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명박에 이은 박근혜다. 전작 <MB의 추억>(2012)에서 이명박 전 대통령을 통해 거짓말이 근거하는 (미디어와 정치권력의) 이데올로기의 구조를 들추어냈던 김재환 감독은 신작 <미스 프레지던트>에서 아직도 고 박정희 전 대통령과 육영수 여사의 신화에 젖어 사는 사람들을 카메라에 담았다. 그런 사람들이라면 ‘박근혜를 사랑하는 모임’(이하 박사모)이다. 박사모? 태극기 집회에서 “빨갱이는 모두 죽여야 한다”는 과격한 발언을 일삼던 사람들이 아니다. 조용히 무대 밑에서 박근혜를 걱정하고, 그의 부모인 박정희, 육영수를 그리워하는 ‘보통’ 사람들이다. 이들이 아직도 박정희, 육영수를 종교처럼 숭배하는 이유가 무엇일까. 그들이 가진 정서의 뿌리는 어디서 기인하는 것일까.
-이명박에 이은 박근혜다.
=MB 때부터 누가 대통령이 됐든 5년마다 현직 대통령을 다루면 재미있겠다 싶었다. 풍자를 하든 비판을 하든 타이밍이 중요한데 현직일 때가 가장 고생을 많이 하고, 가장 짜릿짜릿할 만한 타이밍이다. 그런데 (박근혜는) 벌써 전직이 되었다. 내 의지가 아니니… 그래도 대통령을 다뤘으니 약속을 지킨 셈이다.
-박정희, 육영수, 박근혜를 사랑하는 ‘박사모’ 사람들을 그리게 된 계기가 뭔가.
=2004년 당시 박근혜 한나라당 대표를 약 한달 동안 가까이서 취재한 적 있다. 고 노무현 전 대통령 탄핵 역풍, 차떼기 사건 때문에 만신창이가 된 한나라당을 재건하던 시기다. 그때부터 그들을 만나왔다. 박정희, 육영수의 영정 앞에서 엎드려 ‘마마’ 하며 절을 하고 태극기를 흔들던 그들의 거대한 정서는 무엇인가. 그게 박정희 전 대통령에 대한 고마움, 육영수 여사에 대한 그리움, 박근혜 전 대통령 삼 남매에 대한 동정심이다. 친박 집회에서 과격한 행동으로 질리게 하는 선동가들 말고 무대 아래에는 우리의 부모 같은 착한 사람들이 있다. 박정희와 육영수에 대한 거대한 판타지를 가진 사람들을 다뤄봐야겠다고 생각했다. 원래는 2004년 때 찍었던 영상을 활용해 인간 박근혜와 정치인 박근혜를 총체적으로 분석하는 작품으로 만들 생각이었으나 현직 대통령을 정신분석하겠다는 정신분석학자들이 없어 지금의 이야기로 방향을 바꿨다.
-당신의 이야기를 찍고 싶다고 하니 그들의 반응은 어땠나.
=박정희와 육영수를 사랑하는 당신들의 이야기를 들어보고 싶다고 했다. 솔직히 나를 포함한 젊은 사람들은 당신들의 마음이 이해가 안 된다고도 했다. 그때 받았던 느낌은 그들이 그간 가지고 있던 박정희와 육영수에 대한 고마움과 그리움을 표현하고 싶어 했다는 것이다. 아무도 물어봐주지 않았을 뿐이지. 동시에 자신들이 드러나는 걸 싫어하기도 했다. 카메라에 대한 경계가 심했으니까. 박근혜 전 대통령이 탄핵당한 이후에 만나자고 하면 그 또한 어떤 의도가 있는 것처럼 보였던 까닭에 (그들과 카메라 사이에) 장벽이 가로막혀 있는 상황이었다.
-그들은 어떤 사람인가.
=할아버지는 청주에 사는 농부다. 매일 소를 타고 다니신다. 부부는 울산에 사신다.
-가족사진이 있어야 할 자리에 박정희, 육영수 액자가 걸려 있고 지갑에 박정희, 육영수 사진을 지닌 채 다니며 박정희, 육영수 동상 앞에서 기도를 하는 모습을 보니 박정희와 육영수가 하나의 종교 같더라.
=어떻게 보면 이 영화는 믿음에 대한 이야기다. 종교적인 풍경을 많이 배치한 것도 그래서다. 그들은 새마을운동이라는 집단노동을 했고, 국민교육헌장을 외우면서 집단교육을 받으며 자란 세대다. 시간이 흐른 뒤 되돌아보니 집단에 대한 그리움이 생기는 거다. 올해가 윤동주 시인 탄생 100주년이자 박정희 탄생 100주년이다. 청와대가 구미시에 박정희 기념사업비로 1441억원의 예산을 투입해 논란이 되지 않았나. 이처럼 이들의 달력에는 박정희, 육영수 관련 이벤트들이 다 표시되어 있는데 이들에게 이건 매우 자연스러운 일이다.
-가까이서 지켜보니 그들이 박정희와 육영수를 그리워하는 이유가 뭐라고 생각되던가.
=누구라도 지나간 시절에 작별을 고하기란 어렵다. 가장 힘 있던 젊은 그 시절, 태극기 세대엔 그 좋았던 시절의 상징이 박정희, 육영수다. 누구라도 자신이 통과해온 모든 고통이 겪을 만한 가치가 있기를 바라지 않나. 박정희라는 존재에 대한 이들의 의리, 사랑, 집착, 그리움도 그런 거다. 보이스 투 맨의 노래 의 가사가 아마도 이들의 심정일 거다.
-박근혜와 어린 남매가 청와대 계단을 올라가는 장면, 박근혜가 탄핵당한 뒤 청와대를 쫓겨나는 장면 등 주요 대목마다 등장하는 동요 <즐거운 나의 집>은 노래 제목과 달리 꽤 아이러니한 감정을 불러일으키는데.
=이 영화의 중요한 모티브 중 하나가 이 노래다. 박정희에게 고마워하고 육영수를 그리워하는 그들에게 즐거운 나의 집은 무엇일까. 남자들에게는 가난했지만 가장으로서 권위가 섰던 때, 여자들에게는 마을에 공동체가 남아 있었던 때다. 결국 그들에게 즐거운 나의 집은 젊고, 잘나가고, 힘이 있을 때다.
-그들은 이 영화를 어떻게 바라볼까.
=할아버지는 소를 키워야 해서 청주 근처에서 시사회를 열어 초대할 생각이다. 울산의 부부 역시 울산에서 열리는 시사회를 통해 영화를 보여드릴 계획이다. 그분들이 영화를 보고 어떤 반응을 보이실지 진심으로 궁금하다.
-올해 전주프로젝트마켓에서 차기작 <시인>으로 푸르모디티상을 수상했는데(해외 영화제 출품을 위해 영어자막 제작을 현물로 지원하는 상.-편집자).
=<시인>은 한글을 만나면서 세상의 모든 것이 시로 보이는 80대 할머니들의 이야기다. 의미 있는 일을 하고 싶어 하는 어르신들의 욕망이 솔직하게 드러나는 작품이 될 것 같다.
-현직 대통령을 다루어왔으니 다음 차례는 문재인 대통령 아닌가. (웃음)
=빼도 박도 못하게 만드는 거 아닌가. (웃음) 상상력이 허락한다면 문재인 대통령도 다루고 싶다. 5년 뒤 그가 자신에 대한 영화를 당당하게 극장에서 볼 수 있는 대통령이 되길 기대한다.
<미스 프레지던트>는 어떤 영화?
<미스 프레지던트>는 박근혜 전 대통령의 탄핵을 지켜보며 걱정하는 ‘박사모’를 그린 다큐멘터리다. 청주에 사는 할아버지는 매일 아침 의관을 착용하고, 박정희 전 대통령의 사진 앞에서 절을 네번 한다. 태극기 집회가 열릴 때마다 상경해 참석한다. 울산에 사는 부부는 지갑에 박정희와 육영수 사진을 간직할 만큼 박정희와 육영수를 그리워한다. 이들은 태극기 집회에서 과격한 발언을 일삼고 폭력적인 행동을 하던 사람들과 거리가 멀다. 오히려 박근혜 전 대통령의 탄핵에 혼란을 느끼고, 박정희 전 대통령의 동상 앞에서 조용히 그를 기리는 사람들이다. 영화는 그들이 그토록 박정희와 육영수를 숭배하는 근원이 무엇인지 생각하게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