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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페셜] 부재와 상실 뒤의 풍경을 바라보는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의 사려깊은 시선 <태풍이 지나가고>
정지혜 2016-08-10

<태풍이 지나가고>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의 또 한편의 가족 드라마 <태풍이 지나가고>가 7월27일 개봉했다. 어린 시절,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은 궁금했다. ‘태풍이 지나간 뒤의 아파트 단지의 풀밭은 어째서 그토록 아름다운가. 변한 건 아무것도 없는데 태풍이 몰아친 간밤에 마치 뭔가 크게 달라진 것처럼 느껴지는 이유는 무엇일까.’ 감독은 이 신기하고 이상한 변화, 혹은 변화라고 느끼게 되는 그 감정에 대해서 그려보고 싶다고 했다. <태풍이 지나가고>는 그의 바람이 고스란히 담긴 한폭의 풍경화와도 같다. 곧 태풍이 몰아칠 거라는 뉴스가 전해지던 어느 여름날, 철부지 아들이자 아버지인 료타(아베 히로시)와 그의 가족이 겪어가는 한때의 이야기다.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 세계의 원형이라 해도 좋을 부모와 자식간의 관계로 돌아보는 ‘살아간다’는 일에 대한 성찰이기도 하다. 그것은 거창하고 복잡한 게 아니다. “인생은 단순해”라는 영화 속 대사처럼 일상이란 원래 그렇게 지난한 것들의 연속이며 그렇기에 사는 것이라고 다독일 뿐이다. 영화에 대한 리뷰와 함께 한국을 찾은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과의 짧은 인터뷰를 잇는다.

<태풍이 지나가고>

고레에다 히로카즈의 영화에서 우리는 종종 ‘료타’라는 인물들과 만나왔다. <걸어도 걸어도>(2008)에서 아베 히로시가 연기한 료타가 시작이다. 그는 타인의 목숨을 구하다 죽음에 이른 형을 대신해 한 집안의 장남이 된 차남이다. 자신은 어떻게 해도 형의 빈자리를 채울 수 없다는 사실에 료타는 상실감과 함께 이상한 열패의 감정을 느낀다. 고집불통인 아버지와는 대화라고는 없는 서먹한 부자이고, 재혼한 아내가 낳은 아들과는 아직 거리감을 느끼며 사는 아버지다. 드라마 <고잉 마이 홈>(2012)의 료타(아베 히로시)도 집안의 장남이며 아버지에게 냉랭한 아들이다. 딸아이와는 대화를 어떻게 이어가야 할지 몰라 어색하다. <그렇게 아버지가 된다>(2013)의 료타(후쿠야마 마사하루)의 사정은 더 딱하다. 6년간 키운 아들이 자신의 친자식이 아니라는 사실을 알게 됐으니 말이다. ‘혈연이 살을 맞부딪히며 쌓아온 시간을 넘어서는 것인가’라는 물음 앞에서 아버지라는 이름은 무거워진다. 고레에다 히로카즈의 료타들은 공통된 문제 앞에 서 있다. 어쩌자고 료타는 자신의 아버지와 불화하는가. 또 어쩌려고 아버지로서의 료타는 자식과 어색하고 불편한가. <태풍이 지나가고>의 료타(아베 히로시)도 그렇다. 앞선 료타들과 비교해보자면 그는 가장 철없는 아들이자 아버지다. 15년 전, 문학상을 수상하며 소설가라는 타이틀을 얻었지만 현재 그는 흥신소로 출근한다. 일종의 사설 탐정이 돼 누군가의 뒤를 밟아 근근이 생계를 이어간다. 가족들이 물으면 어디까지나 취재를 위한 자료 조사 차원에서 하는 일이라 선을 긋는다. 거짓말도 아니다. 그는 탐정 노릇으로 만난 사람들에게서 들은 기막힌 말들을 군내가 폴폴 풍기는 자취방으로 돌아가 메모해두곤 하니까(예컨대 ‘내 인생 어디서부터 이렇게 꼬인 거지’와 같은 말인데 료타에게는 꽤 자전적인 말로도 들린다). 료타의 뒷조사 대상에는 그의 이혼한 아내 쿄코(마키 요코)도 있다. 그녀가 새로운 애인과 만나는 걸 목격한 료타는 심란하다. 아내와 함께 사는 11살 난 아들 싱고(요시자와 다이요)를 한달에 한번 만나는데 그때마다 아들에게 엄마에 대해서 묻곤 한다. 그런 료타가 아버지의 장례식이 끝난 뒤, 부모가 40년 가까이 살아온 집을 찾는다. 아버지의 유품 가운데서 팔면 돈이 될 만한 게 없을까 싶어서다. 그런 자식의 속내를 훤히 꿰뚫어보는 노련한 어머니 요시코(기키 기린)는 혹독한 세월로 단련된 신소리로 아들을 달래곤 한다. 한편, 료타는 아들 싱고에게 스파이크화를 사주고 싶지만 돈이 없어 일부러 운동화에 흠집을 내고 가격을 깎아 달라고 한다. 괜스레 할머니를 핑계 삼아 싱고를 할머니집으로 데리고 와서는 전 아내가 자신들을 찾아오길 바란다. 결국 태풍에 발목이 잡힌 쿄코는 이들 부자와 시어머니와 함께 하룻밤을 보내게 된다.

<태풍이 지나가고>

<태풍이 지나가고>의 료타는 아내와 재결합하고 싶다. 하지만 깨진 유리조각을 잇대본다고 한들 붙을 리 없지 않은가. 그의 헛발질은 과거에 대한 후회이자 미련이다. 흥신소 일로 만나게 된 고교생에게 료타가 ‘모두가 되고 싶었던 어른이 되는 건 아니다’라고 말할 때, 그것은 과거에 꿈꿨던 현재와 자신이 마주한 현재가 너무도 다르다는 데에 대한 직시의 말이기도 하다. 모든 게 어긋났다. 소설가로서도, 아들과 아버지로서도. 그런 그가 싱고와 아내, 그리고 어머니와 함께 하룻밤을 보내던, 태풍이 미친 듯 몰아치던 그 밤은 그에게 어떤 환기의 순간이 돼준다. 그의 각성은 어머니에게서 온다. 어머니는 료타에게 “행복이란 건 무언가를 포기하지 않으면 손에 넣을 수 없다”는 말에 이어 등려군의 노랫말 ‘바다보다 더 깊이’(<태풍이 지나가고>의 원제목이기도 하다)를 흥얼거리며 이런 말을 한다. “바다보다 더 깊이 누군가를 사랑한 적은 평생 한번도 없었다… 보통 사람은 그런 경험 없을 거다. 그래도 살아가는 거다. 날마다 즐겁게. 그런 적이 없어서 살아갈 수 있는 거다.” ‘이것이 우리의 끝’이라고 느끼는 순간이라고 해도 인생의 바다는 그 깊이를 가늠할 수 없을 만큼 깊어 끝을 알 수 없다는 말처럼 들린다. 그래서 또 살아가게 되는 것이다. 료타의 성찰을 가능하게 하는 또 하나는 사실상 극 전체를 관통하며 료타에게 애상감을 불러일으키는 그의 죽은 아버지다. 료타의 가족들의 말을 빌리면, 료타는 아버지의 “붕어빵”이다. 아버지와 아들이 똑 닮았다는 이야기는 감독의 전작 속 료타들에게도 적용된다. <태풍이 지나가고>의 료타 부자는 내기 경륜과 복권 구입을 즐기고 여기저기로 돈을 빌리러 다니는 집안의 골칫거리다. 아마도 서먹한 부자지간이었을 것이라 짐작된다. 하지만 그런 무심한 아버지가 단골 전당포에 가서는 소설가가 된 자신을 자랑했다는 사실을 장성한 아들은 뒤늦게 알게 된다. 그의 늦된 깨달음은 아들 싱고를 향한 료타의 마음에도 감흥을 불러일으킨다.

<태풍이 지나가고>

‘눈에 보이지 않는다고 없는 게 아니다.’ 고레에다 히로카즈의 영화에서 때때로 말해지는 이 문장은 감독의 영화 세계를 잇는 중요한 씨줄이다. 눈앞에 있던 것이 더이상 보이지 않을 때를 두고 감독은 부재(不在)라 말하지 않는다. 가시적이지 않을 뿐이지 분명 어딘가에 존재하며 심지어 그 존재는 현재의 우리와 계속해서 영향을 주고받으며 이어져 있다고 말한다. 그 씨줄은 때론 핏줄일 것이고, 때론 함께 살아온 이들이 만든 공동의 기억일 것이다. <태풍이 지나가고>에서도 마찬가지다. 료타가 말한다. “(부부인) 우리는 헤어졌지만 끝은 아니다. 나는 계속 싱고의 아빠일 테고 그 사실은 우리 부부가 어찌되건 달라지지 않는다.” 료타가 부모의 아들이고, 싱고의 아버지라는 사실은 불변한다. 그렇게 그들은 이어져간다. 고레에다 히로카즈가 부재와 상실, 혹은 죽음의 ‘순간’을 주목하지 않는 이유기도 하다. 그는 무언가가 사라지고 난 뒤 남겨진 이들의 지속되는 시간에 주목할 뿐이다. 감독이 죽음과 부재를 기억하는 방식이다. 일상의 세부를 돋보기로 들여다보듯 세밀하게 관찰해온 감독답게 우리는 료타 가족의 소소한 일상 풍경 속에서 이 지극한 사실과 마주하게 될 것이다.

고레에다 히로카즈의 집으로 가는 길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의 첫 에세이집 <걷는 듯 천천히>에는 고향에 대한 짧은 단상이 있다. 해외 영화제에서 돌아오는 길에 도쿄 타워의 불빛을 보면서 그는 비로소 ‘돌아왔구나’ 싶어 안도한다. 그가 어린 시절부터 20년 가까이 산 공단주택을 떠날 때 ‘귀향할 장소를 잃었다’고 느끼는 건 당연하다. 감독의 작품에서는 귀향을 알리는 경쾌한 외침, “다다이마”(다녀왔습니다)가 맑게 울려퍼진다. <걸어도 걸어도>의 료타는 형의 기일에 맞춰 오랜만에 집에 들어서면서 어색한 마음에 “곤니치와”(안녕하세요)라고 말한다. 어머니(기키 기린)는 곧바로 “‘다녀왔습니다’라고 해야지”라며 바로잡지 않던가. <고잉 마이 홈>의 나호(미야자키 아오이)가 돌아가신 엄마를 생각하며 “다다이마”라고 하자 듣고 있던 아버지는 그 말이 참으로 좋다고 말한다. <그렇게 아버지가 된다>의 류세이(황쇼겐)도 친부모 집에서 자신을 길러준 부모가 있는 집으로 돌아오면서, “다다이마”라고 신이 나 외친다. 세상 밖으로 나갔다가 결국 다시 돌아가야 할 곳, 사자(死者)의 세계와도 연결된 그곳이 바로 고레에다 감독의 집이다. 그러고 보면 <그렇게 아버지가 된다>의 엔딩곡이 아리아와 변주, 다시 아리아로 이어지는 바흐의 <골드베르크 변주곡>이라는건 꽤 근사한 선곡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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