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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페셜] <라라랜드> 로케이션을 가다
안현진(LA 통신원) 2017-01-23

지난 1월8일 열린 제74회 골든글로브 시상식의 주인공은 <라라랜드>였다. 작품상, 감독상, 각본상, 음악상, 남녀주연상 등 7개 부문을 수상한 <라라랜드>는, 데이미언 셔젤 감독이 쓴 영화의 기획의도에 따르면 “불리지 못한 노래와 실현되지 못한 아이디어들이 부유하는 도시 로스앤젤레스(이하 LA)를 배경으로, 꿈을 가진 예술가들이 펼치는 사랑과 이별을 그린” 영화다. 제목에서부터 LA가 가지는 다양한 의미를 함축한 <라라랜드>는 애초에 세트를 짓자고 한 제작사 라이언스게이트의 바람과 달리 실제 도시 곳곳을 로케이션으로 촬영됐다.

미아(에마 스톤)와 세바스찬(라이언 고슬링)이 춤추고 노래하고 사랑하는 <라라랜드>의 로케이션 8곳을 직접 찾아가봤다. 그리피스 파크, 그리피스 천문대, 더라이트하우스 카페, 허모사비치 피어, 리알토 극장, 콜로라도 스트리트 다리, 엘 레이 극장, 그리고 <You are a Star> 벽화다. 현대가 배경인 영화와 달리 로케이션은 LA의 역사와 함께한 장소들이었다.

<You are a Star> 벽화(할리우드)

LA는, 역시 데이미언 셔젤 감독의 말을 빌리면 “전세계에서 가장 경쟁적인 도시이며, 꿈을 먹고사는 도시, 그런 가운데 황홀하게 로맨틱한 도시”다. LA에서 길을 걷다 마주치는 사람들의 대부분이 영화산업의 언저리에서 기회를 기다린 경험이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미아가 카페에서 파트타이머로 일하며 틈틈이 오디션을 보러 다니는 것이나, 하고 싶은 음악을 하기 위해 하기 싫은 연주를 해야 하는 세바스찬의 하루는 꿈을 좇아 이곳으로 찾아온 젊은이들의 현실이다. 할리우드 불러바드와 윌콕스 애비뉴가 만나는 곳, 그 벽에는 <You are a Star>라는 제목의 벽화가 있다. 불 꺼진 영화관의 객석에 찰리 채플린, 제임스 딘, 마릴린 먼로, 엘리자베스 테일러, 우디 앨런, 주디 갈런드, 미키 루니 등 할리우드 스타들이 앉아 영화를 보는 모습인데, 그들의 시선이 향하는 곳에 윌콕스 애비뉴가 있어 그 길을 지나는 사람이 영화의 주인공이 되는 벽화다. 1983년 아티스트 토머스 수리야가 그렸고, 세월이 지남에 따라 일부가 파손되고 풍화됐는데 1995년에 지금의 모습으로 복원됐다.

영화 초반에 이 벽화는 흐르듯 등장한다. 재미없는 파티에서 시간을 보낸 미아가 자신의 차가 견인된 걸 알고 마음이 상해 터덜터덜 걷는데, 이 벽화가 그려진 길을 걷다가 세바스찬의 피아노 연주에 이끌려 ‘립톤스’에 들어간다. 그런데 변하지 않는 건 없는 걸까? 립톤스는 그 자리에 없었다. 대신 ‘뮤즈’(Muse)라는 간판이 걸려 있었다. 식당 내부까지 바뀌었을까 하고 안타까워할 필요는 없다. 세바스찬이 크리스마스에 해고당하는 립톤스의 내부는 버뱅크의 ‘스모크하우스 레스토랑’에서 촬영됐다.

그리피스 천문대(LA)

그리피스 천문대는 미아와 세바스찬의 관계가 절정에 이르러 연애로 발전하는 공간이다. 두 사람은 첫 데이트 장소인 극장에서 영사기가 고장나는 바람에 니콜라스 레이의 <이유 없는 반항>(1955)을 다 보지 못하고 극장을 나선다. 손가락을 꼼지락거리다 불이 켜지는 바람에 키스를 못한 남녀는 스크린에서 마지막으로 보여준 장소인 그리피스 천문대로 달려간다. 아름다운 도시의 야경을 내려다보며 둘은 최고의 시간을 보낸다. 별이 쏟아지는 인공 하늘을 배경으로 공중에서 춤추는 장면이 연출될 정도다. 그런데 이 장면은 영화에서 유일하게 세트를 지어 촬영됐다고 한다. 그리피스 천문대쪽에서 엄격하게 건물 내부 촬영을 제한했기 때문이다. 도시를 내려다보는 아름다운 전망 덕분에 그리피스 천문대는 이제 막 사랑을 시작하는 연인들이 즐겨찾는 LA의 관광명소다. 천문대는 매일 오전 10시부터 밤 10시까지 개방되지만 공원은 더 일찍 개방하기에 운영시간에 맞춰 찾아갔다가는 주차할 곳이 없어 곤란할 수 있다.

그리피스 파크(LA)

그리피스 파크는 그리피스 천문대로 오르는 길이다. 공원 입구에서부터 천문대까지 어른 걸음으로 한 시간 정도 쉬지 않고 올라야 도착할 수 있다. 차로가 없는 것은 아닌데 주차할 공간이 없어 공원 입구에 차를 세우고 걸어가는 사람들도 많다. 가파르지 않지만 제법 숨이 차고, 오르다보면 LA 시내가 한눈에 들어온다. 사진은 세바스찬과 미아가 탭댄스와 노래(<A Lovely Night>)를 하는 장면이 촬영된 곳이다. 사실 이 장면을 촬영한 곳이 정확하게 어디인지는 의견이 분분하다. <라라랜드>의 인기를 증명이라도 하듯 온라인에는 영화의 로케이션에 대한 정보가 많이 있는데, 그리피스 파크의 오르막길에서 촬영했다는 의견이 있는가 하면, 그리피스 파크가 내려다보이는 마운틴 할리우드 드라이브(멀홀랜드 드라이브 근처)의 ‘캐시의 코너’가 맞다는 설도 있다. 지형지물이나 풍경을 근거로 장소를 찾기도 쉽지 않다. <A Lovely Night> 장면을 찍은 시점이 저녁때라 주변이 어둡고, 미아가 신발을 갈아신기 위해 앉았던 벤치와 두 사람을 비추던 가로등은 영화 제작팀에서 추가한 것이라고 한다.

더 라이트하우스 카페 (허모사비치)

LA의 서쪽은 바다다. 길게 이어지는 바닷가의 남단, 허모사비치의 번화가 끝자락에 자리한 더 라이트하우스 카페는 “재즈를 싫어한다”는 미아를 세바스찬이 데려가는 곳이다. 실제로도 재즈 쇼케이스를 정기적으로 열어 유명해진 이 카페는 1949년에 지어진 이래 지금까지 올드타이머 재즈팬들과 현지 젊은이들의 꾸준한 사랑을 받아왔다.

마침 더 라이트하우스 카페를 찾아간 날은 토요일 오전이었는데, 재즈 밴드가 카페 내부의 작은 무대에서 공연을 준비하고 있었다. 그때 백발의 할머니가 다가오더니 자신을 “재즈맨 오지 카데나”의 미망인 글로리아라고 소개한다. 1940년대부터 재즈 밴드를 이 카페에 데려온 사람이 그의 남편이었다며, 더 라이트하우스 카페에 걸린 재즈뮤지션의 사진과 레코딩 앨범들은 모두 그가 기증한 물건이라고 덧붙였다.

재즈뿐 아니라 레게, 살사, 컨트리음악 등 주중에는 매일 다른 장르의 음악을 무대에 올리는 점을 빼면 더 라이트하우스 카페는 미국의 여느 바와 다른 점이 거의 없다. 인테리어가 고풍스러운 내부는 어둡고, 바닥은 끈적하다. 서버는 상냥하고, 기름진 안주와 맥주, 칵테일을 메뉴로 낸다. 영화에서 리알토 극장에서의 재회를 약속하고 미아와 세바스찬이 뒤돌아 각자 걸어가는 장면은 카페의 뒤쪽이다.

허모사비치 피어(허모사비치)

더 라이트하우스 카페 앞 해변을 지나면 바다로 쭉 뻗은 허모사비치 피어가 있다. 보통 바다 위로 길게 뻗은 부두나 잔교를, 영어로는 피어(pier)라고 부른다. 어스름이 뿌려진 석양에, 홀로 피어로 걸어나온 세바스찬은 나지막이 <City of Stars>를 부르며 춤을 춘다.

영화 속 쓸쓸했던 분위기와 달리 캘리포니아의 해변들에 위치한 피어는 언제나 사람들로 북적인다. 피어의 끝에는 낚시를 즐기는 사람들이 있고, 갈매기, 펠리컨 등 바다새들이 낚시꾼들로부터 공짜 물고기를 얻어볼 심산으로 주변을 맴돈다. 발밑에서 철썩이는 파도를 구경하는 사람, 그 위를 뛰어다니는 사람, 자전거 타는 사람 등 현지인과 관광객이 어우러지는 장소이기도 하다. 허모사비치는 LA에서 가까운 샌타모니카 비치나 베니스 비치보다는 남쪽에 위치하는데, 모래나 수질이 깨끗한 편이다.

리알토 극장(패서디나)

리알토 극장은 세바스찬과 미아의 첫 데이트 장소이기도 하지만 나중에 미아가 <So Long, Boulder City>라는 1인극을 올린 뒤 좌절을 맛보는 무대이기도 하다. 사우스패서디나에 있는 리알토 극장은 1925년에 지어졌고, 멀티플렉스의 유행으로 고전영화 재상영관으로 사용되다가 2007년 완전히 문을 닫았다.

<LA타임스>는 리알토 극장을 두고 “이집트 키치와 스패니시 바로크가 뒤섞인 건축양식”이라고 소개했는데, 이런 식으로 검증되지 않은 여러 양식이 뒤섞여 사적지도 되지 못하는 오래된 영화관들이 LA에는 여러 곳 있다. 낙후된 시설과 단관이라는 한계로 대부분 예술영화 전용관이나 고전영화 재상영관으로 사용되거나 프라이비트 스크리닝을 위해 대여할 뿐 영화관으로서의 기능은 하지 못하는 것이 현실이다.

SNS에서 <라라랜드>의 촬영지를 소개하며 나온 리알토 극장의 사진을 보면 극장 내부가 의류 브랜드의 매장으로 사용되고 있는데, 실제로 찾아간 리알토 극장의 문은 널빤지 두개로 막혀 있었다. 이 건물은 2014년 유명 부동산 개발업자에게 팔렸는데, 주류를 판매하는 영화관으로 재개발될 예정이라고 한다.

콜로라도 스트리트 브리지(패서디나)

역시 사우스패서디나에 놓인 콜로라도 스트리트 브리지는, 멋지게 차려입은 미아와 세바스찬이 데이트 중에 걸어서 건너는 짧은 다리다. 남캘리포니아를 동서로 달리는 101번 고속도로의 일부 구간과 나란히 놓인 이 다리는 지상에서 약 46m 높이인데, 1913년 지어질 당시만 해도 “세계에서 가장 높은 콘크리트 다리”였다. 다리의 아래로 흐르는 아로요 건천의 가파른 비탈면을 우마차와 나귀로 오르내리는 번거로움을 없애려 축조됐다. 우아한 곡선미와 장식으로 건축할 당시부터 지금까지도 많은 사람들의 사랑을 받아왔다.

그런데 이 다리에는 “자살다리”라는 별명도 있다. 1919년 11월 처음으로 이 다리에서 사람이 뛰어내려 자살했고, 그 뒤 대공황기를 거치며 50명이 더 뛰어내렸다고 전해진다. 어떤 기록에 따르면 100명 이상이라고 적혀 있기도 하다. 그래서인지 다리 입구를 지키는 가로등에는 “희망은 있다”(There is a Hope)라고 적혀 있다.

엘 레이 극장(LA)

엘 레이 극장은 <라라랜드>에서 내부만 보여진다. 정통 재즈 대신 퓨전 재즈를 선보이는 그룹 더 메신저스의 멤버가 된 세바스찬이 동료인 키스(존 레전드)와 함께 공연하는 극장이 바로 엘 레이 극장이다. 무대를 향해 관중이 열광할 때, 사랑하는 이의 변한 모습에 미아가 혼란스러워했던 곳.

앞서 소개한 리알토 극장과 달리 엘 레이 극장은 음악 공연을 위한 극장이다. 아르데코풍으로 지어졌으며, 크레이그 데이비드, 리앤 라임스 등 유명 뮤지션들의 공연도 자주 있어 한달에도 몇번씩 밤새 줄 서 입장하려는 관객으로 극장 앞은 인산인해를 이룬다. 엘 레이 극장이 처음부터 음악 공연을 위한 장소였던 것은 아니다. 1936년 건축 당시에는 단관극장으로 지어져 50년 동안 영화관으로 운영됐고, 1980년대 이후는 나이트클럽으로, 1994년부터 지금의 음악 공연장으로 운영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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