컨텐츠 바로가기[Skip to contents]
HOME > Magazine > 피플 > people
[people] <언노운 걸> 배우 아델 에넬
김성훈 2017-05-04

당신이 의사라고 가정하자. 동료와 언쟁을 벌이던 중, 한 흑인 소녀가 병원 문을 두드리는 것에 응답하지 않았다. 다음날 그 흑인 소녀가 다른 병원으로 가다가 목숨을 잃었다는 소식을 들으면 어떻게 할 것인가. 보통은 내 잘못이 아니니 모른 척하고 넘어갈 것이다. 하지만 <언노운 걸>(2016)의 주인공 제니(아델 에넬)는 환자를 받아주지 못한 자신의 행동에 죄책감을 느끼고, 소녀의 죽음과 관련된 단서를 하나씩 찾아나선다. 그 과정에서 제니가 맞닥뜨리는 윤리적 딜레마는 감당하기가 만만치 않은데도 소녀의 정체를 쫓은 이유를 아델 에넬은 “휴머니티”로 꼽았다. 지난해 칸국제영화제에서 직접 만난 그녀는 제니처럼 용기가 넘치는 배우였다.

-시나리오를 처음 읽었을 때 어땠나.

=다르덴 형제가 건네준 시나리오는 나를 그들의 프레임 안에 가두지 않고, 의사 제니의 내면 깊은 곳까지 이해할 수 있도록 이끌어주었다. 제니를 정확하게 바라볼 수 있도록 해줬다. 제니가 자신의 행동에 죄책감을 안고 어떤 행동들을 하기로 결심한 건 최소한의 휴머니티에서 비롯된 것 같다. 보통 사람들은 가난, 질병 등 타인이 가진 아주 심각한 문제를 보고도 모르는 척하고 심지어 숨지 않나. 하지만 제니는 그렇게 하지 않는다. 의학스캐너가 그렇듯이 시나리오는 제니를 포함해 등장인물의 심리를 꿰뚫어본다. 제니를 통해 알고도 모르는 척하는 인간의 위선을 자각시키는 것 같았다.

-제니는 전도유망한 의사인데, 캐릭터에 접근하기 위해 어떤 준비를 했나.

=촬영 전, 한달 정도 기술적인 부분을 많이 공부했다. 환자 검진이나 수술할 때 의사가 어떻게 말하고 행동하는지 위주로 몸에 익혀야 했다. 의학 전문 용어도 자연스럽게 구사할 수 있도록 공부했다. 다만 전문직이다 보니 다양한 모습을 보여주려고 하기보다는 전공 분야에만 집중했던 것 같다.

-촬영에 들어가기 전, 다르덴 형제가 특별히 요구한 모습이 있나.

=내가 대답할 수 있는 질문은 아닌 것 같은데… 분명한 건 다르덴 형제의 세계관에 맞는 여성상을 표현하려고 하진 않았다. 특정 영화 속 인물을 참고할 생각도 전혀 없었다. 먼저 얘기했듯이 휴머니티가 제니를 움직이게 한 동력이라고 판단했고, 시나리오를 길잡이 삼아 제니 캐릭터를 구축해갔다.

-영화에서 벌어진 사건이 꼭 제니의 잘못이라고 보긴 어렵지 않나.

=사건을 정치적으로 다양한 시선에서 바라볼 수 있을 것 같다. 기본적으로 의사는 사람들을 살려야 하는 의무가 있다. 하지만 그들에게는 다양한 문제가 있다. 국가마다 의료 환경이 조금씩 다르겠지만 환자들이 만족할 만큼 의사수가 많지 않고, 의사 수입이 넉넉지 않으며, 병원 근무 환경이 질 높은 의료 서비스를 제공하기에 충분하지 않다는 등 다양한 문제가 발생해도 의사들은 파업할 수가 없다. 파업을 하게 되면 사람들이 죽으니까. 그들은 그들 나름대로 큰 사명감을 안고 일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영화 속 사건이 제니의 잘못 때문에 일어난 일은 아니지만 제니가 사건에 어떤 책임감을 느끼는 건 의사로서 당연한 본능이라고 생각한다.

-여성이 주인공인 영화가 많지 않아 제니 같은 주인공을 따내는 일이 쉽지 않은 게 현실인데.

=세상은 남성 중심으로 돌아가지 않나? 영화산업도 마찬가지다. 이건 내 의견이 아니라 숫자로 증명된 ‘팩트’다. 여성으로서 동등하지 않은 싸움을 하고 있다. 우리는 같은 무기를 들고 있지 않다. 하지만 싸움이 시작되자마자 바로 지는 건 정말 싫다. 그럼에도 다르덴 형제의 영화 같은 예술영화는 영화를 만드는 사람들의 세상이 분명하게 표현된다. 그들은 돈에 대한 압박이 적으니 표현의 자유가 많다. 젠더로부터 훨씬 자유롭고. 무엇보다 중요한 건 재능 있는 젊은 배우들이 많고, 그들은 서로 매우 다르며, 다른 방식으로 표현하고 연기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관련영화

관련인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