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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카사쿠 긴지 인터뷰
2002-04-06

“파괴충동에 몸을 맡기는 건 매력적”

지난 3월26일 오후 <배틀로얄>의 제작사 도에이 사무실에서 70세의 후카사쿠 긴지 감독을 만났다. 이 자리에는 그의 아들이자 이 영화의 프로듀서이기도 한 후카사쿠 겐타도 함께 했다. 우선 한국에서 개봉하게 된 <배틀로얄>에 대한 궁금증을 후카사쿠 감독으로부터 듣고 싶었다.

이 영화를 만든 이유는 무엇인가.

후카사쿠 긴지(이하 긴지) 70년대까지 내가 했던 일은 <의리없는 전쟁> 시리즈 같은 야쿠자영화였다. 이처럼 폭력이 주축을 이루는 작품들이 평판을 얻었지만, 일본영화가 점점 더 폭력과 에로티시즘이라는 두개의 방향으로만 나아가는 상황에서 내 영화도 그중 일익을 담당하고 있다는 이야기도 많이 들었다. 80년대에는 여성 관객이 많아져서인지 그런 영화의 기획을 실현시키는 것이 어려웠다. 결국 80년대나 90년대에는 액션영화를 2편이나 3편 정도밖에 만들지 못했다. 그런데 2년 전 어느 날 우연히 조감독 일을 하고 있던 아들이 소설 <배틀로얄>을 들고 나를 찾아왔다. 그 책 표지에 써 있던 ‘중학생 42명 모두 죽이다’라는 카피를 봤고 이를 영화화하면 재미있겠다는 생각이 번쩍 떠올랐다. 그래서 책 내용을 읽기도 전에 원작자와 접촉을 시작했고, 기획서를 써서 제작사인 도에이에 제안했다. 처음엔 반대도 많았다. 하지만 원작자나 젊은 프로듀서들이 내 편이 돼줬고 덕분에 영화로 만들 수 있게 됐다. 결국 영화를 만들어놓고 ‘혹시 잘될지도 모르겠다’고 생각하는 가운데 국회의원이 떠들어대는 등 여러 가지 일이 일어났다. 그 모두가 순풍으로 작용했다. 처음에는 잘될 것이라는 생각이 조금도 없었는데….

국회에서 벌어졌던 논의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나.

긴지 영화에 반대하는 의원의 발언은 너무 졸렬해서 어이가 없었다. 한편 영화윤리규정관리 위원회에서 R등급 지정을 받은 것도 처음이었다. 잔혹성으로만 보면 더 심한 작품도 감독해왔지만, 이번에는 아이들의 폭력을 조장할 가능성이 있는 작품이란 판단 때문이었지도 모르겠다. 한 가지 재미있는 일은 그런 대항세력이 나오면 영화에 신바람이 난다는 것이다. 주위에서 떠들면 떠들수록 관객의 기대도 높아진다. 그런 것이다. 영화란 것은.

이 소설의 어떤 점에 끌렸나.

긴지 일본뿐만 아니지만 소년범죄가 많이 발생하고 있으며, 어른과 아이들 사이의 틈은 갈수록 벌어지고 있다. 원작소설은 그런 세계적 흐름 안에서 15살 소년들을 중심에 놓고 쓴 일종의 엔터테인먼트였다. 그리고 15살이라는 연령은 전쟁이 끝난 뒤 내가 영화에 흥미를 갖기 시작한 중요한 나이였다. 주인공들의 나이가 15살이라는 점, 소설의 내용, 요즘의 사회적 경향을 나란히 할 때, 기획으로 충분히 성립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

70살이란 나이에, 50년 넘게 차이가 나는 10대 소년, 소녀와 같이 영화를 만드는 일은 힘들지 않았나.

긴지 어른이 된 뒤 15살 소년들과 같은 공간 안에서 서로 마주 본 일조차 없었던 탓에 과연 잘할 수 있을까 하는 생각도 있었다. 다만 내가 15살 때 경험했던 일들이 도움이 됐다. 그때 나는 미군의 사격으로 죽은 친구 30여명의 시체를 처리했었다. 그리고 비교적 그들과 세대가 가까운 간타에게 각본을 맡기면 큰 잘못은 일어나지 않겠다고 생각했다.

액션 연기 지도는 어떻게 했나.

긴지 지금 일본에선 액션영화가 거의 만들어지지 않아 배우들은 경험이 없었다. 그러나 모두 젊은 친구들이라 내 주문에 따라 움직일 수는 있었다. 그들은 육체적 훈련 등도 함께하면서 촬영했는데 배우들 자신이 재미있어 하는 듯 보였다.

실제로 10대 젊은이를 만나보니 그들의 인상은 어땠나.

긴지 신문 등에 보도되는 사건을 통해 보이는 아이들의 표정이나 그런 사건에 대한 반응과는 다른 것을 15살의 육체는 가지고 있다. 10대 배우들을 모아 허구적인 공간 안에서 그들의 이야기를 그려보니 신문 또는 TV에 나오는 인상과는 다르다는 것을 파악할 수 있었다.

영화의 마지막에 ‘달려라’라는 자막이 인상적이다. 어떤 뜻인가.

긴지 서로 죽고 죽이는 극단적인 상황 안에서 그들이 할 수 있는 일은 힘껏 달리는 것밖에 없다. 하지만 그들은 어디로 달려야 하는지 방향을 찾아낼 수 없다. 달리는 행위 안에 사회에 대한, 어른에 대한 저항감을 담을 수 있다고 생각했다.

후카사쿠 겐타(이하 겐타) 감독은 촬영현장에서도 학생들에게 “달려라, 넘어져라, 죽어라”라고 계속해서 말하고 있었다. (웃음)

마지막 장면에서 노리코가 나이프를 간직하는 장면은, 아이들이 어른과 싸워야 한다는 의미인가. 아니면 자신을 보호해야 한다는 의미인가.

긴지 그녀 자신은 그런 자세한 계산을 하지는 않았다. 차라리 자신이 앞으로 함께 살아갈 소년과 함께 미래를 향해서 계속해서 달려간다는 결의의 표명이다. 자기의 집을 잊고 나가는 경우에는 일종의 여권 같은 의미도 포함할 수 있다. 그렇게 여러 가지를 상징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 ‘달려라’라는 말의 구체적 모습 중 하나라고 생각할 수 있다.

기타노 다케시의 연기가 인상적이다. 빗속에서 노리코에게 우산을 받쳐주는 장면은 원작에서 따온 것인가? 영화에만 있는 것인가.

겐타 기타노가 밖으로 나가면 학생들이 죽일 것이라며 원작자가 마지막까지 반대한 장면이다. 다만 중심인물인 기타노, 소마 미쓰코, 나나하라 슈야, 나카가와 노리코가 만나게 되는 장면이 꼭 필요하다고 생각해 추가했다.

그 장면의 의미를 듣고 싶다.

긴지 아이들을 죽음으로 몰아넣은 어른쪽 게임 주최자 중 하나인 기타노가 약간 보여준 달콤새콤한 감상의 표현….

이 영화 안에서 많은 학생이 죽지만, 마지막에 살아남은 주인공들은 뒤돌아보지 않고 앞으로 어떻게 살 수 있을까라며 미래를 향한다.

긴지 나는 죽은 사람이 부활할 수 있는 방법은 하나도 없다고 생각해왔다. (친구들의 시체를 본) 15살의 기억을 더듬어도 센티멘털한 감정은 흘러나오지 않는다.

<배틀로얄>에서는 피가 난무하는 화면과 대조적으로, 웅장하면서도 서정적인 음악이 인상적이다. 음악은 어떻게 고른 것인가.

겐타 각본을 쓰고 있을 때, 우연히 어떤 공연에서 클래식 음악의 왈츠나 행진곡을 들을 기회가 있었다. 그런 분위기의 음악을 영화 속 기타노가 매일 하는 방송의 백그라운드 뮤직으로 쓰겠다는 아이디어도 나왔다. 다른 오리지널 스코어는 아마노 마사미치가 작곡한 것이다. 10대 소년, 소녀들이 듣기에 쉬운 음악이 가장 좋다고 생각해 할리우드 분위기의 오케스트레이션을 선택했다.

<인의없는 전쟁> 이후 야쿠자물을 비롯한 액션영화들을 많이 만들었다. 그것이 감독이 지향하는, 혹은 선호하는 장르인가.

긴지 그보다는 차라리 내가 살아온 사회상황에 대한 어떤 저항감 같은 것이 액션영화라는 모습으로 나왔던 것이다.

70년대의 작품을 보면 파괴에 대한 충동 같은 것을 느끼는데 지금도 그런 충동이 있나.

긴지 폭탄을 준비하는 것이라든가 그런 것에 대한 동경은 있다. 그런 상황에 마음이 끌리기 때문에 영화를 만들고 있을지도 모르겠다. 어쨌든 파괴적 충동에 몸을 맡기면서 파괴를 그리는 것은 매력적인 표현 세계다.

자신이 꼽는 대표작은 무엇인가.

긴지 스스로 특정한 작품을 꼽는 것은 어렵다. 모든 작품에게 똑같은 애착이 있는데….

한 인터뷰에서 “패전 뒤 모든 어른을 불신하게 되었다”는 말을 한 적이 있다. 지금도 그렇게 생각하고 있나.

긴지 자연스럽게 어른의 나이가 되었지만, 당시의 어른들이 우리 세대를 어떤 지옥 같은 곳으로 몰아붙였다는 기억은 아직 남아 있다. 그런 생각을 용수철처럼 사용해 영화를 만들려고 하다보면 소재 역시 어른에 대한 반발이란 모습이 되지 않을 수 없다. 예를 들면 <인의없는 전쟁>의 두목과 부하라는 설정 등에 반영되고 있다.

최근의 일본영화 중에서 인상적인 작품이 있다면.

긴지 이와이 순지 감독의 <릴리 슈슈의 모든 것>.

겐타 그 영화엔 후카사쿠 감독이 <배틀로얄>의 오디션에서 불합격 판정을 내린 배우들이 출연하고 있다.(웃음)

긴지 <배틀로얄>은 액션영화이며, 그쪽은 진지하게 일상을 그린 작품이니 연기가 다를 수밖에 없다. 다만 <배틀로얄>에서는 표현할 수 없었던 것이 전해지는 작품이며, 이렇게 만들 수도 있구나 하면서 깊이 마음에 새기고 봤다.

다음 기획은.

긴지 어떤 의미에서건 <배틀로얄>과 관계를 맺는 작품을 만들 수 있으면 좋겠다는 마음이 있다.

겐다 젊은 배우들과 또 놀고 싶다는 뜻이죠?

긴지 맞다. 나와 같은 나이의 배우들을 모아놓으면 재미가 없다. 도쿄=사토 유 통신원▶ <배틀로얄>, 그 폭력과 피와 결핍의 아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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