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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선주의 TVIEW] <쓸쓸하고 찬란하神-도깨비> 기묘하지 않나?

“이 차가 어디 도착하는지 알고 이러는 거야? 여학생이 으슥한 곳에 가게 되면 무슨 일이 생기는지 TV 통해서 많이 봤을 거 아냐.” 김은숙 극본의 tvN <쓸쓸하고 찬란하神-도깨비> 2화. 사채업자들에게 납치된 고등학생 지은탁(김고은)이 위협당하는 장면이다. 나도 모르게 욕이 튀어나올 정도로 끔찍한 상황. 곧이어 팔등신 도깨비(공유)와 저승사자(이동욱)가 모델 워킹으로 나타나 코트 자락을 펄럭이며 승합차를 반으로 쪼개버린다. 은탁은 무사하고, 두 남자는 근사하지만, 앞선 장면의 고약함은 여전하다. 유사한 상황은 또 있다. 임신부를 치고 달아나는 차량이 있는가 하면, 여성의 시신을 싣고 가는 차의 뒤 트렁크가 열린 장면은 지난해 남성 잡지 <맥심>이 연출했던 화보를 상기시킨다. 즉각적인 불쾌 이후 찾아오는 것은 궁금증이었다. 신체를 위협하는 장면이 여성 수용자에게 징벌과 규율로 작동하는 것을 막기 위해 로맨틱 코미디는 종종 위협을 해프닝화하며 가상세계에서의 안전을 보장해왔다. 한데 굳이 강간을 암시하는 장면을 재연하고 또 ‘TV 통해서’ 많이 봤지 않느냐고 덧붙이는 까닭이 뭘까? TV는 로맨틱 코미디의 클리셰와 컨벤션에 기대고 또 그것의 전복으로 영토를 넓혀온 김은숙 월드가 속한 매체다. 주로 여성 시청자에게 봉사하는 장르의 대가로 꼽히는 작가가 여성의 신체가 위협당하는 공포를 새삼 일깨운다면 그것이 자신이 속한 세계를 폭로하는 것으로 일종의 면책권을 얻으려는 시도인지, 장르의 규칙이 통용되는 시한이 지났음을 알리는 것인지 분별할 필요가 있다. “그거 알아요?”로 시작하는 수많은 전설을 유통시킨 작가가 같은 대사 이후에 “현실에 살아. 소문에 살지 말고”라고 덧붙인다. 도깨비의 입을 빌려서. 기묘하지 않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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