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안관>은 세 가지 단어로 요약된다. 로컬, 의리, 그리고 아재. 영화를 보고 나면 세 단어들에 대한 느낌이 조금 바뀔지도 모르겠다. 로컬영화로서 <보안관>은 단순히 물리적인 의미에서의 지방이 아니라 우리가 잃어버린 시절의 향수를 자극한다. 성장, 성공, 개발이란 가치에 매몰되어온 우리 사회가 놓치고 온 가치들이 시간이 느리게 흐르는 지방에는 여전히 숨 쉬고 있다. 한편 <보안관>의 아재들은 귀엽다. 그들은 지역을 지키며 의리처럼 촌스러운 가치에 매달린다. 육체적으로 전성기가 지났지만 여전히 자신을 증명하고 싶은 아저씨들은 순수한 소년 같다. <보안관>의 김형주 감독은 “우리 시대의 아버지, 삼촌을 그리고 싶어 시작했는데 결국 형으로 끝나는 영화”가 됐다고 표현했다. <보안관>은 남자들이 떼로 나오는 또 한편의 남탕영화가 아니다. 아재들의 이번 조합은 꽤 신선하고 색다르다. 김형주 감독에게 그 촌스럽고 투박한 매력에 대해 물었다.
-<군도: 민란의 시대>(2014) 조감독을 거쳐 첫 장편영화를 들고 찾아왔다.
=얼떨떨하고 실감이 잘 안 난다. 누가 감독님이라고 부르면 아직 나를 부르는 게 아닌 것 같아 안 쳐다본다. (웃음) 관객에게 어떻게 받아들여질지 두렵기도 하고 설레기도 하고 만감이 교차한다. 연출부 생활을 짧지 않게 했는데 이번 영화를 마치면서 그동안 함께했던 감독님들에 대한 존경심이 새삼 샘솟았다. 매 순간 선택을 해야 한다는 것, 그 선택에 책임진다는 부담과 무게가 옆에서 보던 것과는 전혀 다르더라.
-돌이켜볼 때 가장 만족스런 선택의 순간을 꼽는다면.
=캐스팅이다. 단순히 사투리를 잘 쓰는 문제가 아니라 지역의 정서를 잘 살려냈다, 자연스럽다는 평가를 듣고 싶었고 결과적으로 그 부분만큼은 완벽히 만족한다. 이야기를 완전히 완성한 상태에서 딱 들어맞는 배우를 찾아나간 게 아니라 전체적인 방향을 기준으로 캐스팅을 하면서 인물을 함께 만들어갔다. 배우가 캐스팅되면 그에 맞춰서 이야기도 자연스럽게 그 개성을 받아들이고 다음 단계로 나아가는 식이었다. 한명의 배우가 다음 배우를 부른다고 할까. 처음에 구상한 캐릭터는 덕만 역의 김성균밖에 없었다. 기존 이미지를 전복시켜보고 싶어 대호역에 이성민 배우를 캐스팅했고, 다소 밋밋할 수 있는 종진 역에 조진웅 배우가 합류하면서 살아 있는 캐릭터로 거듭났다. 배우들이 합류할 때마다 연쇄적으로 다음 퍼즐조각을 맞추듯 그림이 완성되어가는 짜릿하고 감사한 경험이었다.
-시나리오를 직접 썼는데 이야기의 출발점은 무엇이었나.
=<군도: 민란의 시대> 조감독을 마치고 나서 윤종빈 감독님이 글을 한번 써보라고 해서 시작했는데, 처음엔 내가 무슨 이야기를 하고 싶은지를 찾는데 시간이 정말 오래 걸렸다. 원래는 마약을 만드는 사람 이야기를 한번 해보고 싶었다. IMF 이후 생계를 위해 마약을 직접 제조한 사람의 기사를 보고 자료조사를 하던 차에 미국 드라마 <브레이킹 배드>를 봤다. 소재는 물론 주제까지 비슷해서 도저히 피해갈 수 없었다. (웃음) 윤 감독님이 마약 만드는 사람에서 마약상을 잡는 사람쪽으로 방향을 틀어보는 게 어떻겠냐고 하면서 꺼낸 제목이 <보안관>이었다. 제목이 먼저 정해지고 포인트를 좁혀나가며 구체적인 살을 붙였다. 주변에서 특이한 작업 방식이라고 하더라. (웃음)
-로컬 수사극을 표방하며 부산 기장 지역을 배경으로 했다.
=우선 기존 수사극과 차별성을 두고 싶었다. 적절한 지역을 물색하다가 기장이 가진 지리적인 특색이 눈에 띄었다. 해운대에 가깝지만 아직 개발의 손때는 덜 묻었고, 지역의 의리나 정이 남아 있는 곳이다. 한쪽에는 이제 막 들어선 건물들이 즐비하고 바로 옆에는 시간이 멈춘 듯 푸근한 어촌의 풍경이 공존한다. 내가 부산 출신이기도 해서 익숙했다.
-B급 코미디라는 장르적으로는 과장되어 있지만 표현은 다큐멘터리라 해도 좋을 만큼 사실적이다. 단순히 사투리 쓰고 지방에서 찍었다는 것 이상이다. 보다보면 내가 그 지역에 살고 있는 느낌을 준다.
=내가 생각하는 ‘로컬’이란 그 지역에서만 발견할 수 있는 정서다. 직관적으로는 투박함, 코믹하면서도 촌스러움 등이 떠오를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그보다는 차라리 요즘은 희미해져 가는 가치, 소중한 것들과 맞닿아 있는 공기라고 생각한다. 예를 들면 고향, 향수 같은 단어처럼. 영화 속 물건들에 빗대면 대호가 보는 <영웅본색> 비디오 같은 거다. 이제는 낡고 촌스럽다고 생각되지만 여전히 사랑스러운 것들. 의리라는 조금은 낯간지러운 단어와 연결된다고 볼 수도 있겠다. 정확히는 기장이란 지역을 찍었다기보다는 과거를 찍었다고 보는 게 더 어울릴 것 같다. 시간이 상대적으로 느리게 흐르는 지역들이 간직하고 있는 인간적인 면모, 순수함, 뭉클해지는 향수, 사라진 가치들을 관객과 나누고 싶었다.
-영화의 키워드를 몇 가지 꼽자면 로컬, 의리 그리고 아재 감성이다. (웃음)
=주변 평가를 보면 온통 아재라는 단어로 도배가 됐다. (웃음) 솔직히 홍보할 때 아재라는 단어를 쓸지 말지를 두고 진지하게 고민했다. 왠지 아저씨들 영화, 또 한편의 남자영화라는 식으로 부정적인 느낌을 줄 수도 있지 않나. 그렇다고 일부러 피하는 게 더 웃긴 것 같아 있는 그대로 보여주기로 했다. 나쁜 아재와 좋은 아재가 있다. 나쁜 아재는 꼰대다. 남의 이야기 안듣고 가르치려 든다. 피곤하다. 좋은 아재는 친근하다. 분위기를 못 읽고, 시대착오적인 것처럼 보여도 기본적으로 악의 없고 솔직하다. 잔뜩 멋을 부리지만 여기저기 하자투성이에 허술하다. 그 만만해 보이는 모습들이 인간적으로 다가온다. 지금 다시 <영웅본색>을 보는 기분? 촌스럽게 보일 수도 있지만 누군가에겐 그게 멋진 거다. 그 차이를 인정할 수 있으면 아재가 귀여워 보일 거다. 이 영화도 마찬가지 아닐까 싶다.
-의상이 인상적이다. 하나도 신경 안 쓴 것처럼 보이지만 정말 공을 들였다는게 보인다. 정성 들인 후짐, 촌스러움이 압권이다.
=리얼리티의 중요한 부분이다. 반바지 하나에 선글라스, 배바지에 금목걸이 등 실제로 그렇게 입고 다니는 분들이 많다. 그분들에겐 그게 정말 멋진 거다. 미적 감각이 다를 뿐이지. 그 엇나가는 미적 감각이 재미있었다. 허세다. 허세인데 속이 훤히 들여다보이는 허세, 귀여운 허세다. 정치인들, 속이 시커먼 사업가의 거짓말보다 훨씬 사랑스럽지 않나. 그런 느낌으로 영화의 톤을 잡아주는 캐릭터가 배정남 배우가 맡은 춘모다. 춘모는 끝까지 캐스팅에 난항을 겪었다. 우연한 기회로 배정남 배우를 추천받았는데 사진을 보니 지나치게 멋진 거다. 이건 아닌데 하면서 첫 미팅을 가졌다. 그런데 입을 여니까 말 그대로 대본을 찢고 나온 사람이 거기 앉아있더라. 소탈하지만 멋 부리고 싶어 귀여운 허세를 부린다. 그 모습을 꺼내고 싶어 주변에서 많이 애썼다. 워낙 쑥스러움이 많고 카메라 공포증도 있는 친구라 편하게 해주기 위해 형님들이 동생을 모셨다. (웃음) 순박하고 낯도 가리고 의리도 있는, 우리 영화를 닮은 친구다.
-매형인 대호와 처남 덕만의 콤비 플레이가 초반을 장식하다가 중반 이후 사기꾼 사업가 종진이 등장하면서 대호와 종진의 대결로 무게가 옮겨간다. 당연한 선택이지만 매우 흥미로운 관계인 덕만과 대호의 비중이 상대적으로 줄어 아쉬웠다.
=나도 한때 매형과 같이 산 적이 있다. 동병상련이라고 덕만은 내가 감정이입한 캐릭터였다. (웃음) 김성균 배우를 처음으로 캐스팅한 것도 거기서부터 이야기가 출발해서였던 것 같다. 결과적으로는 내 역량 문제다. 촬영하면서 전반적인 화면의 호흡이 조금씩 길었던 것 같다. 편집 과정에서 전체의 리듬과 비중을 고려해 잘라낼 수밖에 없는 에피소드들이 꽤 있다. 아쉽지만 필요한 선택이었다. 단편적이긴 하지만 대호와 덕만의 끈끈한 관계는 관객도 충분히 느낄 수 있을 거라 판단했다. 전반적으로 좀더 타이트하게 찍었다면 더 좋았겠지만. 그것까지가 감독이 책임지고 짊어질 무게인 것 같다. 배우고 있다.
-B급 코미디를 표방하지만 한편으론 최근 나온 영화 중 가장 정치적이다. BBK 의혹과 엘시티 스캔들이 떠오르기도 한다.
=고급스런 정치적 풍자라기보다는 직접적인 디스에 가깝다. 다만 그런 부조리가 당연한 시절들의 공기가 묻어나오는 게 아닐까 싶다. 돌려 말하지 못하는 사람들에 대한 이야기니까. 지금의 사태를 생각하고 직접적으로 반영한 건 아니다. 잘못된 걸 잘못됐다고 말하는 게 전부다. 그걸 시원하게 생각해주는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