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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페셜] 교양 있는 고양이가 세상을 구한다 - <루돌프와 많이있어>
송경원 2016-12-12

<루돌프와 많이있어> 감독 유야마 구니히코, 사카키바라 모토노리 / 목소리 출연 김율, 신용우, 홈범기, 시영준, 정유정 / 개봉 12월28일

“한 마리의 고양이는 또 다른 고양이를 데려오고 싶게 만든다.” 고양이를 키워본 사람이라면 어니스트 헤밍웨이의 통찰에 고개를 끄덕일 것이다. 세상은 이미 고양이와 사랑에 빠진 사람과 이제 곧 빠질 사람들로 나뉜다. 수많은 냥덕들이 굳이 고양이의 매력을 계몽하고자 하는 건 이 즐거움을 혼자만 즐기기 아쉽기 때문이 아닐까. 고양이는 애초에 길들여지지 않는 미지의 생물이다. 우리가 할 수 있는 건 고양이가 우리를 허락해주길 기다리는 것 정도다. 적지 않은 소설에서 고양이를 제3자의 시점으로 활용하는 이유도 자신을 잃지 않는 도도한 태도 때문일 것이다. 때론 고양이들은 모든 것을 알고 인간세상을 관찰하는 것처럼 보인다. 사이토 히로시의 아동문학 <루돌프와 많이있어>는 이 점에 착안해 고양이들의 세상에 접근한다. 정확히는 고양이의 대필자로서 집고양이 루돌프의 모험을 그린다.

루돌프는 호기심이 많은 집고양이다. 매번 혼자 외출하는 주인 리에를 따라 집 밖으로 나온 루돌프는 도둑고양이로 오해를 받고 정신없이 도망치다가 길을 잃는다. 트럭에 올라타 낯선 동네에 도착한 루돌프는 길고양이 ‘많이있어’를 만난다. ‘많이있어’는 글을 읽을 줄 아는 특별한 고양이다. ‘많이있어’의 도움으로 낯선 환경에 조금씩 적응해가던 루돌프는 우연히 집으로 돌아갈 수 있는 결정적 단서를 발견하고 긴 여정을 떠날 준비를 시작한다. 길고양이를 소재로 한 이 따뜻한 동화는 일본 최고의 문학상 중 하나인 고단샤 아동문학 신인상, 노마 아동문예 신인상 등을 수상하고 100만부가 넘게 팔린 검증된 작품이다. 단순히 고양이를 의인화한 것을 넘어 고양이들의 행동에 빗대어 우리가 바쁜 일상에서 잊고 살아가는 가치들을 환기시키는 속깊은 이야기란 점에서 아이들은 물론 어른들도 흥미롭게 읽을 수 있다.

단단하고 안정적인 이야기를 바탕으로 한 만큼 애니메이션의 성패는 이를 어떻게 표현해내는가에 달렸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제작진이 심혈을 기울인 부분도 바로 이 지점이다. 억지로 사람처럼 보이기보다 고양이 특유의 행동양식들을 최대한 사실적으로 전달하려 애쓴다. 걸음걸이 하나부터 먹이를 구하는 방식, 머리를 문지르는 습관까지 우리 주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고양이들의 생태를 촘촘히 묘사한다. 길고양이에 대한 관찰기라고 해도 좋을 정도다. 이와 같이 살아 있는 표현방식만으로도 냥덕들의 취향을 저격하며 만족감을 안기는데, 여기에 결정적인 한방을 더한다. 다름 아닌 고양이들의 캐릭터 디자인이다. <루돌프와 많이있어>는 ‘어쨌든 고양이는 귀엽게!’를 모토로 의인화된 연기와 동물적인 움직임의 균형점을 맞춘다. 실제 고양이를 모델로 하되 만화적으로 표현하기 위해 다양한 방식을 동원했다. 그 결과 인형처럼 귀여운 캐릭터 디자인에 실제 고양이를 연상시키는 움직임들이 결합되었다. 무엇보다 이 작품의 특징이자 강점은 풀 CG애니메이션이란 점이다. 여전히 셀애니메이션이 강세인 일본 애니메이션의 상황을 비춰보면 과감한 선택이라 할 만한데, 시그래프(SIGGRAPH)에서 이미 기술력을 인정받은 LA 스프라이트 애니메이션 스튜디오의 참여로 완성도 높은 영상이 완성됐다. 덕분에 2D의 선만으로는 표현하기 힘든 고양이의 입체적인 움직임이 생동감 있게 살아났다.

덩치 큰 골목대장처럼 보이는 ‘많이있어’는 사실 교양 있는 고양이다. 전 주인과의 안타까운 사연으로 글을 읽을 수 있게 된 ‘많이있어’에겐 여러 가지 이름이 있다. 학교 급식실 아주머니들은 대장, 생선 가게 주인은 덩치, 할머니는 호야, 윗집 아주머니는 얼룩이라 부르지만 ‘많이있어’는 기꺼이 다 받아들인다. 루돌프가 자신의 이름을 ‘많이있어’라고 착각했을 때도 개의치 않는다. 타인이 자신을 어떻게 부르는지보다 중요한 것이 무엇인지 알기 때문이다. 생각해보면 집고양이, 길고양이를 구분 짓는 것도 이상하다. 글을 읽는 고양이 많이있어는 루돌프에게 말보다 중요한 건 교양이라고 강조한다. 루돌프가 말하는 교양은 서로를 배려하고 자신의 힘을 과시하지 않는 태도다. 함께 살아가기 위한 양식이라고 해도 좋겠다. 루돌프는 집으로 가기 위해 많이있어에게 말을 배우면서 교양도 함께 익힌다. 세상 어떤 고양이도 당신의 것이 되어주지 않는다. 대신 고양이들은 도도한 태도로 서로를 인정하고 함께 지내는 법을 알려준다. <루돌프와 많이있어>는 집으로 찾아가는 아기고양이 루돌프의 성장담인 동시에 우리를 향한 고양이들의 조언인 셈이다. 아이들은 물론 어른들도 귀기울여볼 만한 이유가 여기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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