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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선주의 TVIEW] <구르미 그린 달빛> 금기와 규칙을 뛰어넘어

크게 소리를 지르면 갈라지고 마는, 아직 불안정한 청년의 목소리가 “멈추어라” 만큼은 지나침도 모자람도 없는 위엄과 의지를 뿜는다. KBS 드라마 <구르미 그린 달빛>의 세자 이영(박보검)이 청량한 목소리로 “멈추어라”라고 말할 때마다 ‘이것이 옥음인가?’ 하고 잠깐 정신이 아득해진다. 그리고 더 좋은 것은 근엄한 체하던 목소리의 각을 “닭다리?” 따위의 장난스런 대사로 풀어버릴 때다. 그리고 이 속성은 드라마의 구석구석에 묻어난다.

궁궐을 로맨스의 무대로 삼는 이른바 퓨전 사극이 ‘국법이 지엄하거늘’로 반복되는 구시대의 규칙과 현재는 통용되지 않는 가치관에 기대어 금기의 쾌락을 끌어낼 때면 당연히 퇴행을 지적하게 된다. 역적의 딸 홍라온 (김유정)이 내시로 입궁해 왕세자와 사랑하는 <구르미 그린 달빛>은 남장 여인, 아버지와 불화하는 왕세자 등 잘 팔리는 설정을 다 끌어모았다고 해도 좋을 정도고 이전 드라마들과 겹치는 배역과 사건도 수두룩하다.

하지만 반복을 거듭해왔기 때문일까? 왕세자 이영은 법도나 위엄을 스스럼없이 허물고, 신분 차가 나는 사랑의 주인공인 라온은 자신의 처지에 매몰되지 않고 양반집 과부와 노비, 서생과 공주, 내시와 궁녀 등 주위의 유사한 형태의 사랑을 가능케 하는 다리를 놓아왔다. 주인공 사이의 금기나 규칙이 단단할수록 역경을 양분 삼아 자라는 로맨스가 더 강력해지는 드라마가 있다면, <구르미 그린 달빛>은 자주 금기와 규칙을 뛰어넘고 비틀어서 로맨스가 가능한 땅을 넓혀놓는다. 가끔 이게 조선이 맞나 싶을 정도지만, 나는 조선 사람이 아니며 “멈추어라”가 안 통할 때가 더 많아 이리저리 방법을 찾아다니는 세자쪽이 더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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