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워크래프트: 전쟁의 서막>에 등장하는 듀로탄과 오그림 둠해머.
솔직히 내 이십대 후반의 십분의 일 정도는 MMORPG(대규모 다중사용자 온라인 롤플레잉 게임) <월드 오브 워크래프트>(이하 <와우>)에 바쳤을 거다. 전략 시뮬레이션 게임 <워크래프트> 1편을 처음 접한 날을 기준으로 한다면 중학생 시절까지 거슬러 올라갈 수도 있다. 내 고등학교 성적을 나락으로 떨어뜨린 주범은 <디아블로> <스타크래프트> 시리즈였지만 블리자드 게임 중 내가 가장 사랑했던 건 단연 <워크래프트> 시리즈였다. 요컨대 나는 영화 <워크래프트: 전쟁의 서막>에 대해 절대 중립적일 수 없다. 북미의 처참한 혹평에도 불구하고 어떻게든 미덕을 찾아내고야 말겠다는 연루자의 심정으로 영화를 봤고, 이 장면 하나를 건진 것만으로도 만족한다고 정신승리해본다.
나는 두껍고 뭉툭한 손가락을 좋아하나 보다. 어릴 적 아버지의 두꺼운 손이 얼굴을 한번에 덮는 게 좋았고, 사촌 형이 뭉툭한 손가락으로 프라모델을 만드는 게 괜히 멋져 보였다. 차에 관한 다큐멘터리를 볼 때 주로 내 시선을 빼앗았던 것은 매끈한 스포츠카보다 투박한 작업용 가죽 장갑 낀 정비공들의 부지런한 손놀림이었다. <워크래프트: 전쟁의 서막>(이하 <워크래프트>)을 통해 얻은 최대의 성과는 나도 몰랐던 내 취향을 깨달았다는 거다. 영화를 보는 내내 두근거림을 느꼈지만 뭐가 좋았는지는 쉽게 찾을 수 없었다. 이 영화는 팝콘무비로 무난하게 즐길 수 있을 정도다. 좀더 차갑게 말하자면 무난해서 다행(?)이라고 하고 싶을 만큼 아쉬운 점이 넘친다. 세계관에 대한 사전지식이 없다면 전반적으로 편편하고 심심한 느낌의 판타지영화 중 하나에 불과하다. 특히 안타까운 건 캐릭터 구축에 실패했다는 거다. 각 인물들의 행동이 기계적으로 제시되다 보니 ‘그렇구나’ 하는 공감이 아니라 ‘그런가 보다’ 하는 정보 입력에 머문다. 게임 속 텍스트를 그림으로 풀어 읽는 기분이랄까. 심지어 이 텍스트는 과장된 연극을 보는 듯해 오글거리기까지 한다. 몇몇 캐릭터의 어색함은 심각한 정도인데 오크와 휴먼 양 진영을 넘나들어야 하는 가로나가 대표적이다. 영화가 짊어져야 할 감정선 상당 부분을 떠맡긴 탓도 있지만 인간도 오크도 아닌 가로나의 외형적인 부분이 결정적인 마이너스 요소라고 본다. 영화 속 CG의 대부분이 투입됐다는 오크의 거대하고 압도적인 외형까진 바라지도 않는다. 사람이 그냥 녹색 피부 분장만 한 뒤 작고 앙증맞은 어금니를 살짝 내보이며 오크라고 주장하는 것은 한국민속촌 한가운데에서 발견한 핼러윈 분장만큼이나 당황스럽다. 솔직히 아제로스의 휴먼이 아니라 배우 폴라 패튼이 분장하고 세트장을 돌아다니는 느낌이었다. 다들 웅장한 판타지 세계에 있는데 혼자서 특촬물을 찍고 있는 모양새랄까.
고백하건대 그럼에도 오프닝에 오크 종족이 등장하자마자 나는 가벼운 흥분 상태에 빠졌다. 원작 게임 팬이라는 요소를 제외하면 무엇이 이토록 내 가슴을 두근거리게 한 걸까. 뜯어볼수록 투덜거릴 수밖에 없는 이 영화를 양파 껍질마냥 까고 또 깐 끝에 남은 단 하나의 이미지는 듀로탄의 뭉툭한 손가락이었다. 영화 <워크래프트> 최고의 스펙터클은 대규모 전투 장면이나 번쩍이는 아제로스의 마법이 아니라(물론 그것도 충분히 가슴 뛰는 광경이지만) 오크의 육체 그 자체다. 2m가 훌쩍 넘는 오크의 육중한 체형을 거대한 스크린을 통해 마주하는 것이야말로 이 영화 최대의 목적이자 <워크래프트> 시리즈 팬들의 숙원이었다. 울룩불룩 헬스장에서 찍어낸 듯한 근육의 유려한 곡선과는 다르다. 살덩어리가 곧 근육으로 이뤄진 것 같은 투박하고 두꺼운 체형이라야 한다. 사람 목 정도는 수수깡처럼 부서뜨릴 수 있을 것 같은 기둥 같은 손가락과 돌덩이 같은 피부가 왜 이토록 사랑스러운 걸까.
돌이켜보면 나는 늘 이런 투박함에 끌렸던 것 같다. <와우>를 할 때도 진영은 언제나 호드, 종족은 늘 ‘타우렌’이었다. 제대로 접히지도 않을 것 같은 세 손가락을 꽉 쥐면 그게 그렇게 앙증맞아 보일 수가 없다. 배우로 치면 ‘마요미’로 이름을 날리고(?) 있는 마동석 같다고나 할까. ‘록타르 오가르’를 외치던 내가 게임 중 딱 한번 얼라이언스 진영으로 갈아탄 적이 있었는데, 얼라이언스의 덩치를 담당하는 ‘드레나이’ 종족이 새롭게 등장했을 때였다. 어쩌면 둔하고 육중해 보이는 외견에서 순박함, 진심, 푸근함이 절로 연상되기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곰 같은 외형과 따뜻한 내면을 연결시키는 건 학습된 고정관념일 수도 있다. 그럼에도 큰 덩치의 캐릭터 이면에 부드러움과 수줍음이 배어 나올 때 참을 수 없이 사랑스러워지는 건 나도 어쩔 수 없다.
서리늑대부족의 족장 듀로탄의 등장이 딱 그렇다. 호드의 대족장이자 영웅스랄(영화에서는 ‘고엘’로 나오며 이번 영화에서는 한번도 스랄이라고 불리지 않는다. ‘스랄’은 오크어로 노예라는 뜻인데, 이 위대한 영웅의 험난한 여정을 짐작할 수 있는 이름이다. 꽤 인기가 많은 원작 스토리라인 중 하나다)의 아버지인 듀로탄은 오크 종족이 아제로스로 건너오는 시기를 다룬 이 영화를 실질적으로 이끌어가는 주인공이다. 명예를 아는 전사 듀로탄의 첫 등장은 강렬한 전투도, 위용을 뽐내며 호령하는 장면도 아니다. 두꺼운 손으로 임신한 아내의 배를 쓰다듬는 부드러운 손길이 우리가 접하는 듀로탄에 대한 첫인상이다. 이 장면이야말로 이후 등장할 그 어떤 설명과 전투 장면보다 캐릭터를 제대로, 그리고 정확하게 설명한다. 약간 과장을 보태자면 이 영화의 결정적 순간이라 해도 좋다. 오크의 긍지와 명예가 무엇을 위한 것인지 보여주는 장면이며 나를 포함한 게이머들이 선뜻 호드 진영에 서서 게임을 즐길 수 있는 이유이기도 하다. 결과론이지만 만약 모든 캐릭터에 대한 태도를 듀로탄에게 했듯 접근했다면 <워크래프트>는 게임 팬들을 넘어 일반 관객에게도 좀더 폭넓게 호소할 수 있는 영화가 될지 않았을까 싶다.
영화 <워크래프트>는 욕심이 많다. (계속 나올 거라 장담하기 어려운) 속편을 위한 밑그림도 그려야 하고 공들인 아제로스 대륙 구석구석을 보여주고 싶어 한다. 새로 장만한 멋들어진 갑옷(실제 제작한 갑옷만 100벌이 넘는다니 영화 찍는다는 명분으로 덕질 한번 제대로 한 셈이다)이나 각종 무기도 뽐내고 싶고, 스톰윈드와 아이언포지의 웅장함도 자랑거리다. 팬 입장에서는 반가운 선물세트이긴 하다. 하지만 아제로스 대륙으로 모험을 떠나고 싶은 이들에겐 꽉꽉 채워넣은 팬심이 도리어 부담스럽게 느껴질 수도 있다. 물론 더 보여주고 싶은 심정은 충분히 이해한다. 하지만 빼는 것을 통해 리얼리티를 강화하는 최근 CG와 비교하면 지나치게 디테일에 집착한 <워크래프트>의 CG는 오히려 가짜처럼 느껴진다. 때론 장인의 정교한 세공 솜씨보다 진심이 담긴 투박한 손놀림이 더 매력적이란 걸 알아야 한다. 투박한 그래픽으로도 팬들에게 여전히 사랑받는 게임 <와우>가 그랬던 것처럼. 원작의 방대한 세계관을 충분히 살리지 못했다고 아쉬워하는 이들에게 위로의 한마디를 전하면, 불행 중 다행으로 ‘손가락이 닮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