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조종국 <씨네21> 편집위원
관객 1천명이 넘는 흥행작이 심심찮게 나오고, 지난 3년 동안 해마다 관객 2억명을 넘는 등 한국영화는 시쳇말로 잘나가고 있다. 부산국제영화제 사태, 영화진흥위원회 헛발질에 따른 독립영화 등 비주류영화 지원 제도의 파행 운영 등 여러 논란 속에서도 한국영화는 여전히 역동적이다. 정권의 정치 논리와 불순한 의도를 의심할 수밖에 없는 왜곡된 영화 관련 정책의 부작용이나 스크린 독점이 만들어내는 기형적인 호황의 이면에 도사리고 있는 폐해가 머지않아 영화산업의 총체적 부실을 야기할지도 모른다고 우려하는 목소리도 있다.
어쨌거나 한국영화 제작 현장에서는 또 다른 시도와 변화를 통해 성장을 이어갈 것이고, 영화산업은 다양한 방식으로 확장을 거듭할 것이다. 이에 걸맞은 정부의 실질적인 지원과 정책, 시대정신과 산업의 흐름을 주도하는 영화계 현장의 혁신도 뒤따라야 한다. 영화계는 이런 산업환경을 조성하는 데 다른 문화예술 분야보다 상대적으로 앞서 적극적인 노력을 해왔고, 가시적인 성과도 적지 않게 이뤄냈다. 대표적인 것이 이른바 ‘표준계약서’를 만들어 영화제작 현장에서 시행하고 있는 것이다.
이미 2011년 5월 영화산업협력위원회(영화진흥위원회, 전국영화산업노동조합, 한국영화제작가협회)를 구성해서, 영화 제작현장의 열악한 처우를 개선하고 불합리한 관행을 개선하기 위한 표준계약 매뉴얼이 만들어졌다. 2015년 4월에는 기존 표준근로계약서를 보완해서 문화체육관광부(이하 문체부) 고시(2015. 4. 6.)로 사실상 ‘제도화’하는 단계에 이르렀다. 핵심은 일하는 시간을 정하고, 임금을 제대로 지급하고, 일정한 휴식을 제공하는 것 등이다(자세한 내용은 문체부 고시 참조).
문제는, 형식은 표준계약이지만 내용은 관행대로 하는 경우가 비일비재하다는 것이다. 업계 전체가 사실상 묵인, 방조, 조장하고 있다. 몇몇 관계자들에게 직접 확인해본 결과 실태는 훨씬 심각했다. ‘메이저영화’도 ‘무늬만 표준계약’이 상당수이고, 일부이긴 하지만 하위 직급 스탭에 대한 강압적인 업무 지시, 현장에서의 막말, 욕 등 언어폭력에, 매일 심야 퇴근에 휴일도 없는 ‘착취’에 가까운 횡포도 묵인할 정도가 아니었다. 어쩌면 대기업의 스크린 독점 문제를 지적하기 앞서 먼저 과감하게 도려내야 할 환부인지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