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화의 첫 페이지를 열면 일직선으로 뻗은 아스팔트 도로가 한 페이지 전체를 가득 매우고 있다. 시커먼 도로는 구불구불 내리막과 오르막의 연속이고 고개 너머 안 보이는 곳에는 독을 품은 까치 독사 같은 악의가 숨어 있는 것 같다. 그 도로의 갓길을 따라 걷는 소년의 뒷모습이 보인다. 소년은 고개를 숙이고 자신의 운동화만 바라보고 걷는다. 소년의 발걸음마다 작은 흙먼지가 풀썩 일어나고, 그의 발끝에 차에 치어 죽은 고양이의 시체가 걸린다. 보통 사람이라면 질겁하고 죽은 고양이의 주위를 맴도는 파리가 몸에 닿을까 화들짝 피하겠지만 이 소년은 죽은 고양이를 주워 옆구리에 끼고 집으로 간다. 짐승의 시체는 사후경직이 일어나 빳빳하게 굳어 있고 파리들은 도망치지 않고 소년과 시체 주변을 사납게 날아다닌다.
내가 어렸을 때 간혹 있었던 동네의 개구쟁이들도 죽은 짐승을 주어와 아이들을 질겁하게 하며 즐거워하는 일이 있었지만 그들이 옆구리에 죽은 짐승을 끼고 다녔던 경우는 없었다. 거의 모두 죽은 짐승의 꼬리를 엄지와 집게손가락만으로 집어서 들고 다녔다. 죽은 짐승를 마치 서류가방을 옆구리에 끼고 가는 것처럼 그린 괴상한 컷이 계속된다. 만화가는 그런 모습으로 걸어가는 주인공의 모습이 대단히 중요했던 것이다. 죽은 짐승을 옆구리에 끼고 집으로 가는 이 소년은 누구인가? 그리고 만화가는 왜 이렇게 그린 것일까?
소년은 20여년 후 연쇄살인범으로 검거되어 형무소에서 죽은 제프리 다머이다. 그리고 이 만화를 그린 이는 제프리 다머와 한 동네에 살면서 같은 중, 고등학교에서 소년 시절을 함께 보냈었던 더프 백더프이다.
신중한 취재와 꼼꼼한 묘사
죽은 고양이의 시체를 옆구리에 끼고 시커먼 도로의 갓길을 걸어가는 제프리 다머의 뒷모습으로부터 시작한 만화는 다머가 첫 번째 살인을 한 이후, 동네에서 친구에게 마지막으로 목격된 그날을 마지막 장면으로 끝맺으며 제목을 <내 친구 다머>라 붙였다. 연쇄살인범 다머가 아니라 “내 친구” 다머인 것이다.
중학교와 고등학교를 같이 다녔던 친구가 끔찍한 범죄를 저지른 장본인이라는 것을 알았을 때 작가는 참담함 그 자체였다고 한다. “왜 그런 일이 생겨났을까?” “왜 내 친구가 괴물 되었을까?” “친구가 괴물로 자라나고 있었을 때 나는 그에게 무슨 짓을 했던가?”
일러스트레이터로 신문사에 작품을 기고하며 살아가던 더프 백더프는 어느 날 신문사에서 기자로 일하던 아내에게 전화를 받는다. 지금 신문사에 난리가 났다고. 어떤 남자가 엄청나게 많은 사람들을 살해했고 그의 아파트에는 시체가 가득하며, 시체를 먹고 시체와 성행위까지 했다는 것이었다. 하지만 더욱 놀라운 것은 백더프와 같은 학교에서 같은 학년을 보낸 자라는 것. 백더프는 놀라며 누구냐 묻고 아내는 맞춰보라고 한다. 백더프는 처음으로 떠올린 사람은 고등학교 때 유명한 또라이였고 그의 이름을 말하자, 아내는 아니라고 한다. 백더프가 두 번째로 말한 이름은 “다머”였고, 아내는 맞았다고 한다. 전화를 끊고 주인공은 “다머 너 대체 무슨 짓을 저지른거냐?”며 망연자실해진다. 전화를 끊고 난 후 “왜 나는 다머의 이름을 두 번째로 떠올린 것일까?” “나의 친구는 왜 그런 괴물이 되었을까?”에 대해 고민하기 시작한 백더프는 다머가 교도소에서 살해되어 이 세상 사람이 아니게 되자 가슴 속에 꽉 막힌 무언가를 뚫어보자는 심정으로 만화를 그리기 시작한다. 그 후 20년 동안 작품을 그리고 지우고 또 그려서 세상에 내놓게 된다. 작가가 20년 동안 사람들을 만나 취재하고 자료를 검토하고 다머가 죽기 전에 했던 인터뷰를 샅샅이 훑으며 “열두 살 괴짜 소년이었던 제프리 다머가 머릿속에서 부글부글 끓어 넘치는 어두운 생각에 무기력하게 맞서는 10대가 되고, 급기야 인생이 송두리째 곤두박질칠 때까지 걸어가게 된 내리막길을 보여 주는 (<내 친구 다머> 11쪽)” 만화책을 만들어 낸 것이다.
이 책에 실린 모든 장면에는 각주가 붙어 있다. 만화가가 직접 보았거나, 친구들 여러 명과의 인터뷰에서 신빙성이 있다고 판단한 것, 다머의 인터뷰, FBI 기록, 다머의 아버지가 쓴 회고록과 같은 출처들이 자세하게 쓰여 있다. 만화에 등장하는 모든 장면들은 만화가가 직접 보았던 것일지라도 그 자리에 같이 있었던 친구들을 인터뷰하여 어느 정도 정확한 기억이라는 확신이 들었을 때에만 그렸다. 인터뷰를 할 때에도 한 사람의 말이 아닌 여러 사람들의 말을 듣고 허황된 거짓말이 아니라는 확신이 든 것만을 그렸다는 말이다.
일례로 다머가 사후 경직된 고양이 시체를 옆구리에 끼고 걸어가는 장면은 당시에 그를 목격했던 또래 소년들의 증언에서 만화가가 발견해낸 디테일을 꼼꼼하게 살려 그로테스크한 분위기를 담아냈다.
친구의 자리에서 마주하는 참담함
만화를 읽는 내내 나는 고등학교 시절에 내 짝을 생각하며 참담해 했다. 그는 나에게 가면 쓴 괴상한 사람들만을 그린 화가 앙소르와 죽음과 멜랑콜리의 화가 뭉크를 알려준 친구였다. 그는 학교에서 괴짜로 통했었다. 그 시절 그 누구도 알 수 없던 자신만의 문제 때문에 점점 나락으로 떨어지던 그는 나에게 악몽 같은 존재였다. 그는 고등학교 졸업 후 10년간 내가 있는 곳을 알아내고는 불쑥불쑥 찾아와 나를 참담하게 만들고는 사라졌다. 뉴스에서 폭행 사건이 일어나면 그 친구일까 불안했고 언제 불쑥 내 앞에 나타나지 않을까 두려웠다. 전상국의 소설에 등장하는 ‘악종’들과 도스토옙스키의 소설에 등장하는 기분 나쁜 주인공들을 보며 그 친구를 생각했었다. 그리고 20여년이 지나 “내 친구 다머”를 읽고 나서 그 친구의 행동들을 다시 떠올렸다.
이런 소재를 가지고 만화를 그린다는 것은 외줄타기를 하는 것과 같다. 피해자들과 그 주변 인물들의 고통은 물론이고 가해자 주변 인물들의 고통에서 만화가는 벗어 날 도리가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만화가 백더프는 용감하게 “왜 이런 일이 일어났을까?”하는 의문과 “나도 그가 괴물이 되는데 일정 부분 책임이 있는 것은 아닌가?”하는 죄의식을 가지고 꼼꼼하게 만화를 그려냈다.
만화 <내 친구 다머>는 괴물이 된 자가 보냈던 소년 시절의 풍경과 정서를 세심하게 그려서 괴물이 자라날 수 있었던 “배양접시 (내 친구 다머의 소개 글 중)”를 우리 앞에 펼쳐 보인다. 이 만화에는 독자들의 호기심을 만족 시킬 서스펜스도 호러도 신파도 없다. 연쇄 살인범의 친구였던 만화가가 느꼈던 그 참담한 마음을 독자에게 전달하고자 하는 노력만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