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주에 ‘블랙리스트 영화인행동’(가칭, 이하 영화인행동)의 대표자 격으로 고영재 한국독립영화협회 이사장과 함께 김세훈 영화진흥위원회(이하 영진위) 위원장과 면담을 가졌다. ‘블랙리스트’에 부역하고 실행한 김세훈 위원장의 즉각 퇴진과 진상 규명, 사과를 요구한 후 오랫동안 해결되지 않는 상황을 타개하기 위한 자리였다. 영진위 위원장과의 면담 여부에 관한 의견으로, 현재 영화계가 취하고 있는 영진위에 대한 강경한 태도를 변화시킬 수도 있다는 우려 섞인 의견도 있었고, 시급하게 진행되어야 할 사업이 정지 상태로 있는 것 역시 부담스러운 상황이란 의견도 있었다. 일단 ‘현 상황을 풀기 위한 제안을 하는 자리까지는 가져보자’로 의견이 모아졌다. 김세훈 위원장과의 면담은 영화인행동에 참여하는 단체의 의견을 수렴한 뒤 논의 후 결정되었다.
만남에서 영화인행동은 김세훈 위원장의 블랙리스트와 관련하여 영진위가 부역한 사실과 박환문 전 사무국장의 비리를 관리·감독하지 못한 점을 들어 사과와 사퇴를 요구했다. 시기도 빨랐으면 좋겠다고 제안했다. 잘못한 점에 대해 인정하고 사과한 후 사퇴하는 것이 현재의 꼬인 상황을 풀 수 있는 해결책이란 내용의 제안이었다. 더불어 사과와 사퇴 요구에 동의한다면 현재 논의가 중단된 사업에 대해서도 재논의하고, 영화계와 불통하며 공적기구로서의 역할을 잃어버린 영진위의 적폐 청산에 대해서도 공론화하자고 제안했다. 위원장은 요구사항에 대해 긍정적으로 받아들였으며, 사과와 사퇴 의사를 밝히는 별도의 간담회를 가지자는 의견까지 모아졌다. 문제가 불거진 것은 다음날부터였다. 위원장의 사퇴 약속은 확실한 것이 아니며, 날짜를 특정할 수도 없다는 이야기가 여기저기서 들리기 시작했다. ‘영진위가 안정화되고 나서 사임하겠다’라는 의견을 밝혔다는 소식까지 들렸다. 결국 사태 해결을 위한 ‘제안’은 의미없는 행동이 된 셈이다. 말에 대한 책임과 명예가 없는 불필요한 자리를 가졌던 것이다.
그렇다면 다시금 김세훈 위원장에게 질문할 수밖에 없다. 지난 정권에서 자행되어왔던 블랙리스트를 통한 지원 배제와 사업 축소, 사업 폐지의 과정에 대한 진실은 무엇이며, 이것에 대한 책임은 누가 질 것인가. 김세훈 위원장이 임명했던, 각종 비위 사실과 성희롱 문제가 드러나 해임된 박환문 전 사무국장의 관리 책임은 누구에게 물어야 할 것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