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진흥위원회(이하 영진위)가 2017년 영화진흥사업 공고를 실시하고 있다. 현장을 움직이는 동력으로 영화발전기금의 집행을 한없이 늦출 순 없다. 하지만 영화계가 강도 높게 요청 중인 블랙리스트 파문에 대한 응답을 생략한 채 사업을 진행하는 영진위의 태도는 유감스럽다. 이에 대해 영진위는 다른 대답을 내놓고 싶을 것이다. 영진위 홈페이지에 공개된 2017년 제1차 위원회 정기회의(1월25일 개최) 회의록에 따르면, 당해 연도 예산과 관련해 “영화단체와 간담회도 하고 싶고 지속적인 미팅을” 원하나 단체가 이를 수용하지 않고 있다고 적시되어 있다. 영화단체가 기관과의 공식적인 소통을 왜 거부하는지에 대한 논의는 빠져 있었다.
2016년 11월 독립영화인 821명은 박근혜 퇴진과 영진위 개혁 등을 촉구하는 시국선언을 발표했다. 같은 해 12월 영화단체연대회의는 비위 혐의로 영진위 위원장과 사무국장(이후 박환문 사무국장 해임)을 고발하였다. 2017년 1월 영화계는 ‘가칭 블랙리스트 대응 영화인행동(준)’을 구성하였고, 2월 블랙리스트 부역자 김세훈 영진위 위원장과 서병수 부산시장의 사퇴를 촉구하는 1052인 선언을 실시하였다. 영화인들이 펼친 일련의 활동은 위 회의록에서 생략된 영진위와 영화계 불통의 진정한 이유가 될 것이다. 문화계 블랙리스트 문제는 얼마나 엄정한 것인가. 전직 문화체육관광부(이하 문체부) 장관 2명과 실력자들이 구속되었고, 나아가 박근혜 전직 대통령 탄핵의 근거가 되었다. 책임기관인 문체부는 대국민 사과를 발표하고, 재발 방지를 위한 대책 마련에 주력하고 있다. 현 시국 블랙리스트는 헌법 질서를 상징하는 징표로서 중차대하다.
최근 공고한 사업으로 돌아가 보자. ‘국제영화제육성지원사업’은 전년 대비 7억원(32억원->25억원)이 줄었다. 삭감 논란이 일었던 부산국제영화제 예산 회복은 요원해 보인다. 국내영화제지원사업도 1억원(5억2200만원->4억2200만원)이 축소되었다. 예산이 확대(4억5천만원->6억5천만원)된 ‘저예산영화마케팅지원사업’은 기왕이면 ‘독립영화마케팅’ 지원으로 사업명을 변경했으면 하는 바람이다. 적극적인 자문에 응하지 않은 것을 묻는다면, 이러한 정책이 블랙리스트 관리 체제하에 정해졌다는 딜레마에 있다. 블랙리스트의 극복 과정은 새로운 영화 정책의 비전이 되어야 한다. 김세훈 위원장은 아직도 사퇴하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배제정책을 수행했던 영진위 구성원의 공식적인 사과 또한 듣지 못하고 있다. 블랙리스트 영화인의 자존심도 여전히 회복되지 않은 채 그대로 남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