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속되는 한파에도 광장의 촛불은 꺼지지 않고 있다. 누군가는 촛불이 변질되었다고 하지만 어림없는 소리다. 연일 폭로되는 국가의 허약한 실체 앞에서 촛불은 간명히 불타고 있다. 박근혜 정권의 퇴진과 후퇴한 민주주의 회복이 그것이다.
문화·예술인들은 지난해 11월4일 시국선언 이후 광화문에 캠핑촌을 차리고 긴급행동에 돌입하였고 블랙리스트 책임자 고발과 특검 수사는 박근혜 정권의 천박한 통치 철학을 핵심적으로 드러냈다. ‘예술계 좌파 책동에 투쟁적으로 대응해야’ 한다는 시대착오적 논리가 국정원의 협조 아래 청와대-문화체육관광부(이하 문체부)의 승인을 거쳐 산하 기관에 일사불란하게 전달되었다. 십수년 전 사라진 줄 알았던 문화 독재와 검열의 부활에 국가 시스템은 속수무책으로 무능하였다. 예술인들은 그 상처를 직시하며 100일 가까이 광장을 지키고 있다.
블랙리스트는 당초 목표에 근본적인 타격을 주지 못하였다. 정부 비판적인 독립영화는 여전히 제작되었고, 언제나 상영되었으며, 극장과 배급사는 질기게 버티고 부활하였다. 기업에까지 뻗친 구체적 탄압 역시 산업을 위축시키진 못했다. 이제 화살은 거꾸로 구시대의 유령과 함께 사라질 자들의 이름을 겨누고 있다. 현장의 경험과 사례들이 증거가 되어 대통령 탄핵의 주요 근거를 이루게 되었다. 역설의 정치학이다.
조윤선 문체부 전 장관이 구속되자 문체부는 대국민 사과문을 발표하고 비상시국을 모면하고자 한다. 뒤늦게 향후 블랙리스트를 엄단하기 위한 법률 조항을 신설(‘문화기본법’ 등에 처벌 조항을 두겠다는 것)하겠다는 계획도 세운다. 표현의 자유를 명확히 하는 법률 조항을 정비하고 강화하겠다는 방침은 환영할 만한 일이다. 하지만 문화계의 반응은 싸늘하다. 선행될 것이 있기 때문이다. 현재 영화인들은 정책을 거부하며 영화진흥위원회(이하 영진위)에 위원장 사퇴를 포함한 적폐 청산을 요구하고 있다. 블랙리스트의 정중앙에 있었던 6기 영진위의 책임 있는 답변을 기다리고 있다. 영진위의 파트너인 영화인 대다수가 블랙리스트였다. 철저한 진상 규명만이 조직의 새로운 출발임을 분명히 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