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하지 않았습니다. 나는 관련이 없습니다. 나는 사기꾼이 아닙니다.”
라고 리처드 닉슨 대통령이 말했다.
리처드 닉슨은 미국 역사상 유일하게 임기를 채우지 못하고 하야한 대통령이다. 처음에는 누구도 일이 그렇게 커지리라 생각하지 못했다. 모든 건 워터게이트 호텔에 입주해 있던 민주당 전국위원회 사무실에 누군가 침입해 도청장치를 설치하다가 적발되면서 시작됐다. 워터게이트 사건이다. 작은 일이었다. 단순 절도로 보였다. 닉슨 대통령은 당시 재선을 준비 중이었다. 워터게이트 사건은 그의 재선에 아무런 영향을 끼치지 못했다. 결국 닉슨은 그해 대통령 선거에서 일방적인 초압승을 거두며 두 번째 임기에 들어간다.
그리고 2년 후, 닉슨은 의회의 탄핵 가결을 코앞에 두고 자진해서 하야를 선언한다. 대체 2년 동안 무슨 일이 벌어진 걸까. 시민도 언론도 누구도 관심을 보이지 않았는데도 진실이 저절로 드러나고 대통령이 하야한 걸까. 아니다. 이 과정에 대해서는 영화 <모두가 대통령의 사람들>(1976) 혹은 <닉슨>(1995)에 비교적 충실하게 설명되어 있다.
진실이 드러나는 데는 오랜 시간이 걸렸다. 먼저 언론의 역할이 컸다. <워싱턴 포스트>는 사건 초기부터 집요하게 물고 늘어졌다. 중심에는 밥 우드워드, 칼 번스타인 기자가 있었다. 이들은 워터게이트 사건이 벌어진 시점부터 닉슨이 하야하는 시점까지 오로지 이 사건에만 매달렸다. 그렇게 할 수 있도록 매체의 데스크가 믿어주었고, 그들은 그들대로 결코 포기하지 않았다.
이 두 기자가 포기하지 않고 사건을 추적할 수 있었던 데에는 ‘딥 스로트’(깊은 목구멍)라는 내부고발자의 역할이 결정적이었다. 이 내부고발자의 신원은 수십년이 흘러 지난 2005년에야 밝혀졌다. 그는 당시 FBI 부국장이었던 마크 펠트였다. “메시지를 부정할 수 없을 때는 메신저를 공격하라”라는 만고의 제언이 적용될 법도 했다. 그러나 그런 일은 벌어지지 않았다. 내부고발자는 자기 원칙과 용기를 잃지 않고 지속적으로 정보를 제공했고, 매체는 끝까지 내부고발자를 보호했다(딥 스로트의 정체는 2005년에 마크 펠트가 스스로 밝힌 것이다).
사정기관 역시 제 역할을 다했다. 닉슨의 재선 이후 상원에서 워터게이트 사건과 관련해 청문회가 열렸다. 언론의 지속적인 문제제기와 FBI의 수사, 진실을 규명하고자 하는 의회의 노력(상원의 워터게이트 특별위원회), 특별검사의 노력 덕분에 청문회까지 갈 수 있었다. 이 청문회에서 닉슨의 부보좌관은 충격적인 사실을 털어놓는다. 대통령 집무실에는 모든 대화가 녹음되는 장치가 설치되어 있으며, 대통령이 워터게이트 사건을 은폐하기 위해 적극적으로 관여했다는 이야기였다.
모두가 충격에 휩싸였다. 특별검사는 녹음테이프를 제출하라고 백악관에 요구했다. 그러나 닉슨은 이를 거부했다. 그리고 오히려 특별검사를 해임하려 했다. 닉슨의 특별검사 해임 요구에 법무장관이 거부하고 사임한다. 권한대행도 이를 거부하고 사임한다. 결국 세 번째 권한대행이 된 차관이 닉슨의 명령대로 특별검사를 해임한다. 이 일은 국민이 대통령으로부터 등을 돌리게 되는 결정적 계기가 되었다. 상황이 여기까지 오자 닉슨은 대국민 담화를 시도한다. 닉슨은 400명의 기자들 앞에서 저 유명한 말을 내뱉는다. “나는 사기꾼이 아닙니다.” 그 즉시 모든 미국인들은 닉슨 대통령은 사기꾼이라고 생각하게 되었다.
닉슨은 테이프를 내줄 수는 없고, 테이프 내용을 편집한 기록을 제출하겠다고 타협한다. 그러나 그마저도 국가 안보 혹은 비속어라는 이유로 대부분 삭제된 만신창이 기록이었다. 이에 특별검사는 법원에 이의를 제기했고 대법원은 “대통령은 원본 녹취 테이프를 특검에 제출하라”고 판결한다. 이때 제출된 테이프에서 대통령이 직접 워터게이트 수사를 방해하라고 지시하는 내용이 발견된다.
이 시점에서 닉슨 대통령은 돌아올 수 없는 강을 건넌 셈이 되었다. 이것만 아니었다면 그는 하야까지 가지 않을 수도 있었다. 미국 국민들 가운데 공화당 지지자들은 사실 여전히 닉슨에 온정적인 사람들이 많았다.
문제는 거짓말이었다. 문제는 거짓말이었던 것이다. 이것은 국민을 상대로 한 위증이었다. 대국민 담화를 통해 전 국민에게 나는 하지 않았다고, 나는 관련이 없다고, 나는 사기꾼이 아니라고 거짓말을 한 것이다. 시민들은 공공연히 거짓말을 하는 대통령을 용서하지 않았다. 의회는 거짓말쟁이 대통령에 대한 탄핵을 발의했다. 결국 닉슨 대통령은 탄핵을 당하고 유죄를 선고받는 수모를 겪지 않기 위해 자기 발로 백악관을 나서는 길을 택했다. 그는 1974년 8월9일 하야한다. 워터게이트 사건이 벌어진 지 2년 만의 일이었다.
박근혜 대통령이 세 번째 담화를 통해 우리에게 던진 건 우리가 우리의 조바심을 이길 수 있느냐는 비아냥이다. 그럴 수 없을 거라는 확고한 믿음 아래 설계된 담화다. 지금 현시점까지는 이 담화가 의도한 방향대로 여야의 혼란이 계속되고 있다. 하야에서 탄핵으로, 정확히는 탄핵 시기와 여야 합의의 문제로 시선을 옮겨놓은 것이다.
지금 가장 중요한 건 사실 탄핵이나 2일, 9일, 4월, 6월이 아니라 특검이다. 대통령의 범죄 사실을 확실히 밝혀 엄정한 처벌을 받게 해야 하고 우리 세금으로 연금을 받는 일이 없어야 한다. 그렇게 하기 위해서는 조바심 없이 꾸준한 시민의 단결이 필요하다. 그러나 하야에서 탄핵으로 그리고 국회의 무능과 분열로 시선을 옮겨놓은 대통령의 의도가 이대로 성공하면, 하루빨리 단죄가 이루어지지 않는다는 사실 앞에 사람들이 절망할 것이다. 더불어 어차피 이 나라는 안 된다는 자괴감에 빠져들 것이다. 광장은 피로감으로 비워질 것이고 여기에 지지율의 반등이라도 생기면 모든 게 대통령의 의도대로 흘러가는 것이다.
거짓말을 하는 리더는 결코 용서받을 수 없다. 우리 모두 지치지 않았으면 좋겠다. 우리는 화가 나기도 했지만, 그보다 더 중요하게 생각하는 건 다음 세대에게 이런 세상을 물려줄 수는 없다는 절실함이기 때문이다. 내가 광장의 우리 안에서 확인한 건 그런 희망이었다.
세상은 정의나 상식대로 움직이지 않는다. 각자의 욕망이 맞아떨어지는 방향으로 움직인다. 그런 욕망들을 최소한으로 제어하는 게 시스템이다. 여기까지가 헌법이 정한 한계니까 더는 안 된다고 선을 긋는 체계 말이다. 박근혜 정부가 파괴한 건 이 시스템이다. 이걸 바로잡지 못하면 우리가 우리 공동체를 사랑할 수 있는 방법은 영영 사라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