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히든 피겨스>는 사운드트랙이 2개다. 영화음악의 거장 한스 짐머, 21세기 팝 음악계 최고 프로듀서 중 한명인 퍼렐 윌리엄스가 각자 특기를 발휘했다. 그런데 주인공 3인방 중 메리 잭슨 역을 맡은 저넬 모네이의 목소리가 극중 라디오에서도 흘러나온다는 걸 눈치채셨는지? 모네이는 올해 아카데미 작품상 수상작인 <문라이트>로 데뷔한 신인배우인 동시에 확고한 음악 세계를 가진 뮤지션으로서 사운드트랙에도 참여했다. 흑인음악 애호가인 <풋볼리스트> 김정용 기자가 저넬 모네이의 음악 세계에 대해 전한다.
신인배우이자 솔 디바인 저넬 모네이
<히든 피겨스>의 주연배우들은 지난해 12월 백악관에 초청됐다. 세 주인공 중 저넬 모네이에겐 특히 낯익은 장소였다. 버락 오바마 전 미국 대통령이 “저넬 모네이를 백악관 공연에 15번 정도 불렀는데, 이젠 방 하나를 내줘야 할 것 같다”는 농담을 했을 정도다. 가수로서 모네이는 프린스를 계승한 음악 세계, 탁월한 노래와 랩 실력으로 인정받았다. 모네이가 발표한 음반 세장은 신디 메이웨더라는 안드로이드의 이야기를 다룬 일종의 연작 드라마다. 인종, 젠더, 계급 문제를 SF에 접목시킨 흑인 여성 작가 옥타비아 버틀러의 영향을 강하게 받았다고 평가된다. 《The Electric Lady》(2013) 앨범에 수록된 <Sally Ride>는 미국 최초 여성 우주비행사이자 나사(NASA) 엔지니어였던 샐리 라이드에게 헌정한 곡이다.
한스 짐머와 퍼렐 윌리엄스가 합작한 <히든 피겨스> 사운드트랙
두장으로 된 사운드트랙 중 한스 짐머가 만든 오리지널 스코어들은 평범한 편이다. 사운드트랙의 특징은 가수 겸 작곡가 퍼렐 윌리엄스가 프로듀싱한 노래들이다. 윌리엄스는 제작자 겸 사운드트랙 프로듀서로 참여해 총 10곡으로 구성된 앨범을 만들어냈다. 각 노래의 분위기와 가사는 장면과 정확히 대응하도록 구성됐다. 주인공 캐서린 존슨(타라지 P. 헨슨)이 유색인종 전용 화장실을 쓰기 위해 나사를 가로지를 때마다 윌리엄스가 직접 부른 <Runnin’>이 흘러나온다. 다른 노래엔 메리 J. 블라이즈, 알리샤 키스, 레일라 해서웨이, 킴 버렐 등이 참여했다. 가스펠 보컬인 해서웨이와 버렐이 전하는 ‘복음’은 영화 속 흑인 여성들이 일군 ‘승리의 순간’과 잘 어울린다. 버렐이 부른 <I See A Victory>는 엔딩 타이틀로 쓰였다. 그러나 버렐은 방송 활동이 한창이던 지난 1월 동성애 혐오 발언 사실이 알려지며 여러 스케줄에서 퇴출됐다.
<히든 피겨스>와 비욘세의 공통점, 블랙 페미니즘
2016년 미국 문화계의 흐름 하나는 블랙 페미니즘이 대중적인 작품과 성공적으로 결합했다는 것이다. <히든 피겨스>는 인종과 젠더로 이중 차별받는 주인공들의 모습이 블랙 페미니즘의 핵심인 교차성을 잘 보여준다는 평과 함께 관련 학술 세미나에서 상영됐다. 흑인음악이 강세인 빌보드 차트에선 블랙 페미니즘이 더 두드러졌다. 비욘세의 《Lemonade》와 동생 솔란지의 《A Seat at the Table》이 빌보드 앨범 차트 1위에 올랐는데, 자매가 같은 해에 1위를 차지한 건 이번이 처음이다. 두 앨범은 여러모로 다르지만 블랙 페미니즘에 기반을 두고 있다는 건 공통점이다. 특히 비욘세가 인종 문제를 정면으로 다룬 건 이 앨범이 처음이다. 페미니스트로 알려진 배우 젠다야 콜먼, 어맨들라 스텐버그 등이 비욘세 옆에 앉아 있는 뮤직비디오 장면은 흑인 페미니스트들의 연대를 함축적으로 보여준다. 텍사스 대학은 《Lemonade》를 통해 블랙 페미니즘을 읽는 강좌를 개설했다. 모네이는 두 자매와 절친한 사이로 알려져 있다. 특히 솔란지는 모네이와 음악적 영향을 주고받는 동료로 모네이의 곡 <Electric Lady>에 참여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