빤치 소 모 감독은 28년 전 미얀마영화계에 데뷔해 200여편에 달하는 TV영화와 64편의 극영화를 연출했다. 미얀마에선 사진작가이자 화가로도 활동 중이다. 제1회 독립운동국제영화제 개막작인 <별들의 기록>은 1940년대 영국의 식민 지배에 저항하던 시기의 미얀마를 배경으로 한다. 영국군에 대항하기 위해 미얀마의 민족주의 무장이었던 아웅산은 미얀마 독립군(Burma Independence Army, BIA)의 시초가 되는 ‘30인 결사’를 조직한 뒤 일본군에 입대해 군사교육을 받았다. 한동안 일본군과 협력해 영국에 맞선 아웅산은 일본이 미얀마 침략의 야욕을 드러내자 미얀마 국민군(Burma National Army, BNA)을 결성해 일본군과 싸우기 시작한다(아웅산 장군이 암살당했을 때 딸 아웅산 수치는 두살이었다.-편집자). 영화는 BIA 시절, 미얀마의 독립을 위해 싸웠던 청년 난다와 써땡아웅의 일대기를 통해 미얀마의 독립운동 역사를 돌아본다.
-미얀마와 유사하게 식민 지배의 역사를 갖고 있는 한국에서 당신의 영화를 상영하게 된 소감이 어떤가.
=어떤 나라든 자국의 올바른 대표가 통치하는 게 맞다. 한국 국민도 잘 알 것이라 생각한다. 우리나라의 영웅들이 독립을 위해 얼마나 고생하며 싸웠는지 보여줄 수 있는 기회가 와서 기분이 좋다. 나는 오랫동안 영화를 만들어왔는데 미얀마의 역사적인 사건을 영화화한 이번 작품으로 한국을 찾을 수 있어 기쁘다. <별들의 기록>이 한국과 미얀마의 문화적 교류에도 도움이 될 수 있다면 좋겠다.
-미얀마 역사의 한 단락을 영화로 만들며 구성과 시나리오 단계에서 어떤 생각들을 했나.
=배경은 대강 생각해두었지만 내용을 어떻게 보여줘야 할지 고민이 많았다. 시나리오를 쓰는 동안 역사서 150여권을 읽었고 그 안의 내용들을 혼합해서 시나리오를 완성했다. 아웅산 장군이 실제로 했던 발언들도 영화에 삽입했다. 독립하기까지의 긴 역사를 어떻게 일목요연하게 축소할 수 있을지를 가장 고심했다. 무엇보다 세대가 많이 바뀌었고, 요즘의 미얀마 청년들은 그들만의 생각이 있을 거란 걸 안다. 나는 그들에게 과거 미얀마의 독립을 위해 싸운 선조들의 모습을 보여주면서 무언가 얻고자 하는 투쟁을 위해선 청년들의 참여가 중요하다는 것을 알게 하고 싶었다.
-난다와 써땡아웅 등 등장인물들은 전부 허구인가 아니면 특정 모델이 있나.
=허구의 캐릭터이지만 특정 모델이 없다고 하기도 어렵다. 당시 실제로 난다와 써땡아웅 같은 인물이 정말 많았기 때문이다. 외세와 싸우려고 군대에 투신하는 사람들도, 외국 군인들로부터 몹쓸 짓을 당한 여성들의 사례도 물론 많았다. 미얀마에선 이 모든 게 아주 보편적인 이야기다. 난다를 연기한 루 미인은 미얀마 영화연맹의 대표이기도 한 국민배우다. 실제로 당시 수행을 위해 출가했다가 독립운동을 위해 군에 입대했던 스님이 있었는데 난다는 그 스님을 모델로 했다. 난다가 <별들의 기록>의 주인공이기 때문에 아주 유명한 배우가 필요해서 루 미인을 캐스팅했다.
-미얀마 정부의 긴밀한 협조가 있었다고 들었다. 어떤 도움을 받았나.
=규모가 컸기 때문에 촬영에만 3년이 걸렸다. 시대 고증을 하기 위해 당시 입었던 군복과 무기들이 필요했는데 정부로부터 그 소품들을 제공받았다. 실제 군인을 투입해줘서 대규모 전투 장면을 수월히 찍기도 했다. 실제 아웅산 장군이 암살당한 그 자리에서도 촬영을 할 수 있었다.
-전선에서 싸운 미얀마 남성뿐 아니라 식민 지배의 영향으로 고통받는 여성과 어린이들의 생활상까지 드라마틱하게 그렸다.
=그것이 실제로 벌어진 일이었기 때문이다. 영국 식민지 때와 다르게 일본군 아래에 있을 땐 일본군이 마을에 있는 여자들을 괴롭히는 일이 부지기수였다. 그들은 어린이들에게도 가혹했다. 군인뿐만 아니라 여성과 아이들도 일본군에 대한 분노와 독립에 대한 의지는 다 같았을 거다. 그 시대의 저항정신을 떠올릴 수 있게 하고 싶었다. (일본군 군법에 맞추기 싫었기 때문에) 군대에 입대하지 않는 사람도 있었지만 모든 사람이 미얀마를 사랑했고, 독립하고 싶어 했다. 영화에 보면 미얀마 전통 방식으로 상투를 틀고 군입대를 거부하는 인물이 나온다. 군대에 입대하려면 머리를 밀어야 했기 때문이다. 그 머리를 ‘보-키’라고 한다. ‘보’는 미얀마어로 ‘영국식’이란 뜻이고 ‘키’는 ‘머리카락’을 뜻한다. ‘보-키’를 하지 않는 게 당시 애국심을 나타내는 하나의 방법이기도 했다.
-영화를 시작한 계기는 무엇이었나.
=고등학교를 졸업하고선 화가가 되려고 양곤으로 갔다. 그런데 그림을 그리는 사람은 있는데 그림을 사려는 사람이 없더라. 그래서 디자이너로 일하기 시작했다. 여러 가지 디자인에 다 손을 대봤고, 영화 디자인을 하다보니 사진에도 관심이 생겼다. 사진을 좀 공부하다 사진작가로도 활동했다. 사진작가가 되니 영화감독들이 많이 찾더라. 당시는 디지털 작업이 보편적이지 않았던 때라 나는 영화관에 둘 포스터나 책 표지를 직접 그리기도 했다. 그런데 미얀마의 영화감독들은 책을 많이 안 읽는다. (웃음) 내 머릿속에는 그들보다 훨씬 흥미진진하고 풍부한 이야깃거리가 많았다. 저들도 하는데 나라고 못할까 싶어 영화 연출에 직접 뛰어들게 됐다. (웃음)
-차기작 계획은.
=두편의 영화를 막 완성했는데 한편은 타임슬립 로맨틱 코미디다. <별들의 기록>에도 출연했던 배우 쏘 얀 아웅이 주인공이다. 요즘엔 영화 연출보다 그림 전시를 더 자주 열고 있다. 나는 원래 그림을 그리는 사람이다. 개인전은 아니지만 한국에서도 그림을 소개한 적이 두번 있었다. 다시 한번 내 그림을 한국에 소개하고 싶다. 화가로 일할 땐 아웅산 장군의 그림도 많이 그렸다. 미얀마에선 독립영웅 아웅산 장군을 모르는 사람이 없다. <별들의 기록>에선 일부만 보여줬지만 나는 아웅산 장군의 일대기를 더 좋은 환경에서 제대로 만들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