컨텐츠 바로가기[Skip to contents]
HOME > Magazine > 피플 > trans x cross
[trans x cross] 첫 EP 《나의 가역반응》 발매한 뮤지션 신해경
장영엽 사진 백종헌 2017-03-16

신해경. 이 낯선 뮤지션의 이름이 지난 2월 말부터 SNS를 타고 범람하기 시작했다. 알려진 바가 많지 않기에 한번 들어나보자는 생각으로 그의 노래를 플레이했다가 황홀한 별천지를 경험했다. 몽환적이고 나른한 사운드, 선명한 멜로디, 극적인 전개. 정반응과 역반응이 함께 일어난다는 ‘가역반응’의 의미처럼, 신해경의 첫 EP 앨범은 물과 기름처럼 섞이지 않을 것 같은 음악적 요소들이 이루고 있는 치열한 균형감각이 매력적인 음반이다. 《나의 가역반응》을 듣다가 문득 궁금해졌다. 신인답지 않은, 이토록 유려한 감각의 뮤지션을 왜 지금에서야 발견했을까. 신해경은 누구인가. 인터뷰 장소에 나온 그는 “오늘이 첫 인터뷰”라고 말했다. 그동안 음원으로만 활동해왔기에 《나의 가역반응》을 발매하기 이전까지 그의 존재를 아는 이들이 많지 않았다고도 덧붙였다. 아직 아무도 닿지 않은 미지의 세계를 탐험하는 기분으로, 모두가 궁금해하는 이 28살 뮤지션과의 대화를 시작했다.

-첫 EP 《나의 가역반응》에 대한 반응이 뜨겁다. 노래는 좋은데, 정보가 너무 없어서 도대체 어디서 나타난 뮤지션인지 궁금해하는 사람이 많다. 2014년 <음악단편집> 가을호에 <언젠가>를 발표하면서 뮤지션으로 활동을 시작했다고.

=개인적인 사정으로 대학을 가지 않고 혼자서 계속 미디 음악 공부를 했다. 군대에 다녀온 뒤에도 음악을 혼자 하다가 밴드 ‘이상의 날개’의 보컬과 기타를 맡고 계신 문정민 선생님을 찾아갔다. 당시에 음악을 계속 해야 하나 고민이 많았는데, 음악 학원에서 잠깐 뵌 적이 있었던 선생님께 조언을 구하고 싶었던 거다. 그때 내가 만든 곡을 선생님께 들려드렸는데 마음에 들어 하셨던 것 같다. <음악단편집>에 참여할 의향이 있냐고 제안을 해주셨고 그렇게 음반 작업에 참여하게 됐다.

-작사와 작곡, 연주와 믹싱을 모두 직접 하고 있다. 1인 밴드로 활동하게 된 계기는.

=중고생 때 음대 입시를 함께 준비하던 친구들과 밴드를 하는 과정에서 의견이 맞지 않는 경우가 많았다. 내가 음악에 대한 고집이 좀 있는 것 같다. 이런 진행이 더 좋을 것 같다고 누가 고쳐준 음악이나 학원에서 배운 대로 연주하는 음악을 하고 싶지 않더라. 온전히 내 음악을 하고 싶은 마음이 컸고, 그럴 바엔 혼자 하는 게 낫겠다는 생각에 1인 밴드로 활동하게 됐다. 지금도 많이 외롭긴 한데, 어쩔 수 없는 선택인 것 같다.

-《나의 가역반응》이란 앨범의 제목은 작가 이상의 시 <이상한 가역반응>으로부터 모티브를 얻었다고 알고 있다. ‘신해경’이라는 이름도 이상의 본명(김해경)으로부터 비롯됐다. 평소 이상의 작품을 좋아하나.

=이상 작가를 좋아하는 다른 분들에 비하면 부족하지만, 개인적으로 굉장히 좋아하는 작가는 맞다. 가장 좋아하는 그분의 시는 <거울>이다. 그렇게 언어 파괴적이고 과감하고 파격적인 글을 좋아한다. 이상 작가가 운영하던 다방도 입구가 굉장히 좁았다던데, 그런 이러저러한 면모가 흥미로워서 고등학생 때 그분의 작품을 많이 찾아봤던 기억이 난다. 신해경 이전에는 ‘더 미러’라는 이름으로 활동했는데, 거기에는 사연이 좀 있다. <음악단편집>에 참여하려면 활동명을 빨리 결정해야 했는데, 마침 집에 꽂혀 있는 이상의 시집이 보였고 내가 좋아하는 시 <거울>이 생각났다. ‘신거울’이라고 하면 이상하니까(웃음) 더 미러라는 이름을 지었다.

-이번 앨범은 어떤 계기로 만들게 됐나.

=<모두 주세요>라는 곡 때문에 만들게 된 앨범이다. 지난 2015년 싱글 <너의 살롱>과 <플루토>를 냈는데 반응이 너무 없었다. 뭔가 잘못되어가고 있다는 생각을 했다. 혼자 모든 걸 다 만드는 데 잘 안 되니까 내가 좋은 음악을 하고 있지 않은가, 이런 생각이 든 거다. 그래서 정말 제대로 음반을 만들어보자는 생각으로 <모두 주세요>를 작곡하고, 이후에 다른 곡을 함께 수록한 EP를 만들어 레이블에 음반을 돌렸다. 록 계열 레이블에서는 연락이 없었는데, 래퍼로 활동하는 무진이라는 친구가 일렉트로닉 레이블인 영기획 하박국 대표님의 존재를 알려줬다. 솔직히 앨범을 내줄 거란 확신은 없어 도움을 주셨으면 한다고 돌려 말했는데, 만나자마자 대표님이 앨범을 내자고 하시더라.

-타이틀곡 <모두 주세요>의 탄생 과정도 궁금하다.

=많은 분들이 이 곡의 화자가 누군가에게 애정을 갈구하는 사람일 거라고 생각하시더라. 정작 이 곡을 쓸 때에는 어떤 특정 대상이라기보다는 세상을 향해 ‘내게 관심 좀 가져달라’는 마음으로 썼다. (웃음) 음원은 반응이 없고, 돈은 벌어야 하니 음악 레슨과 단기 아르바이트를 해야 하고, 주변을 둘러보면 다른 친구들은 학교를 졸업하고 취업을 준비하고 있을 때였다. 이 곡을 중심에 놓고 이야기의 앞뒤를 채운다는 생각으로 다른 곡들을 만들었다. <몰락>과 <다나에>, <잊었던 계절>과 <화학평형>, <권태> 순으로 작업했고 <모두 주세요>를 감정의 최고점으로 잡고 이후에는 감정의 기류가 내려갔으면 하는 마음으로 트랙 순서를 정했다.

-현대무용가 최승윤의 독특한 안무가 인상적인 <모두 주세요>의 뮤직비디오도 화제였다. 어떤 컨셉으로 연출하길 원했나.

=뮤직비디오를 연출한 정용ML 감독님에게 화자가 남자가 아니라 여자였으면 좋겠다는 의견을 드렸다. 특히 이와이 슈운지의 영화 <언두>(1994)의 여주인공을 떠올렸다. 그 영화 속 여주인공은 사랑하는 사람이 떠날까봐 모든 것들을 줄로 꽁꽁 묶지 않나. 어떤 곡을 쓸 때 오늘 한 마디를 만들고, 다음날 한 마디를 또 쓰고 이런 식으로 오랜 시간을 들여 작업하는 편인데, <모두 주세요> 같은 경우는 쓰는 과정에서도 곡의 화자가 굉장히 강박적인 사람일 거라고 짐작했다. 세상에 대한 사랑을 갈구한다는 게 내게는 강박적인 사랑의 방식으로 느껴지기도 했고.

-《나의 가역반응》과 이전에 냈던 싱글을 아우르는 공통점이 있다면, 무언가 이룰 수 없는 상태를노래하는 경우가 많다는 것이다.

=20살, 21살 때 집에 머무르는 시간이 많았다. 음악을 제대로 한번 해보겠다는 생각에 집에서 혼자 작업하는 일이 잦았고, 친구들은 대학에 다니는 시기이다보니 자연스럽게 외톨이가 되었다. 그때 느꼈던 미묘한 두려움과 동경의 감정이 내게 아직까지도 깊게 남아 있는 것 같다.

-<모두 주세요>의 가사처럼 양가적인 감정이나 상황에 대한 묘사도 자주 등장한다.

=어머니와의 관계도 영향이 있을 거다. 평소 어머니와 사이가 굉장히 좋은 편인데 《나의 가역반응》을 만들면서 어머니와 자주 다퉜던 것 같다. 예를 들어 내가 집에서 녹음하고 있으면 갑자기 우당탕탕 뭔가가 떨어져서 녹음을 다시 해야 한다든가 할 때. (웃음) 가끔은 그렇게 미울 때도 있지만 어머니는 누구보다도 내 음악을 가장 먼저 들어주는 분이다. 그런 어머니와의 관계에서 비롯된 감정도 곡을 쓸 때 영향을 미친 것 같다.

-가역반응, 화학평형(수록곡의 제목) 등 화학 용어가 자주 등장하기 때문에 이과 출신일 거라 짐작하는 사람들이 상당하다. (웃음)

=문과 출신이다. (웃음) 공부를 잘하는 편도 아니었다. 이상의 시 <이상한 가역반응>을 보다가 ‘가역반응’이라는 단어에 대해 공부를 했고, 가역반응을 검색하다가 화학평형이라는 단어도 알게 됐을 뿐이다. 정반응과 역반응이 일치한 상태가 화학평형이라는데, 이걸 감정의 상태에 대입하면 재밌지 않을까 생각했다.

-드림팝을 하게 된 계기는.

=음악을 시작할 때부터 드림팝을 하겠다는 생각은 아니었다. 그런데 보컬 녹음을 하면서 내 목소리에 힘이 없다는 생각을 많이 했다. 직접 쓴 곡 중에서도 고저가 나뉘는 노래가 꽤 되는데, 나는 목소리 톤이 일정한 편이더라. 사운드의 도움을 받아야겠다는 생각을 하던 중 평소 좋아하던 마이 블러디 밸런타인이나 지저스 앤드 메리 체인, 비치 보이스의 음악으로부터 영향을 많이 받았다.

-음악 이외에 영감을 주는 무언가가 있다면.

=영화 보는 걸 좋아한다. 특히 좋아하는 작품은 구로사와 아키라 감독의 <란>(1985)인데, 이 작품은 영감을 얻기보다는 순수하게 좋아하는 마음으로 자꾸 보게 되더라.

-앨범 발매 이후 공연도 계획하고 있나.

=이제까지 음원 활동만 하고 무대에서 대중을 만난 적이 없다. 5월28일 민트페스타에서 공연이 예정되어 있는데 걱정이 많다. 남은 기간 동안 정말 열심히 연습해서 좋은 모습으로 라이브 연주를 보여드리고 싶다.

신해경의 《나의 가역반응》

지난 2월22일 발매한 신해경의 첫 EP 《나의 가역반응》에는 모두 여섯곡이 수록되어 있다. 지난 2015년 12월 발매한 싱글 <모두 주세요>는 이번 앨범의 타이틀곡이자 정서적인 클라이맥스를 담당하는 노래. <몰락>과 <다나에>는 <모두 주세요>에 이어 만든 곡이며, <잊었던 계절>은 음대 입시를 위해 고등학생 시절에 쓴 곡을 매만져 수록한 곡이다(이 곡은 《나의 가역반응》 앨범에서 신해경의 어머니가 가장 좋아하는 곡이기도 하단다). 첫곡인 <권태>와 마지막곡인 <화학평형>의 경우 하박국 영기획 대표의 조언이 곡의 방향을 결정하는 데 중요한 영향을 미쳤다고. “<권태>는 원래 정말 짧은 노래였고, <화학평형>은 곡이 좀 조촐했다. 대표님의 조언 덕분에 훨씬 더 풍성한 결과물이 나온 것 같다.”

관련영화

관련인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