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래 내용은 1971년 미국 캘리포니아주 스탠퍼드대학에서 시도되었던 감옥 실험 당시의 상황을, 실험을 주도했던 필립 짐바르도 교수의 기록에 기초하여 필자가 재구성한 것입니다.)
어느 날 우연히 지역신문의 한 귀퉁이에 난 작은 광고를 보게 된 것이 그 ‘악몽’의 시작이었다. 감옥과 비슷한 환경에서 일반인들이 어떤 반응을 보이는가에 대한 2주간의 실험에 참여할 아르바이트생이 필요하다는 내용이었다. 하루에 15달러라는 나쁘지 않은 보수와 색다른 경험을 동시에 얻을 수 있다는 생각에 지원한 나는, 연구진들의 각종 테스트와 인터뷰를 통과해 최종적으로 선발되었다.
그렇게 선발된 나와 다른 23명의 학생들은 동전을 던져 실험기간 중에 간수 역할을 할 12명과 죄수 역할을 할 12명을 뽑고는 곧 연락이 갈 것이라는 말만 듣고 일단 헤어졌다. 그런데 그 며칠 뒤 일요일 아침, 갑자기 경찰이 집에 들어와 무장강도 혐의로 나를 체포하는 것이 아닌가? 수갑이 채워진 채 경찰서로 끌려간 나에게 경찰은 지문날인을 시키고 사진까지 찍었다. 그리고 다시 눈이 가려져 어디론가로 데리고 갔다. 물론 그것이 감옥 실험의 시작일 것이라는 생각을 하긴 했지만, 겁에 질려 있던 나는 그때까지 단 한마디의 저항도 하지 못했다.
그렇게 도착한 감옥에서의 경험은 처음부터 아주 불쾌했다. 간수들은 내 옷을 다 벗기고 이상한 약품 같은 것을 몸에 뿌렸고, 속옷없이 커다란 드레스처럼 생긴 죄수복을 입게 하고, 발에 쇠사슬까지 강제로 차게 만들었다. 그것은 잡지에서 언뜻 보았던 실제 감옥의 상황과 아주 비슷했기 때문에, 나는 그때까지 그것이 실험의 일부인지 아니면 실제 상황인지에 대해 전혀 확신할 수가 없었다. 그러다 내가 그것이 실험의 시작이라는 확신을 가지게 된 것은 간수들이 머리에 스타킹을 씌울 때였다. 헤어스타일을 통해 개성을 드러내고 차별화를 하려는 시도를 막기 위한 방편으로 직접 머리를 깎지 못하니 스타킹을 이용하는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결국 그제야 모든 상황은 의도적으로 연출된 것이었고, 내가 철저히 그 의도에 놀아났다는 사실을 깨달을 수 있었다.
나와 똑같은 과정을 거쳐 다른 죄수 아르바이트생들도 차례로 감옥에 들어와 세개의 감방에 분리 수용되었다. 그토록 폭력적이고 무서워보였던 간수들도 의도적으로 똑같은 유니폼에 감정을 숨기기 위한 커다란 선글라스를 쓰고 있어서 그렇지, 테스트 과정에서 만났던 아르바이트 지원자들인 것이 분명했다. 그렇게 상황을 파악하고 나는 어느 정도 마음을 진정시킬 수 있었다.
하지만 상황은 전혀 예상치 않았던 방향으로 흘러갔다. 3교대로 일하는 간수들은 그날 저녁부터 다음날 새벽까지 시시때때로 점호를 한다며 우리를 깨웠고, 그때마다 우리에게 이름이 아니라 죄수번호를 여러 번 복창하게 했다. 그리고 만약 그 과정에서 조금이라도 불성실하게 보이는 죄수가 있으면, 가차없이 푸시업을 시키고 등에 올라타는 등의 물리적인 처벌을 가하기까지 했다.
그런 모멸을 당하며 첫날밤을 보내고 다음날 아침이 되자, 상황은 달라졌다. 다수의 죄수들이 스타킹을 벗고 번호표를 빼고 침대로 감방 문을 막고는 간수들에게 욕을 하기 시작했던 것. 화가 난 간수들은 소화기를 들고 와 죄수들에게 뿌려대며 폭력적인 진압에 나서는 동시에, ‘반항’을 주도했던 몇몇 죄수들을 끌어내 옆에 있던 독방에 감금시켰다. 그리고 얼마 뒤에는 그런 진압방법에 한계를 인식하고 세개의 감방 중에서 하나를 ‘특별실’로 만들어 가담정도가 가장 낮은 죄수들만 집어넣고는 음식과 샤워 등의 특권을 제공함으로써 죄수들에 대한 심리전을 시작했다.
더욱이 다음날엔 반항을 주도했던 이들을 갑자기 ‘특별실’에 배정함으로써 죄수들 사이에 묘한 불신의 벽을 만들어내기까지 했다. 중요한 것은 그 고도의 심리전이 의도된 것이 아닌, 간수 역할을 하던 아르바이트생들이 스스로 생각해낸 것이라는 사실. 결국 그로 인해 죄수들의 단결은 완전히 와해되었고, 당연히 그런 성공을 목격한 간수들은 더더욱 심한 통제방법을 사용했다. 심지어는 화장실을 못 가게 해 감방 바닥에서 대소변을 해결하게까지 했을 정도였다.
그런 과정을 약 36시간 거친 뒤, 8612번이라고 불린 죄수 아르바이트생이 스트레스를 통제하지 못하고 정신병적인 행동을 보이다가 연구진들에 의해 풀려나는 사건이 일어났다. 실제 죄수와 같은 상황에 있다는 생각에 사로잡혀 있던 나와 다른 죄수들은 그가 풀려나는 것을 한없이 부러워만 했다. 재미있는 것은 8612가 풀려난 며칠 뒤, 그가 친구들을 데리고 곧 우리를 구하러 올 것이라는 소문이 돌았다는 사실이다.
간수들은 그 소문에 아주 민감했다. 스스로 진짜 간수라고 생각하게된 그들은 우리를 쇠사슬로 묶어 건물의 다른 방에 가두기까지 했다. 하지만 소문은 소문으로 끝나고 말았다. 8612가 친구 한명을 데리고 와서는 실험현장을 구경시켜주고 돌아갔기 때문이다. 그런데 그런 황당한 상황에 간수들은 더욱 화가 났고, 연구진들의 주의가 산만해지는 새벽시간을 틈타 무차별적인 폭력을 행사하기에 이르렀다. 놀라운 것은 어느덧 나 스스로도 그런 폭력을 죄수로서 마땅히 받아야하는 것으로 생각하기 시작했다는 사실이다.
그러나 예정했던 2주가 아닌 5일이 지난 71년 8월20일, 실험이 갑자기 중단되고 감옥에서 풀려나자 나는 눈물을 펑펑 쏟았다. 중단의 가장 큰 이유는 일부 죄수들이 식음을 전폐하거나 정신착란 초기 증세를 보였고, 일부 간수들이 통제 불가능할 정도로 폭력적으로 변했으며, 실험에 참가한 일부 아르바이트생의 부모가 변호사를 고용해 자신의 아들을 ‘출소’시키려 연구진들을 접촉했기 때문이다. 또한 연구진의 입장에서도 예상보다 너무나 빨리 원하는 상황이 연출되어버려서, 더이상 실험을 진행하는 의미가 없어진 상태였다. 그만큼 실험은 성공적이었던 것. 하지만 그뒤 나는 악몽의 순간을 평생 잊지 못하고 살고 있다. 이철민/인터넷 칼럼리스트chulmin@hipop.com
사진설명
1. 스탠퍼드감옥 실험 홈페이지.
2. 실험용으로 제작된 감옥에 도착하면 간수들이 옷을 벗기고 몸에 약을 뿌려 공포심을 극대화했다.
3. 실험으로 인한 스트레스로 인해 정신착란 증세를 보이는 이들이 생겨났다.
4. 죄수들에게 스타킹을 쓰게 하고 드레스 같은 유니폼을 입혀 통제한 당시의 모습.
<엑스페리먼트> 한글 공식 홈페이지 http://www.the-ex.co.kr/
스탠퍼드 감옥 실험 홈페이지 www.prisonexp.or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