슈퍼맨의 약점이 크립토나이트이고, 배트맨의 약점이 이름과 얼굴을 숨기고 폭력적인 삶을 사는 자경단원의 어둡고 황폐한 마음이라면, 스파이더맨의 약점은 우유부단함과 가족에 대한 죄의식이다. 한편 미국 최대의 무기 생산업체 대표이며 아이언맨이라는 인류 최고의 보병 개인 화기인 아머를 장착한 토니 스타크의 약점은 바로 알코올이다. 사업과 연애에 문제가 생기자 그가 도망친 곳은 병 속의 악마, 술이다. 데드풀이 그를 다시 알코올 중독자로 만들라는 청부를 받고 찾았을 때 그는 금단증상 때문에 제정신이 아닌 채 더러운 삼류 호텔방에서 아이언맨 팬티 한장만 걸친 외설스런 모습으로 소파에 파묻혀 있었다.
토니 스타크는 술에 취해 아이언맨 아머를 장착하고 비틀비틀 하늘을 날아 화학약품 수송열차의 탈선 사고현장을 찾아가 판단력이 마비된 채로 화학약품 탱크를 들어올렸다가 놓치는 바람에 엄청난 재앙을 만든다. 사고 후, 술을 끊는다고는 했지만 금단증상이 심한 상태에서 민간인인 대출업자를 찾아가 사무실 집기를 부수고 협박까지 하는 깡패와 다름없는 행동을 한다. 그는 아무도 제어할 수 없는 위험한 깡패다. 자신이 심각한 지경에 이르렀다는 것을 깨달은 토니는 엄청난 노력으로 금주를 하지만 또 술을 마시고 미친 짓거리를 할지 모른다는 두려움을 안고 사는 신세가 되었다. ‘초인 자경단들 중 누군가가 자신처럼 미친 짓을 한다면 과연 어떤 일이 일어날 것인가?’를 우려한 토니는 정부와 함께 초인등록법을 만든다. 미국의 초인 자경단원들은 예외 없이 정부기관에 신고를 하고 관리를 받아야 한다는 것. 토니의 취지를 이해하는 많은 초인 자경단원들이 마스크를 벗어 자신의 신분을 밝히고 정부에서 주는 월급을 타먹는 존재가 되지만 몇몇 초인들은 초인등록법이 미국의 자유정신에 위배된다며 반대를 하고 나선다. 그 주역이 캡틴 아메리카다. 초인등록법에 반대하는 캡틴 아메리카와 그 일당들은 정부와 시민들에게 지탄을 받고, 정부와 토니는 그들을 불법으로 규정하고 그들과 대립, 급기야는 싸움을 벌여 수많은 민간인들을 죽거나 다치게 하는 비극을 만들어낸다.
최악의 악당들이 뭉치다
서로 잘 아는 사이였고, 심지어 동료였던 초인 자경대원들이 서로 죽고 죽이는 관계까지 되었던 것. 관계의 종말! 캡틴 아메리카와 그를 지지하는 초인들은 지하로 숨어버리고, 정부는 그들을 수배하고 뒤를 쫓기 시작한다. 토니와 그 지지 세력들에게 옛 동료들을 체포하기 위해 서로 싸우는 것은 매우 힘겨운 일이고 마음에 큰 상처가 된다. 캡틴 아메리카는 아이언맨 토니 스타크를 나치 또는 매카시라 하고, 정부에서는 캡틴 아메리카를 무법자, 테러리스트라 부른다. 상황이 이렇게 흘러가자 정부는 토니가 초인등록법에 반대하는 초인들을 잡아들이는 데 부적합한 인물이라 생각하고 그를 밀어내버리고, 최선의 악당들을 잡기 위해 최악의 악당들을 모아들인다. 그 이름은 썬더볼츠.
썬더볼츠 대원들은 과거 캡틴 아메리카를 비롯한 초인 자경단원들에게 체포당했던 이력이 있는 초인 악당. 즉 빌런들이다. 빌런은 과거 로마 시대에는 농장에서 일하는 농민들을 가리키는 말이었고 그들이 사는 곳을 빌리지라 불렀으나 마블 코믹스의 초인 세계에서는 악당을 뜻하는 단어가 되었다. 중세 시대 농노들이 언제라도 도적떼가 되거나 강도가 되어 귀족들의 목을 노렸던 것처럼 빌런들은 초인들의 목덜미를 노린다.
썬더볼츠의 국장은 조울증 증세가 있고, 함께 먹어서는 안 되는 약들을 매일 한 움큼씩 삼키는 자이며 스파이더맨 최악의 숙적이었던 고블린 노먼 오스본이다. 썬더볼츠팀의 리더는 조정과 기만에 능한 아름다운 미녀 문스톤. 그녀는 정신과 의사로 일하면서 여덟명의 환자를 자살로 몰았고, 여섯명을 이유 없이 강제 입원시킨 사이코패스. 불스 아이는 누군가를 죽일 때마다 신과 가까워진다며 “신은 창조하고 나는 파괴한다”는 말과 함께, 그런 것이 종교 아니겠냐고 하는 전형적인 연쇄살인마. 소드맨은 죽은 쌍둥이 여동생의 피부로 자신의 칼 손잡이를 감싼 유럽 귀족 가문의 변태 악당이다. 페넌스는 아이언 메이든을 아머로 장착하고 육체의 고통을 느껴야만 힘을 발휘하는 피학성 변태 악당. 항상 배고픔에 시달리며 인간을 찢어발기고 먹어치워버리려는 왕성한 인육탐식자 베놈. 그리고 중국에서 온 사이코패스 첸 박사. 이들 중 가장 인간다운 면모가 있지만 그래도 악당인 송 버드. 이들이 뭉쳤을 때 그 힘은 가공할 만하다. 하지만 모든 존재가 약점을 가지고 있듯 이들 최악의 악당들에게도 없는 것이 있다. 이들에게는 타자에 대한 신뢰가 없다. 그렇기 때문에 이들은 언제나 거짓말만 한다. 오직 자신의 이익 또는 탐욕을 채우는 조건으로 같이 다니기만 하는 것이다.
에피소드별로 다른 작화 즐기기
더럽고 치사한 생각과 인간이 가질 수 있는 가장 어두운 마음을 가지고 있는 자들인 썬더볼츠 대원들이 전국에 흩어져 숨어 있는, 초인등록을 거부한 초인 자경단원들을 잔혹한 방법으로 잡아 들이는 잔혹한 만화가 바로 <썬더볼츠: 악당을 믿다>다. 원작자는 한 사람이지만 에피소드마다 그린 이가 다르다. 그린 이가 달라지면서 컷의 운용 방식이 달라지고, 그림체 역시 달라진다. 이런 점이 만화를 집중해서 읽기에 고통스럽게 하기도 하지만 만화가들의 연출 방식을 비교해보는 즐거움도 있다. 한국 출간본에는 서비스로 세편의 에피소드가 추가되어 있다. 서비스 에피소드중 마지막 편은 썬더볼츠의 빌런들이 자신들보다 월등히 약한 초인 자경단원 한명을 토끼몰이하듯이 완벽한 팀워크로 갈기갈기 찢어서 잡는 박력의 에피소드가 들어 있다. 물론 썬더볼츠들은 자신들을 조금이라도 힘겹게 하는 상대를 만나면 서로의 탐욕과 이기심 때문에 팀워크가 산산이 쪼개지고 무참하게 패배하고 말지만.
만화 <썬더볼츠: 악당을 믿다>와 함께 보면 좋을 영화 한편을 추가한다. 샘 페킨파의 영화 <와일드 번치>(1969)에는 최선의 악당들인 파이크 비숍(월리엄 홀든) 일당을 뒤쫓는 최악의 악당들이 등장한다. 이 최악의 악당들의 리더는 파이크의 가장 친한 친구였으나 그에게 배신당한 이력이 있는 손튼(로버트 라이언). 손튼이 갖은 수를 써 파이크를 잡으려 하지만 그의 밑에 있는 악당들의 탐욕과 기만은 손튼에게 넌더리가 나게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