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케팅 용어 중에 ‘니치 마케팅’(nitch maketing)이란 것이 있다. 우리 말로 풀이하면 ‘틈새시장 공략’이라 할 수 있는데, 대중이 찾는 주류상품이 아닌 소수의 수요자를 개발해 그들을 위한 상품을 판매하는 것을 가리키는 말이다. 우리 주변에서 ‘니치 마케팅’에 성공한 제품은 쉽게 찾아볼 수 있다. 음료시장에서 쌀로 만든 음료나 숙취해소용 드링크류는 모두 대표적인 니치 마케팅 상품이다. 영화나 음반과 같은 문화상품도 마찬가지. 막대한 예산을 투자한 블록버스터와 맞서 저렴한 제작비로 실속있는 흥행성적을 거둔 <나쁜 남자>나 생전 처음 보는 쿠바의 원로 음악인을 소개한 <부에나비스타 소셜 클럽>의 음반은 사실 전형적인 ‘니치 마케팅’의 승리이다.
아침부터 저녁까지 빈틈없는 편성표로 운영되는 방송에서도 잘 살펴보면 ‘틈새 시청자’를 개발한 프로그램을 발견할 수 있다. 요즘 일요일 아침에 인기를 얻고 있는 SBS <도전 1000곡>과 <TV 동물농장>은 프로그램 니치 마케팅의 대표적인 성공작이다. 시청률조사기관 TNS미디어코리아의 자료에 따르면 <도전 1000곡>의 시청률은 평균 12%대. 같은 일요일에 방송하는 KBS2TV 주말극 <내사랑 누굴까>나 지상파 방송3사의 메인뉴스 시청률보다도 높은 수치. 주말 간판 예능프로인 MBC <일요일일요일밤>이나 KBS2TV <슈퍼TV>보다 시청률이 높은 20% 안팎을 기록하는 <TV 동물농장>은 더 말할 필요도 없다.
이 정도면 방송사의 효자 프로그램이라 할 수 있는데, 의외로 그 구성은 무척 단순하다. <도전 1000곡>은 그동안 쇼 프로그램에서 여러 번 등장했던 ‘노래방문화’의 응용이다. 출연한 연예인이 무작위로 지정한 노래를 틀리지 않고 부르느냐를 다루고 있다. <TV 동물농장>도 마찬가지. 그동안 자연 다큐에서 실컷 봤던 동물들의 자연스런 일상을 소개한다. 그런데 이 프로그램들이 왜 인기가 있을까? 그것도 방송사들이 거의 구색 갖추기로 편성하는 시청률 사각지대라는 일요일 아침 시간대에서….
두 프로그램의 공통점은 우선 자연스러움과 단순함에 있다. <도전 1000곡>이나 <TV 동물농장> 모두 별다른 연출기법을 발휘하지 않으며, 현란한 컴퓨터그래픽이나 구성작가들이 머리를 짜내 개발한 아이디어로 치장을 하지 않고 순수하게 노래 경연과 동물들의 모습을 보여주는 데 주력한다.
관록있는 중견가수가 누구나 다 알 것 같은 노래의 가사를 잘 몰라 쩔쩔매는가 하면, 자신의 예전 히트곡 가사를 틀려 탈락하기도 한다. 누구나 어릴 적 집에서 키운 적이 있을 것 같은 귀여운 강아지의 일상이 소개되고, 엄마와 떨어져 사육사의 품에서 자라는 귀여운 원숭이 남매와 역시 부모와 떨어진 아기 사자의 일상이 소개된다.
음식으로 치면 화학 조미료도 없고, 복잡한 조리과정도 거치지 않은 재료 그 자체의 신선함과 풍미로 승부하는 것이다. 하지만 사람들은 바로 그 점을 좋아한다. 사전에 정해진 콘티없이 1천곡이라는 방대한 노래의 데이터베이스에 도전하는 모습은 다른 쇼 프로그램에서 보여준 거창한 대의명분이나 슬로건이 없어 편하다. 시청자는 출연자와 한마음이 돼 노래를 따라하기도 하고, 틀릴 것 같은 아슬아슬한 상황에 혀를 차며 안타까워하기도 한다. 그렇다고 노래를 틀려 출연자가 탈락을 해도 크게 안타까울 것도 없다. 일요일 아침의 느긋하고 편한 분위기에 맞는 부담없는 적당한 강도의 긴박감이다. 기껏 해야 사육사가 주는 먹이 안 먹고, 낯선 사람 두려워하고, 자기들끼리 다투다가 상처입고 하는 소소한 사건이 대부분인 동물들의 일상이 사람들에게 주는 것도 역시 부담없는 순수함이다. 내셔널 지오그래픽 풍의 중후한 내레이션이 아닌 마치 이웃집 아이들의 노는 모습을 보듯 정겹게 다가서는 카메라의 시선은 편한 휴식을 맞는 일요일에 걸맞은 상쾌한 감동을 준다.
문제는 이러한 순수함과 신선함이 언제까지 지속되느냐다. 조금만 인기있으면 확장과 독과점의 악수를 두는 우리 방송풍토에서 혹여 좀더 시청자가 많은 프라임 타임대로 옮기려 하지 않을까 하는 우려이다. 제작진이 이제는 인기도 있으니까, 우리도 다른 프로처럼 제작비 팍팍 써서 멋진 그래픽도 넣고 시간도 늘리고 다양한 코너도 개발하자는 유혹에 빠지지 않을까 하는 조바심도 든다.
<도전 1000곡>과 <TV 동물농장>의 매력은 지금 그 시간대에 있을 때 최고이다. 우리는 한때 특유의 손맛으로 명성을 떨치던 음식점이 가게를 확장하면서 예전의 맛을 잃고 평범한 가게로 전락하는 경우를 자주 본다. 이는 방송도 마찬가지이다.김재범/스포츠투데이 기자 oldfield@stoo.com
<도전 1000곡> SBS 일 오전 8시 50분
<TV 동물농장> SBS 일 오전 9시 50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