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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페셜] 독립영화인들이 말하는, 지금 가장 시급한 독립영화 정책 이슈
정지혜 2016-11-28

2016년 한국 독립영화인들은 독립영화 정책의 최우선 선결 과제로 ‘영화진흥위원회(이하 영진위)의 정상화’를 주장한다. 독립영화인들은 문화체육관광부(이하 문체부)가 2014년 12월31일 낙하산식으로 임명한 김세훈 영진위 위원장 체제 이후 독립영화 정책이 급속도로 퇴보하고 있다고 지적한다. 독립영화의 제작, 유통, 배급, 독립영화전용관 사업 등 전반적인 영화 정책을 하루빨리 논의하기 위해서라도 영진위가 독립영화에 대한 전문성을 갖춘 진흥 기구로 환골탈태해야 한다는 게 독립영화인들의 중론이다. 11월21일 독립영화인 821명은 ‘박근혜 퇴진과 문체부와 영진위의 개혁을 촉구하는 독립영화인 시국선언’ 자리에서 이러한 뜻을 분명히 밝혔다. 독립영화인들의 비판의 칼끝은 김세훈 위원장 체제의 영진위뿐 아니라 ‘박근혜-최순실 게이트’의 국정 농단에서 비롯된 현 정부의 문화정책 전반으로 향해 있다. 고영재 한국독립영화협회 대표는 “비단 독립영화만의 문제가 아니라 문화예술정책 전반을 무너뜨린 이 정부를 규탄한다. 민간 자율성을 보장하기보다는 국가와 관 주도 정책들이 이어져오고 있다. 정책 하나하나를 두고 싸울 게 아니다. 정권이 바뀌지 않으면 (독립영화 정책이 변화하는 데는) 상당히 어렵다”고 지적했다. 독립영화제작배급사 시네마달의 김일권 대표 역시 “‘박근혜-최순실 게이트’가 비정상적인 방식으로 문화 전반에 압력을 행사했다. 영진위가 <다이빙벨>(2014)을 상영한 영화관의 지원을 배제하고 문화계 블랙리스트를 두고 검열을 행했다는 정황이 드러났다. 영진위 정상화야말로 독립영화 정책 논의와 발전의 전제 조전”이라고 피력했다.

불통하는 영진위

독립영화인들은 김세훈 위원장 체제의 영진위의 큰 문제 중 하나로 ‘불통의 정치’를 꼽았다. 재개관을 준비 중인 강릉독립예술극장 신영의 박광수 프로그래머는 “(최종 의결권을 가진 영진위의) 9인 위원회 구성원 명단만 공개됐을 뿐 위원회의 자세한 논의 과정에 대해서는 알 수 없다. 독립영화 정책에 관심을 갖고 현장의 독립영화인들과 만나는 위원회 구성원이 없는 상태”라고 지적했다. 최현용 한국영화산업전략센터 소장 역시 “9인 위원회의 회의 속기록은 작성되지 않고 있으며 회의록은 요약본으로 바뀌었다. 어떤 생각으로 영진위를 운영하는지 알 도리가 없다”고 말했다. 고영재 대표 역시 “회의록 공개 내규를 따르지 않고 있다”고 문제제기했다. 독립영화인들은 영화문화다양성소위원회(김선엽 소위원장)가 올해 어떤 활동을 하고 있는지 알 길이 없다는 점도 심각하게 바라봤다. <씨네21>이 영진위에 확인한 결과, 소위원회는 9월23일 마지막 회의를 진행했고 11월11일 서면 보고했다. 하지만 예술영화유통배급지원사업, 지역독립영화전용관 설립지원사업, 기타 위원들의 제안 사항을 논의했다는 것 이상의 구체적인 회의 내용은 확인할 수 없었다. 한편, 지난 10월18일 영진위는 2016년도 예술영화제작지원사업 심사 결과 중 지원작 전부와 심사위원 명단을 추가로 공개했다. 김기덕 필름쪽이 명단 공개를 요구한 결과다. 영진위가 “심사위원들의 개인정보 보호”를 이유로 명단 공개를 거부했다가 하루 만에 입장을 바꾼 것이다. 독립영화인들은 지원사업 심사결과 발표에 있어서 심사위원 명단과 사업의 심사과정을 투명하게 공개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최현용 한국영화산업전략센터 소장은 “영진위가 독립영화전용관인 인디스페이스 지원금을 끊은 것이야말로 영진위가 독립영화계를 어떻게 생각하고 있는지를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일”이라고 전했다. 인디스페이스는 영진위의 2014년 독립영화전용관 운영지원 예산 중 5.6%에 해당하는 5천만원을 지원받고 인디플러스 위탁운영을 진행했다. 이 사업 평가에서 인디스페이스는 가장 우수한 성적을 받았음에도 2015년 영진위 지원사업에서 배제됐다. 2015년 지역 최초의 민간독립영화전용관으로 개관한 대구의 오오극장 역시 지원대상에서 빠졌다. 두 극장 모두 <다이빙벨>을 상영했다. 반면 2015년 영진위는 지원한 독립영화전용관은 영진위 직영의 인디플러스와 한국영상자료원 시네마테크 KOFA, 부산 영화의전당 내 인디플러스 3곳이다. 특히 영진위는 2015년도 기준 운영 예산 13억3200만원 가운데 6억2800만원을 영진위 직영의 인디플러스 운영 예산으로 편성해 불균형 지원이라는 비판을 받았다. 영진위는 ‘독립영화전용관의 수도권 집중 문제 및 지역 독립영화관 부재에 따른 지원 필요’를 계속해서 주장하고 있다. 하지만 세부적인 내용을 뜯어보면 문제가 심각하다는 지적이다. 안소현 인디스페이스 사무국장은 “영진위는 기존에 잘 운영돼오던 독립영화전용관의 폐관 위기까지 불러왔다. 지역의 오오극장은 지원하지 않으면서 지역 전용관 확대를 하겠다는 건 어떤 의도인가. 지자체와 연계된 신설 전용관에서 인디플러스의 프로그램을 연간 219일 이상 상영해야 하는 것 역시 자신들의 입맛에 맞지 않은 영화는 상영하지 못하게 하려는 검열”이라고 전했다. 이어서 안 사무국장은 “‘지원은 하되 간섭하지 않는다’는 문화예술정책의 원칙을 흔드는 일이다. 민간 자율의 전용관 운영을 지원하는 방향이 아니라 영진위 주도의 극장을 만들겠다는 게 아니냐”고 우려했다. 최현용 소장은 “영진위가 단관 위주의 독립영화전용관을 지원하는 동시에 대기업이 운영하는 멀티플렉스의 독립영화전용관 운용 확대를 지원하는 방안도 고려해야 한다. 독립영화계에 프로그래밍 권한을 넘겨주고 지원하는 쪽이 바람직하다”는 하나의 대안을 제시했다.

독립영화 제작지원의 현실화도 시급한 정책 이슈다. 김일권 시네마달 대표는 “영진위는 단편 극영화 제작에 최소 300만원에서 최대 1천만원을 지원한다. 하지만 현장 스탭들의 처우 개선과 최저임금 보장, 물가 변동률 등을 고려한다면 제작지원금의 절대적인 규모가 커져야 한다. 현재와 같은 규모로는 스탭과 배우들의 임금 상황은 나아지지 않으며 감독은 빚더미에 앉을 수밖에 없다”고 전했다. <할머니의 먼 집>(2015) 등을 만든 안보영 프로듀서 역시 같은 문제를 짚었다. “지원정책이라는 건 사회적 재원으로 돈을 쓰라는 정책이다. 영진위의 제작지원 심사평가를 보면 상업성을 따졌다는 부분이 있다. 상업성과 투자 목적으로 독립영화를 지원하는 것 자체가 문제다. 제작 후 리쿱(제작비 회수)하라는 건 지원정책의 취지에 부합하지 않는다.” 한편, 영진위는 독립영화 제작지원비 중 순제작비의 자부담 비율을 30%로 요구했다. <씨네21>이 영진위에 확인한 결과, ‘자부담 비율은 독립영화 제작지원이 30%로 제일 낮고 예술영화 제작지원은 41.7%, 가족영화 제작지원 78.4% 순’이라는 답변을 받았다. 하지만 이는 지원금 절대액 기준이 아니다. 올해 영진위는 기존 상업영화와 다르지 않다는 비판을 받고 있는 가족영화 제작지원사업에 3편 지원, 24억7천만원을 배정했다. 독립영화 제작지원금은 51편에 총 12억원이다.

독립영화 제작지원의 현실화

한편, 20대 국회의 국정감사 중 전재수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영진위의 내부 근무 태만과 사무국장 등의 비위 사실을 문제제기했다. 문체부가 특별감사를 실시하겠다고 답변한 상태였다. <씨네21>은 송평수 문체부 감사실 주무관에게 감사 결과를 요청했다. “10월 말부터 11월 초까지 특별감사를 실시했다. 해당 기관(영진위)의 실질 감사 후 감사 보고서와 처분 상황에 대한 서류를 정리 중이다. 최종 결과가 나오는 대로 처분 상황을 해당 기관에 통보하고 문체부 홈페이지에 게재할 예정”이라고 전했다. 결과 발표는 12월 초로 예상했다. 한편, 11월11일 영진위와 ‘박근혜-최순실 게이트’간의 관련성에 대한 논란이 일자 ‘김세훈 위원장은 차은택과 친분 관계가 없으며 일면식도 없는 사이’라는 내용의 보도 자료를 배포했다.

이에 대해 독립영화계에서는 현실을 외면하는 영진위, 전문성이 결여되는 영진위라면 차라리 영진위가 해체돼야 하는 게 아니냐는 의견도 제기됐다. 한 독립영화계 관계자는 “이런 수준이라면 영진위가 맡고 있는 영화발전기금관리 업무와 사업 진행 업무를 분리하는 게 낫겠다. 독립영화, 나아가 한국영화 발전에 도움이 되지 않는 영진위의 존재 이유를 재평가할 필요가 있다”고 전했다. 2017년, 영진위는 체질 개선을 넘어서는 근본적인 변화의 노력이 시급해 보인다. 독립영화의 정책 이슈는 여기서부터 시작돼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