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자의 관심과 후기를 충분히 받아볼 기회조차 없이 잊히는 작품에 ‘수상작’이라는 수식은 귀한 발견의 시간이 돼준다. 앙꼬 작가의 만화가 꼭 그렇다. 올해 1월 앙꼬 작가는 세계 최대 만화 축제인 앙굴렘국제만화축제에서 <나쁜 친구>(2012)로 한국인으로는 처음으로 ‘새로운 발견상’을 수상했다. 최우수상에 해당하는 황금야수상 최종 후보에까지 올랐다. 작가는 2003년 <딴지일보>에 <앙꼬의 그림일기>를 연재하며 만화가로 데뷔했는데 웹툰 작업을 한 건 그때뿐이다. 이후로는 스케치북을 펼쳐 펜으로 그리고 물감으로 채색하고, 그중에서 얼마간을 추리거나 그것이 발단이 돼 단행본을 냈다. <앙꼬의 그림일기1>(2004), 단편집 <열아홉>(2007), <앙꼬의 그림일기2>(2008), <삼십 살>(2013) 등이 대표적이다. 앙꼬 작가의 만화는 딱 작가의 그림일기장 같다. 작가가 겪어온 생활상의 명랑함과 애처로움이 가식 없이 생생히 만화가 됐다. 작가의 세계에 오롯이 집중한 이야기로 출판 만화의 길을 걸어왔지만 작가 역시 안다. 그것만으로는 생계를 유지하기 어려운 시대라는 것을. ‘정말 끝’이라 생각한 바로 그때 앙굴렘에서 희소식이 날아들었다. 앙꼬 작가 자신에게도 ‘새로운 발견’이 돼준 것이다.
-앙굴렘국제만화축제에서의 수상은 작가로서 어떤 의미가 있나.
=얼떨떨하다. 명칭이 참 애매한데 소위 ‘독립, 대안, 작가주의, 예술’ 만화라 불리는 만화를 그려왔다. 어릴 때부터 만화가 뭔 줄도 모르고 그저 그리는 게 좋았다. 대학 만화과에 가보니 일본 애니메이션 유를 잘 그리는 친구들이 많았다. 왠지 내 그림은 숨겨야 할 것 같았다. 그때 만화가 이희재 선생님의 <간판스타>(1989)를 보고 ‘내 만화도 만화일 수 있겠다, 사는 이야기를 만화로 옮겨도 되겠구나, 마음 가는 대로 그려도 괜찮겠구나’라고 생각했다. 한참 뒤 유럽에 가보니 그런 만화가 정말 많더라. 아트 슈피겔만의 <쥐>나 체스터 브라운의 책들처럼. 이번 수상으로 나나 나와 비슷한 방식으로 작업하는 분들이 독자들에게 조금이나마 주목받는다면 그것만큼 기쁜 일이 없겠다.
-<나쁜 친구>의 주인공인 16살 동갑내기 친구 진주와 정애는 함께 가출을 한다. 세상이 어떤 곳인지, 그곳에서 살아남으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를 경험하지만 결국 진주는 집으로 돌아가고 정애는 사라진다. 자신에겐 돌아갈 가족이 있다는 걸 알았던 진주는 그럴 수 없었던 정애에 대한 부채와 부끄러움이 있다.
=자전적 이야기에서 비롯됐다. 나도 정애와 진주처럼 10대 시절 강렬한 경험을 했다. 그땐 나와 친구들은 누군가에게 맞아도 신고를 못했다. 그러다 20살 초반에 만화가가 됐다. 나를 대하는, 내 앞에 펼쳐진 세상이 갑자기 달라졌다. 충격이었다. 그런 감정을 안고 <나쁜 친구>를 조금씩 그려나갔고 그리다 말다 하며 10년이 흘렀다. 본격적으로 이 이야기를 그릴 때쯤에야 지금 내가 살고 있는 세상과 10대 때의 세상이 어떻게 다른지를 이해할 수 있었다.
-시간이 한참 지난 현재, 작가에게 진주와 정애는 각각 어떻게 남아 있나.
=진주는 (흔히 ‘문제아’, ‘비행 청소년’ ‘날라리’라고 일컬어지는) 아이들과 함께 있었지만 언제나 그들의 삶을 지켜보는 입장이었다. 그래서 진주의 입장은 하나도 궁금하지 않다. 정애와 그곳에 있던 아이들은 자신들이 선택한 삶이 아니었다. 자기 앞에 놓인 삶을 그저 사는 게 전부였던 아이들이다.
-작품을 보면 <앙꼬의 그림일기1, 2> <삼십 살>처럼 작가가 직접 주인공으로 등장하거나 자전적 이야기가 짙게 배어 있다.
=어릴 때부터 나와 내 주변을 그렸다. 새로운 걸 해야 하지 않겠느냐는 말도 들었다. 작가라는 말을 듣게 됐으니 그래야 하나 고민도 했다. 시도도 해봤지만 재미가 없더라. 나아가고자 하는 방향에 그러한 방식의 작업이 더 좋다고 판단되면 언젠가는 할 수 있겠지만 현재로서는 더 고민하지 않기로 했다.
-앙굴렘국제만화축제를 비롯해 지난해 참여한 브뤼셀만화박물관 전시나 파리국제도서전에서 <나쁜 친구> 등 작품에 대한 반응은 어땠나.
=국내 발간 땐 주로 만화 속의 폭력 문제가 주목받았다. 해외에선 거기에 대해 전혀 묻지 않고 오히려 다양한 질문이 쏟아져나와 내가 취조받는 기분이었다. (웃음) 대답을 제대로 못했다. 하지만 생각이나 감정, 냄새처럼 말로는 설명하기 어려운 모호한 것들에 대해 그리고 말하는 게 만화가 아닐까 싶다.
-방금도 ‘냄새’라는 말을 썼다. 작품을 보면 어떤 시간이나 시절을 ‘냄새’로 표현하고 전달하고 싶어 하는 것 같다.
=냄새야말로 사실상 내 만화의 전부라 하겠다. 분위기와는 다르다. 실제의 냄새는 아닌데 어떤 냄새가 난다. 내 만화에 냄새만 남길 바란다.
-마감이 있는 연재나 웹툰보다는 혼자 긴 호흡으로 작업하고 때때로 단행본을 내는 방식이 익숙한가보다.
=일을 시작할 2003년 당시엔 모두들 책으로 만화를 냈다. 웹툰 시장이 체계화되면서부터 나 같은 사람이 갑자기 이상한 사람이 돼버렸다. (웃음) 또 2년간 웹툰 작업을 했을 때 마감이 있다는 게 너무 힘들었다.
-필명인 앙꼬(본명 최경진)에는 무슨 뜻이 있나.
=어렸을 때부터 분기마다 스스로 이름을 바꾸곤 했다. 만화가로 데뷔하기 전이었는데 첫째 언니가 중국어로 ‘앙꾸이’라고 말하는 걸 들었다. ‘앙꾸이?’ ‘앙꼬?’ 하다가 ‘앙꼬’를 이름으로 썼다. 그때 언니 말로는 ‘앙꾸이’가 ‘부조리’라는 뜻이라 했다. 두달 후 만화가가 됐고 연재 제목을 <앙꼬의 그림일기>로 썼다. 몇년 뒤 중국 만화가를 만나 내 이름이 중국어에서 왔다고 했더니, “그런 말은 없다”고 하더라. 그러니 이걸 대체 어디 가서 말하겠나. (웃음)
-가까운 시일 안에 단행본 출간 계획이 잡혀 있나.
=<나쁜 친구>처럼 연재도 하지 않고 긴 시간 작업하는 방식은 굉장히 힘들다. 친구들이 종이와 잉크를 사주고 전기세도 내줘서 마칠 수 있었다. 또 25시간 가까이 그림만 그리고 몇 시간만 자는 생활을 이어가다보니 사람이, 정신이 망가지더라. 이렇게는 더 못하겠다, 웹툰이라도 시작해야 하나 싶었고 절벽 끝에 와 있다고 생각했다. 바로 그때 앙굴렘에서 수상을 한 거다. 스스로 엄청난 힘을 얻었다. 올해 다시 한번 작업을 해보려 한다.
앙꼬 작가가 꼽은 <나쁜 친구> 속 한컷
“정애와 진주의 뒷모습만 보이는 이 컷에서 두 소녀의 마음이 가장 잘 드러난다고 생각한다. 진주는 정애의 뒷모습을 보면서 무슨 생각을 했을까. 또 정애는 화장을 하며 어떤 마음이었을까.” 작가는 정애도 진주도 쉽게 비난하지 않는다. 그저 무섭고 외롭고 막막했을 소녀들을 이 컷처럼 가만히 지켜봐주는 것이다.
앙꼬 작가의 작업실
앙꼬 작가의 만화책을 봤다면 ‘아하!’ 할 것이다. 만화에 수시로 등장하는 작가의 베이스캠프, 작업실이다. 여기서 작업과 생활이 모두 이뤄진다. 한쪽에는 작가가 직접 만든 ‘ANCCO CAFE’라는 작은 입간판이 있다. 방문객의 입맛에 맞게 작가가 직접 커피를 내려준다. 곡과 가사를 쓰고 기타 치며 노래 부르길 즐기는 흥 많은 작가는 ‘앙꼬의 라이브 카페’라는 명패도 걸어뒀다.
앙꼬 작가의 스케치북 속 만화
“어떤 걸 고를까 하고 예전 스케치북을 보다가 이 부분이 재밌어서. (웃음)” 수십권이 되는 앙꼬 작가의 스케치북에는 세상에 공개되지 않은 만화들이 그득하다. 그중 <엄마 나의 엄마>라는 다섯장짜리 만화의 앞의 두장이다. 작가의 영감의 원천이 그러하다니!
앙굴렘국제만화축제 ‘새로운 발견상’ 트로피
앙굴렘국제만화축제의 마스코트인 야수를 본떠 만든 트로피. 새로운 발견상은 검은 야수이고 황금야수상은 황금색 야수, 탐정추리물상은 바바리코트와 모자를 쓴 야수, 문화유산상은 녹색의 야수라고 한다. 야생 짐승처럼 길들여지지 않는 거친 기질은 숨긴 채 더없이 귀여운 모습의 야수라니. 아마도 앙굴렘국제만화축제의 정신이, 앙꼬 작가의 만화가 그렇지 않을까 짐작해본다.
내 인생의 영화
“<꽃섬>의 인물들의 감정을 고스란히 간직한 채 20대를 살았다. 바닷가 여관의 냄새, 모르는 남자들과 먹었던 술과 함께 부르던 노래, 산속의 버스 아저씨 등 영화에서 보이고, 느껴지는 것들이 마치 내 기억 속 그것 같았다. 최근에 본 작품으로는 <하얀 리본>을 꼽겠다. 만화로 <하얀 리본>과 같은 작품을 만들 수 있다면, 여한 없이 죽을 수 있을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