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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부족할 때
2002-03-28

절규의 멜로

‘젊은 그들’ 정우성과 전지현이 절규하고 있다. 정우성은 사랑하지 않는 게 뜻대로 되지 않는 양 “너 왜 자꾸 내 눈에 밟혀. 잊을 만하면 나타나고 또 잊을 만하면 나타나고”라며 허공에 소리친다. 전지현도 “아프다”고 말한다. 물론 아픈 곳은 마음이다. 그는 “아파, 아파. 이러지 마. 나도 아파. 사랑하지 마, 날 사랑하지 마” 하며 정우성을 향해 울부짖는다. 절규가 절정에 다다를 즈음 두 사람은 행동을 개시한다. 정우성은 목검을 든 채 질주해 샌드백을 세차게 내려치고, 전지현은 하늘을 향해 총알을 날린다. ‘탕, 탕, 탕.’

롯데칠성의 ‘2% 부족할 때’ CF가 비장미 감도는 멜로로 시청자의 눈과 귀와 가슴을 때리고 있다. 전지현이 등장하기 전에도 정우성은 이 광고를 통해 “가, 가란 말이야”, “우리를 그냥 사랑하게 해주세요” 등을 외치며 ‘사랑은 언제나 목마르다’는 정의를 알렸다. 얼핏 상대여성이 중국배우 장쯔이에게서 전지현으로 바뀌었을 뿐 어떤 획기적인 변화는 없어보인다. 그럼에도 이번 광고는 다시 한번 보는 이의 등을 곧추세우는 힘이 있다. ‘왜?’라는 질문에 답하기 위해 광고의 구석구석을 뜯어볼 필요가 있다.

먼저 ‘당대 최고의 매력있는 남녀배우가 사랑하는 사이로 만났다’. 너무 흔한가? 그럴지도. 정우성-전지현은 지오다노 CF에서도 오버액션 커플로 호흡을 맞춘 바 있으니 그닥 신선한 조합은 아니다.

‘순탄치 않은 사랑을 그리고 있다.’ 이것은 더 흔한가? 그렇다. 아무리 사랑이 마르지 않는 샘처럼 대중문화의 영원한 주제라지만 이 CF 속 사랑은 뮤직비디오, 드라마, 영화 등에서 마르고 닳도록 감상해온 선남선녀의 비극적 멜로와 동떨어져 있지 않다.

근데 정우성의 말마따나 광고의 장면이 자꾸 눈에 밟힌다. 아마도 남녀주인공이 가슴 깊은 곳에서 길어올린 진국의 감정을 과잉이라고 할 만큼 말과 행동으로 거침없이 분출하고 있는 데서 그 이유를 찾을 수 있을 것 같다. 남녀의 모습을 속도감 있게 차례차례 오가는 교차편집, ‘죽도록 사랑한다’는 말에 다름 아닌 역설적인 대사 등은 ‘충돌과 혼돈’의 이미지를 강렬하게 발산하며 물수제비를 뜨듯 시청자의 감성에 파문을 만들고 있다.

목이 터져라, 또 몸이 부서져라 감정을 토해내는 이 CF의 극단적인 표현방식도 막혀 있는 감성의 문을 뚫어주는 듯한 카타르시스의 효과를 낳고 있다. 그러고보니 감정의 격렬한 전투를 동반하고, 남는 것 하나없이 무언가를 토해내도 결국 갈증을 남기고 마는 게 사랑인지 모르겠다. ‘2% 부족할 때’라는 브랜드를 ‘심리적 갈증상태’로 치환해 ‘사랑은 언제나 목마르다’라는 주제를 설파해온 이 CF의 발상은 이번에 좀더 사랑의 속성에 밀착하면서 제대로 빛을 발한 듯한 인상이다. 주제는 동일하되 발전적 진화를 이루는 데 성공한 것이다.

여기엔 여성캐릭터의 변화도 한몫 했다. 지난번엔 정우성만 외치고 장쯔이는 “날 채워달라”(서투른 한국말 때문에 ‘재워줘’로 알아들은 이도 많았다)고 다소곳이 얘기했는데 정우성보다 강하고 다부진 이미지로 포장된 전지현은 정우성과 절규의 맞대결을 벌이고 있다. 눈물을 처절하게 쏟아내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전지현이 구질구질한 신파의 정서가 아니라 동경과 연민을 절묘하게 자아내는 점은 광고의 매력을 높이는 요소다.

이번 ‘2% 부족할 때’ CF가 마케팅 측면에서 색다른 실험을 감행하고 있다는 점도 눈여겨볼 부분이다. 정우성과 전지현이 주연을 맡은 이 멜로드라마는 15초짜리 광고용으로만 탄생한 게 아니다. 뮤직비디오, 음반과 연계해 누이 좋고 매부 좋은 공동마케팅을 실시하며 시너지 효과를 노리고 있다. 왜 정우성과 전지현이 장애없는 탄탄대로의 로맨스를 일굴 수 없는가는 시리즈로 제작된 신인가수 유미의 <사랑은 언제나 목마르다> 뮤직비디오에 구체화돼 있다. 노래제목이 CF의 메인카피와 똑같은 ‘사랑은 언제나 목마르다’라는 사실도 얼마만큼 공고한 전략적 제휴에서 비롯했는지 엿볼 수 있다.

2%쪽이 이같은 멀티미디어 전략을 구사한 것은 광고를 일종의 엔터테인먼트로 받아들이는 젊은 소비자층의 특성을 염두에 둔 결과다. 15초라는 시간적인 제약을 뛰어넘는 집약된 크리에이티브가 광고의 순수혈통을 보장한다고 생각하는 이들에겐 이번 2%의 캠페인은 왠지 정통성이 떨어져보이는 버라이어티성 이벤트로 여겨질 수 있다. 그러나 노래방에 가서 유미의 노래를 따라부르며, 뮤직비디오에 PPL기법으로 배치된 2%음료수병을 보면서, 또 정우성과 전지현의 울부짖음을 들으면서 좀더 많은 소비자가 브랜드를 향유한다면 광고제작진은 더할 나위 없이 흡족한 표정을 지을 것이다.

이렇게 상업적인 고려를 얘기하다보니 광고 속 청춘남녀의 상처가 덜 아프게 다가오는 감도 없지 않다. 다행인 것일까? 조재원/ 스포츠서울 기자 jone@sportsseoul.com 제작연도 2002년 광고주 롯데칠성 제품명 2% 부족할 때 대행사 대홍기획 제작사 아프리카(감독 차은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