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적막한 안심
2002-04-03

신경숙의 이창

밴쿠버에 살고 있는 친구가 잠시 귀국했었다. 이민을 떠나면서 그녀는 아이들을 데리고 가자니 유학생 신분보다는 이민자 신분이 유리한 것 같아 수속을 밟았을 뿐 오년쯤 살다가 돌아올 거라고 했다. 만날 사람은 어떻게든 만나게 되어 있는 모양이다. 그녀와 나는 학교를 같이 다닌 것도 태생지가 같은 것도 그렇다고 동갑내기도 아니다. 전업작가가 되기 전 밥벌이로 다니던 일터에서 만났는데, 내게는 일터에서 만나 아직까지 친구로 남아 있는 유일한 경우가 그녀이다. 서로 글을 쓰며 산다는 것이 이토록 긴 인연의 끈이 되어 주었을 것이다. 서로 일년씩 이년씩 연락없이 지낸 적이 있어도 그래서 멀어졌다는 느낌은 없었다. 오랜만에 만나도 어제 만난 듯했다. 오래 전 어느 날 그녀가 갑자기 전화를 걸어와서 영화를 보러 가자고 한 적이 있었다. 동숭동에서 지금은 제목도 잊어버린 무슨 영화인가를 보고 커피를 마시고 잡담을 나누고 헤어졌다. 그로부터 육개월쯤 지났을까. 그녀가 이번엔 한밤중에 전화를 걸어왔다. 마찬가지로 또 이러저러한 얘기를 나누고는 전화를 끊었다. 삼개월쯤 지났을까. 그녀에게서 또 전화가 왔고 한 삼십분쯤 통화를 하다가 또 끊었다. 그렇게 계절이 바뀌고 바뀌었을 것이다. 훗날에 알고보니 그때 그녀는 몹시 힘든 상태였다. 몸에서 풀기가 싹 빠져 마른풀이 될 상황을 견디고 있는 중이었다. 나는 아무것도 모른 채 응, 아니, 따위의 영양가 없는 대답이나 하고 있었던 것이다. 갑자기 그녀가 캐나다로 간다고 했을 때 내심 낯선 땅으로 가서 마음을 회복해보려는 것이거니 생각했다.

그녀가 떠난 뒤 오히려 우리는 메일을 통해 여기 있을 때보다 자주 연락을 했다. 가까이 있는 사람에게는 말하기 싫은 일이 얼마나 많은가. 멀리 있는 그녀는 그래서 더 가까워졌다. 그러더니 느닷없이 그녀로부터 소식이 뚝 끊겼다. 두달이 지나고 석달이 지났다. 그녀에게 무슨 일이 터졌구나, 직감했다. 여기 있을 때도 겨우 내색이라고 하는 게 갑자기 전화 걸어 영화 보러 가자고나 했던 그녀가 아니었던가. 무슨 일이 있니? 내가 몇번 다급하게 물은 다음 한달이나 지나 그녀로부터 대답이 날아왔다. 큰애가 뇌종양이라는 것이었다. 그래서 병원에 다니느라 정신이 없는 나날이었다고. 뇌종양? 가슴이 쿵 내려앉았다. 그녀가 아이를 데리고 귀국해서 머물렀다 간 기간은 2주일이다. 그나마 1주일은 시댁이 있는 남도에 가 있었고 나도 그녀가 이 땅에 머물던 기간의 주말마다 지방에 내려가 있어 서로 만날 시간을 맞추기가 힘이 들었다. 출국 전날 밤 11시가 되어서야 그녀의 여동생이 그녀를 차에 태우고 내 집 근처에 와줘서 만날 수가 있었다. 생각보다 그녀의 얼굴은 밝았다. 말하는 톤도 예전과 비슷했다. 무슨 여유인지 예쁜 책도 선물이라며 주었다. 시동생 결혼식이 있었고 아이가 워낙 오고 싶어해서 왔다고 했다. 시어머니는 아이가 아픈 것은 이 참에야 아시고는 죄책감에 빠지셨다고 했다. 여기 오고 싶어하는 아이의 소망이 너무 커서 그 한 가지 들어주자는 마음에 의사와 상의해서 2주일이란 시간을 얻어서 왔는데…. 말하다 말고 그녀가 고개를 숙이고는 손톱을 만지작거렸다. 글쎄, 그 며칠 사이에 아이 인대가 늘어났구나. 속 모르는 나는 왜? 눈을 크게 떴다. 아이의 시력이 4분의 1밖에 안 남았단다. 캐나다 계단은 한 계단 끝마다 노란 줄이 그어져 있어서 그걸 표시 삼아 한 계단씩 올라가면 되는데 여기 계단은 그런 표시가 제대로 되어 있지 않아 아이가 자꾸 헛발을 디뎌 그렇게 되었다는 것이다. 마지막 계단 뒤에 또 계단이 있는 줄 알고 디뎠다가 미끄러지기 일쑤였다고. 멋진 건물의 대리석으로 된 계단은 내 아이 눈엔 아예 통짜로 보였을 거야, 그녀는 힘없이 말했다. 예상했던 일은 아니지만 아픈 아이를 위해서는 캐나다로 간 것이 잘한 일 같다고 했다. 여기는 신체가 불편한 사람들이 살기가 너무 힘이 든다고. 장애인을 위한 엘리베이터나 시설은 눈에 띄지 않은 곳에 해놓아 그것 찾느라고 더 힘들다고. 나는 아픈 아이가 점자 배우는 이야기, 형이 아프고 난 뒤 달라진 생활에 적응을 못한 작은 아이가 밤에 오줌을 저리고 토하는 이야기들을 그냥 맥없이 듣다가 새벽 2시에 헤어졌다. 며칠 뒤에 그녀에게서 온 메일의 제목은 ‘무사도착’이었다. 캐나다에 돌아오니 폭설이 내려 온 도시가 하얗더라고 했다. 새로 피기 시작한 수선화가 눈발에 얼어붙었더라고. 그리고 이렇게 썼다. 거기 머무는 동안 아이가 아플까봐 조바심이 나서 누굴 만나도 제대로 만날 수가 없었다. 아이가 다니던 병원 옆으로 돌아오니 안심이 된다. 외롭지만 이 적막한 안심이 내 편으로선 더 낫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