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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페셜] 제3의 감각으로 살아가기 - <초승달의 집> 김재영, 태휘원 감독
윤혜지 백종헌 2016-11-14

고등학교에 다니던 시절부터 가까운 친구였던 김재영, 태휘원 공동감독은 진로도 엇비슷하게 정하게 된다. 김 감독은 공연예술학을 연구했고, 영화를 하려던 태 감독은 미국으로 가 사진을 전공했다. 시력을 잃어가는 지역 극단의 배우 남호섭에 관한 프로젝트 <초승달의 집>도 공통의 관심사에서 출발했다. “나는 공부엔 관심 없던 학생이었지만 공부를 잘하던 재영과 관심사가 비슷해서 쭉 친한 친구로 지내왔다. (웃음) 언젠가 사진 프로젝트를 하던 중에 남호섭씨의 사연을 알게 됐는데 마침 재영이 연극 연구를 하고 있었기에 같이 그에 관한 다큐멘터리를 만들어보자고 의견을 모았다.”(태휘원) 공동감독이지만 각자의 특기를 살려 김 감독은 전반적인 프로듀싱을 맡고, 태 감독은 촬영을 전담하는 식으로 역할을 분담했다.

장애가 있는 대상과 그 대상의 병증이 악화돼가는 안타까운 사연에 관해 다큐멘터리를 만드는 일 자체는 손쉬워 보일 수 있는 선택이었다. 남호섭은 한때 ‘연기 천재’로 불렸던, 제22회 전국연극제에서 스무살에 우수연기상(<날 보러 와요>)을 거머쥔 연극계 신예였으나 대학로 생활 중 포도막염을 앓아 거의 실명하게 됐다. 고향인 속초로 돌아간 그는 극단 소울시어터를 창단하고 다시 연극에 매진해 도내에서 알아주는 극단으로까지 규모를 키우지만, 지역 연극인으로 만족할 수 없던 단원들이 하나둘 극단을 떠나며 다시 위기를 맞았다. 두 감독의 프로젝트는 다른 몇몇 미디어가 남호섭의 사연을 세상에 공개한 방식으로 남호섭을 소개하지 않으려 했다. “대중의 연민에 호소하는 것이 이 다큐의 관심사는 아니다. 우리는 <초승달의 집>이 좀더 지적인 다큐멘터리로 보였으면 좋겠다. 배우 중에도 키가 큰 배우가 있고, 키가 작은 배우가 있듯 호섭씨의 병도 남호섭이란 배우의 신체적 특징일 뿐 그것이 호섭씨의 전부가 아니기 때문이다. 한 배우와 그의 연극, 그리고 그의 극단과 그가 놓인 현실에 관해 진지한 질문을 던지고 싶다.”(김재영)

김 감독이 남호섭의 시선에 흥미를 보였다면, 태 감독은 남호섭의 시간에 관심을 둔 듯하다. 김 감독은 “빈 무대에 새로운 공간을 만드는 것이 연극에서 배우의 역할인데 눈이 멀어가는 호섭씨는 본래 없던 것을 자신의 어떠한 시각으로 보여주게 될지 궁금했다”고 했고, 태 감독은 “호섭씨의 눈이 멀어가는 것과 같이 (남호섭의) 극단도 점점 사라지고 있”는 현실에 주목하고 싶었다고. “회차를 정해놓고 하는 프로젝트가 아니기에 시각적으로 여러 가지 시도를 해볼 수 있겠다”는 <초승달의 집>은 남호섭의 감각을 어떻게 시각화하느냐가 중요한 포인트가 될 것 같다. “호섭씨는 이미 왼눈을 실명했고, 오른눈도 시력을 잃어가고 있다. 그가 연기를 하고 있을 때 시각과 더불어 다른 어떤 감각을 활용하는 것이 보인다. 그 제3의 감각으로 무엇을 느끼고, 다른 배우들과 어떤 커뮤니케이션을 이루는지를 우리가 어떻게 보여줄 수 있을까가 관건이다. 비장애인들의 행동 반경에 비해 호섭씨의 움직임은 좁고 느리고 조심스럽다. 그가 시각으로 인지하고 있는 세계가 좁기 때문인데 그에 관한 이미지메이킹이 필요한 것 같다.”(김재영) “인물을 촬영하고 있는 만큼 대상과의 거리감, 대상과 함께 보내는 시간도 무척 중요하다”고 그는 덧붙였다. 10%쯤 남았다는 남호섭의 시력이 앞으로는 어떻게 될지, 극단의 미래는 어떠할지, 두 감독도 알지 못한다. 다만 지금 두 감독에게 중요한 것은 “호섭씨와 더 많은 시간을 함께 보내며 그의 시선과 움직임, 호섭씨 자신이 보고서 관객에게 보여주게 될 것을 우리가 지켜보고 있”는 과정 자체다.

한줄 관전 포인트

눈이 보이지 않는 배우는 무엇으로 세상을 지각할까. 그 배우가 관객에게 보여줄 세상은 어떤 그림일까. 김재영, 태휘원 두 감독의 호기심이 관객을 더 넓은 경지의 세상으로 안내해줄 수도 있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