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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eople] <눈발> 조재민 감독
이예지 사진 최성열 2017-03-09

겨울의 마지막, 분분히 흩날리는 눈발처럼 애틋하고 아픈 감정을 품은 소년과 소녀가 있다. <눈발>(2016)은 명필름영화학교 1호 작품, 2014년 영화진흥위원회 장편 시나리오 제작지원작, 전주국제영화제 시네마프로젝트 2016까지, 공개 전부터 여러 이슈로 기대를 모은 작품이었다. 한국예술종합학교 영상원 영화과를 졸업하고 명필름영화학교 1기로 입학해 처음으로 영화를 완성한 조재민 감독을 만나 첫 장편영화에 대한, 그리고 <눈발>을 시작하게 한 오래전 기억에 대한 이야기를 들어보았다.

-경남 고성 촬영현장에서 보고 1년 만이다. 영화는 만족스럽게 나왔나.

=2016년 전주국제영화제에서 첫 공개된 후 편집에서 달라진 게 꽤 많다. 편집기사가 <우리들>(2015) 박세영 기사로 바뀌면서 신의 순서와 호흡이 바뀌었다. 그때는 영화제에 제출하기 위해 급하게 한 감이 있는데, 다듬으면서 많이 좋아졌다. 한겨울에 낮 촬영이 대부분이라 하루에 네 테이크 이상 못 찍어 빠듯했지만 할 수 있는 한에서 최선을 다했다. (웃음)

-자전적인 이야기로, 비슷한 경험에서 누군가를 외면했던 죄책감에 대한 이야기라고 한 적 있다.

=고성에서 어린 시절을 보낼 때, 타인의 고통을 보고 방관했던 기억이 오래 남더라. 돕고 싶지만 나 역시 도태될까봐 다가서지 못했던 딜레마를 꼭 영화로 만들고 싶었다. 영화 속 모델이 된 동창들에게 개봉하면 영화를 보라고 했다. 피해자 친구를 찾으려고도 생각해봤는데, 그게 그 친구에게 더 상처가 될까봐 그러지 않았다. 고성을 떠났다고만 알고 있다.

-설정을 뒤집어 아이러니하게 배치한 부분이 많다. 가해자로 지목된 남자의 딸이 집단적 폭력의 희생양이 되고, 민식(박진영)은 아끼는 염소를 자신이 보약으로 먹고 있었음을 알게 된다. 이런 장치들은 무엇을 의도한 건가.

=아이러니를 통해 마을 공동체 안에 숨겨진 부조리의 충돌을 보여주고 싶었다. 시골은 협소하고 폐쇄적이기 때문에 도시보다 부정부패가 심하고, 수면 위로 드러나지 않는 성범죄도 비일비재하다. 정작 행하는 사람들은 그게 폭력인지도 모르는 폭력들. 이런 아이러니들은 민식이 예주(지우)에게 선뜻 다가서지 못하고 거리를 둘 수밖에 없게끔 설정한 요소들이기도 하다.

-<씨네21> 1041호 인터뷰에서 ‘연민에서 나아간 교감을 그려내겠다’고 했는데,

=민식은 연민과 교감 사이, 용기와 나약함 사이에서 갈팡질팡하는 인물이다. 만들다보니 좀 비관적이 됐다. 루이스 브뉘엘 감독이 스페인 독재정권 시절을 부조리극과 블랙코미디로 보여주며 풍자했듯, 세계가 좋아지려면 역설을 보여줘야 한다는 생각이 들더라. 이 사회에 히어로는 없고, 희망을 위해서는 우리가 정신을 차려야 한다는 걸 말하려 했다.

-스승인 이창동 감독이 제목을 지어줬다. 종교와 구원에 대한 테마에 있어선 <밀양>(2007)도 생각나고. 영향받은 바가 있나.

=간결하게 함축적으로 ‘눈발’이라고 지어주셨다. 이 부조리한 마을을 덮어줄 수 있는 흰 눈이 오길 바라는 아이들의 마음이 담겨 있어 좋더라. 이창동 감독님의 표현방식을 굉장히 좋아하는데, <밀양>처럼 특정 지역의 지역성을 구현하는 것, 아이러니와 부조리에 대한 표현, 사람 사이의 간극에서 발생하는 어떤 냉담함과 서늘함을 보여주는 방식이 조금 영향을 받은 것 같기도 하다.

-차기작은.

=최근 각각 장르가 다른 시나리오 3개를 탈고했다. 위안부를 소재로 한 가족드라마, 드라이버가 주인공인 누아르 장르, SF까지 다양하다. (웃음) 위안부 영화는 3대에 걸친 죄의식과 대속에 관한 이야기다. 내 작품들을 관통하는 주제는 아무래도 죄의식과 용서인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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