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델’ 이호정은 카메라 앞에서 여유가 넘쳤고 ‘배우’ 이호정은 자신의 진심을 솔직하게 꺼내 보이는 데 주저함이 없었다. 이호정은 16살에 모델 활동을 시작해 무수한 패션지의 화보를 장식했고, BSX, 잠뱅이, FUBU 등 다수의 의류 브랜드 모델로 얼굴을 알렸다. 트렌디한 패션 감각으로 주목받던 대세 모델은 빅뱅의 <우리 사랑하지 말아요>, 지코의 <나는 나 너는 너>, 어반자카파의 <널 사랑하지 않아> 등 뮤직비디오에서도 활약하며 활동 무대를 넓혀나갔다. 모델이 된 건 15살에 본 <무한도전> 덕이 컸다. 2010년 <무한도전> 달력 특집에 나온 모델 장윤주를 보고 모델 세계에 관심을 가졌고, “15년 만에 처음으로 ‘이 일이라면 자신 있게 잘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한다.
10대에 많은 것을 이룬 이호정은 20대가 되자 연기에 도전한다. “모델 일을 시작한 초창기부터 주위에선 연기를 해보는 게 어떻겠냐는 권유를 많이 했다.” 동글동글한 호감형 얼굴, 긴 팔다리로 빚어내는 자연스러운 포즈, 건강한 기운을 물씬 풍기는 미소는 모델로서뿐만 아니라 배우로서도 큰 자산이 될 터였다. 하지만 “기초부터 탄탄히 다져온 사람들과 연기로 경쟁해야 하는 상황”에서 모델로서의 인지도를 메리트 삼아 뜻도 없이 연기에 도전하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연기에 첫발을 내딛기까지 고민이 깊었다. 방황도 많이 했다. 내가 진짜 연기를 하고 싶은지 스스로에게 묻고 또 물었다. 그 시기 영화와 드라마를 많이 봤는데, 타인의 삶을 살아보는 배우들이 멋있어 보였다. 그들이 느끼는 감정을 내가 따라 느낀다는 게 신기했다. 그런 생각이 들자 연기가 하고 싶어졌다. 잘하고 싶어졌다.” 꽃길만 걷고 싶은 건 모두의 바람이지만 꽃길만 걸을 수 없는 게 엄연한 현실이다. 오디션을 보고 최종 문턱에서 쓴잔을 마시는 일이 반복됐다. 연기로 증명해 보이고 싶은데 연기로 증명해 보인 것이 없어 쉽사리 기회를 얻지 못했다. 자포자기 상태에서 만난 작품이 데뷔작 <불야성>이었다. 이호정이 연기한 재벌가의 막내딸 손마리는 탐욕에 허우적대는 인물들 사이에서 거의 유일하게 순수한 철부지 캐릭터다. 자신의 밝고 건강한 기운을 손마리 캐릭터에 이식해가며 이호정은 무사히 연기 신고식을 치르고 있는 중이다. <불야성>에 이어 첫 영화 촬영에도 착수했다. 강하늘, 박서준 주연의 <청년경찰>(감독 김주환)에선 영화의 중요한 키를 쥔 인물로 출연한다.
이호정은 “내 관점으로 해석하고 내 스타일대로 표현하고 싶어서”, “스스로 연기하는 버릇을 들이기 위해서” 따로 연기수업을 받지 않는다고 했다. 무난한 기성복이 아니라 세상에 하나뿐인 맞춤옷을 스스로 지어입고 멋진 쇼를 선보이겠다는 말처럼 들렸다. 머지않은 미래에 그 쇼를 스크린에서 감상할 수 있을 것 같다.
공통질문
01. 나를 한 문장으로 정의한다면.
후회 없이 지금 이 순간을 보내려고 노력하는 아이. 지금은 나를 찾아가는 과정인 것 같다. 그리고 온 힘을 다해 달려가는 중이다.
02. 함께 일하고 싶은 감독 & 배우.
천우희 선배님을 좋아한다. 좋아하는 배우와 함께 연기하면서 그 사람은 어떻게 연기하는지 보고 배울 수 있으면 좋을 것 같다. 함께 작업하고 싶은 감독님들은 너무 많은데, 혹시 외국 감독 말해도 되나? 그렇다면 우디 앨런! (웃음) 우디 앨런 영화를 좋아한다. 뭔가 이상해 보이는 캐릭터들, 그 분위기, 노래까지 다 좋다.
03. (오디션, 리딩현장, 촬영장 등에서의)아찔했던 순간.
지난 1월1일에 <불야성>팀에 귤을 돌렸다. 모두에게 감사한 마음도 크고, 겨울엔 역시 귤이니까! 그런데 감독님이 극중 손마리의 아버지로 출연하는 박선우 선배님한테 ‘막내가 이런 걸 돌리는데 아버지는 가만히 계시는 거냐’고 농담하셨는데 괜히 당황스러웠다. 결국 그다음날 박선우 선배님이 바로 귤을 돌리셨다. 아찔하고 당황스런 일들은 앞으로 영화 촬영하면서 많이 경험하게 되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