주문한 게 있나.
노다 요지로_ 몇곡 정도 있었지만 비밀이다. (웃음) 한곡만 얘기하자면 <전전전세> 같은 경우 <너와 양과 파랑>을 깔아 가편집한 영상을 보여주며 이런 식으로 스피드감이 있었으면 좋겠다는 주문이 있어 탄생한 곡이다.
-<너의 이름은.>에서 가장 인상적인 대목은 아무래도 <스파클>이 깔리는 시퀀스가 아닐까. 혜성이 마을로 떨어지기 직전의 이미지는 넋을 놓고 바라볼 만큼 아름답고, 그때 깔리는 곡은 “운명이라든지 미래라든지 하는 말이 손을 뻗는다 해도 닿지 않는 곳에서” 하는 사랑을 담는다. 노래가 끝남과 동시에 끔찍한 재난 상황이 펼쳐지며 충격을 안긴다. 누군가의 재난이 어떤 이들에게는 아름다울 만큼 거리감이 있음을 보여줌과 동시에 우리가 지나쳤던 피해자들의 이름을 잊지 말자는 안간힘이 느껴지는 장면이다.
노다 요지로_ 만약 그 장면에 쓰일 거라는 걸 먼저 알고 곡을 썼다면 <스파클> 같은 노래는 절대 만들지 않았을 것이다. 시나리오를 읽고 느낀 이미지 그대로를 갖고 만든 곡이다. 나중에 감독님에게 혜성이 마을로 떨어지는 장면에 <스파클>을 튼다는 말을 전해 듣고 많이 놀랐다. 더군다나 극중에서 가사가 나오는 노래가 등장하는 건 스토리 몰입을 방해한다고 생각해서 개인적으로는 반대하는 편이었다. 하지만 감독님이 자신감을 갖고 진행했고, 완성본을 보고 굉장하다고 생각했다.
-영화음악가가 아닌 밴드로서 영화에 삽입될 곡을 만든다는 건 어떤 경험이었나.
노다 요지로_ 재미있었다. (웃음)
다케다 유스케_ 신선하지만 시행착오도 많았다.
=구와하라 아키라_ 예전에는 우리끼리 최종 결정을 내렸지만 O.S.T 작업은 감독이나 프로듀서의 판단이 중요하지 않나. 또 영화는 관객에게 잘 전달되는 게 중요하니까 우리가 생각했던 기준선과 다른 게 있었다.
-진짜 하고 싶은 것을 마음껏 하자는 방향을 가진 래드윔프스가 신카이 마코토 감독과 작업한 이후 달라진 것도 있나.
노다 요지로_ 우리가 하고 싶은 것만 몰두해서 하다보니 정작 음악을 듣는 사람의 입장은 잊을 수도 있다는 건 원래도 생각했던 부분이다. 처음으로 제작 과정에서 래드윔프스의 팬이라고 하는 감독님의 의견을 듣고 반영하면서 잊고 있었던 관점을 찾게 됐고, 이런 부분이 《人間開花》 앨범에서 많이 발현이 된 것 같다. 다른 멤버들에게 “혹시 이런 곡을 더 많이 만들었으면 좋겠다는 마음이 있었는데 그동안 말을 안 한 거 아니냐”고 물어보기도 했다. 밝은 곡도 하고 싶은데 내가 너무 어두운 곡만 만든 건 아닌지. (웃음)
다케다 유스케_ 그런 건 아닌데 《알토코로니의 정리》 앨범 때는 너무 어려웠다. (웃음) 가사도 어렵고 편곡도 어렵고. 그때 당시 요지로는 이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 음악을 만들자는 과학자의 마음으로 음악을 만들고 있었다. 그 또한 좋은 경험이 됐지만.
-이번에 발표한 싱글곡 <마지막 사랑에>에는 ‘평균수명 80년, 수면시간 7시간, 노동시간 10시간, 야근시간 월 10시간’ 같은 구체적인 숫자가 등장한다. 《人間開花》 앨범의 <Lights Go Out>에서도 너와 나 사이의 거리를 5인치라고 명시했다.
노다 요지로_ 다른 뮤지션들이 가사에 숫자를 어느 정도 사용하는지 잘 모르겠지만, 우리 곡에 숫자가 그렇게 많은가? (웃음)
다케다 유스케, 구와하라 아키라_ 많다. (웃음)
노다 요지로_ 그런가. (웃음) <최대공약수>를 만들었을 때도 그런 얘기를 들었는데, 특별히 의식하며 숫자를 쓰는 것은 아니다. 다만 숫자도 하나의 언어라고 생각하고, 수학을 원래 학창 시절부터 좋아하기도 했다. 이런 말은 들으면 그제야 ‘아 내가 숫자를 많이 쓰는구나’ 생각하게 된다.
-그럼 가사를 쓸 때 특별히 염두에 두는 부분이 있을까.
노다 요지로_ 평소 메모를 좀 많이 하기는 하는데 실제로 반영되는 경우는 별로 없다. 다만 논리와 감정의 밸런스를 의식하면서 쓰려고 한다. 감정적으로만 쓰다보면 감정과잉이 되어 자기 만족으로 끝나는 경우가 많고, 논리만 염두에 두면 재미가 없다.
-가사를 잘 쓴다는 평을 받는 밴드인데, 논리와 감정의 원천은 어디서 얻나. 독서?
노다 요지로_ 책은 전혀 안 읽는다. 하지만 어렸을 때 미국에서 살아서 영어를 할 줄 안다는 점이 언어를 냉정하게 바라보고 간결하게 사용할 수 있게 만드는 것 같다. 멤버들, 하나의 언어만을 사용하는 사람들, 2개 국어 이상의 언어를 사용하는 사람들과의 대화 양식이 모두 다르다. 그래서 가능한 한 순수하게 언어를 사용하는 가사를 쓰려고 신경 쓴다.
-동일본 대지진 추모곡도 꾸준히 발표하고, 가사에 사회 비판을 녹여내기도 한다. 동시대에 벌어지는 일에 목소리를 내는 밴드로서 요즘 특별히 관심 있는 세상의 이야기가 있나.
노다 요지로_ 트럼프 대통령이 당선된 미국이나 유럽이나 세계 전반적으로 우경화되고 자국 우선주의적인 방향으로 간다는 느낌을 받는다. 리버럴한 경향에서 일시적으로 이렇게 변한 건지, 아예 시대의 전환기를 맞이한 건지 자꾸 고민하게 된다. 어느 쪽이 됐든 뮤지션으로서 리버럴하고 혁신적인 존재이고 싶다. 50년 후, 100년 후에는 더이상 뮤지션이 혁신적인 존재라는 말이 통하지 않을 수 있지만, 나로서는 포기하고 싶지 않다.
-앞으로 다른 영화음악에도 참여할 의사가 있나. 다음 앨범에 대해서도 궁금하다.
노다 요지로_ 영화 <너의 이름은.>을 통해 해외에서 래드윔프스를 알게 된 사람들이 많아졌다. 때문에 다음 앨범에서는 영어로 우리의 감성을 전달할 수 있는 영어곡 비중이 많이 늘어날 것 같다. <너의 이름은.> O.S.T 작업은 1년이라는 긴 시간이 걸린, 하지만 그만 한 시간을 들일 가치가 있는 일이었다. 현재로서 구체적인 O.S.T 작업 계획이 딱히 있는 건 아니지만, 시간을 투자할만한 가치가 있는 작품의 제안이 들어온다면 얼마든지 하고 싶다.
<마지막 사랑에>와 <세뇌>
지난 5월 10일 발매된 래드윔프스의 싱글에 수록된 두곡, <마지막 사랑에>와 <세뇌>는 극과 극의 분위기를 담는다. <마지막 사랑에>가 밝은 사랑 이야기를 담았다면 <세뇌>는 강렬한 가사가 인상적인 사회 비판곡이다. 노다 요지로는 “<너의 이름은.> O.S.T와 《人間開花》 앨범에서 밝은 이미지의 곡을 많이 만들었기 때문에 그에 대한 반동으로 어두운 곡을 다시 편곡해 수록했다. 우리의 작업은 항상 그런 식이다. 최근에 래드윔프스를 알게 된 사람들이 우리의 양면을 다 알아줬으면 하는 마음도 있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