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9년,광고주 Kiss100 라디오 방송 제작사 마더,런던 아트디렉터 루크 윌리엄슨 카피라이터
얀 엘리엇
모던해 보이는 분위기 좋은 사무실. 말괄량이같이 생긴 아가씨 둘이서 무슨 음악을 들으면서 낄낄대고 있다. 제법 야릇한 분위기를 풍기는 심상찮은
노래가 흘러나온다. 알고보니 성인전용 라디오방송을 듣고 있었던 것이다. 음악에 뿅간 나머지 주위의 일하는 사람들은 안중에도 없다. 볼륨을
한껏 올려 놓은데다 기괴한 발성법으로 끈적끈적한 노래를 따라서 흥얼거리기까지 한다. 참다 못한 사장 아저씨가 다가와서 소리를 줄여달라고
나지막한 목소리로 애원한다. 그런데 웬 콩가루 회사인지 아가씨들은 화난 표정으로 볼륨을 더 높여버린다. 샌님같이 생긴 사장님, 머쓱해하더니
손수 라디오에 손을 댄다. 그 순간 실로 황당한 일이 벌어진다. 머리카락 사이로 짐승의 뿔 같은 게 쓰윽 돋아나는 게 아닌가? 이런 걸
두고 뿔이 났다고 하는 건가? 그런데 이건 비유가 아니라 황당하게도 눈앞에서 진짜 일어나고 있는 일이다. 성인방송 음악이 야기한 이상한
생체반응. 평소에 전혀 뿔을 낼 줄 모르던 점잖은 50대 아저씨가 와일드한 짐승으로 변하는 순간이다. 머리뿐만 아니라 엉덩이에도 삐죽이
꼬리가 솟아난다.
귀여운 악마로 둔갑한 아저씨는 영락없이 짐승 같은 몸짓과 울음소리를 낸다. 서류뭉치를 입으로 물고 낑낑대더니 회의가 한창인 방을 벌컥 열고
느닷없이 들이닥친다. 회의실은 순식간에 아수라판이 되고, 급기야 사장님은 테이블 위로 올라가서 다리를 위로 향하곤 벌러덩 드러누워버린다.
사람들에 의해 짐승처럼 끌려나온 사장님. 꼬리를 살레살레 흔들면서 유쾌하게 거리를 활보하며 저만치 사라진다.(광고사진) 빈 화면에는 ‘Kiss
100’이라는 이름과 함께 www.livesexy.co.uk라는 인터넷 도메인이 뜬다. 뭐 이리 황당한 데가 있나 싶어 주소를 클릭해보니
성인전용 TV와 라디오, 인터넷방송을 하는 곳이다. ‘키스100’이라는 방송사 이름과 이 CF가 내걸고 있는 ‘live sexy’라는 슬로건은
어떤 상관관계인지? 또 얼치기 만화영화 같은 스토리의 주인공 ‘뿔난 아저씨’는 뭐하는 작자인지? 또 한번 외국 CF가 숨겨놓은 의미의 함정에서
허우적대지 않을 수 없다. 섹시하게 살라니? 어떤 걸 두고 섹시한 인생이라 주장하고 싶은 건지, 뜻풀이에 한참을 몰두하게 된다. 성인방송이니까
뭔가 화끈한 서비스를 제공하겠다는 얘기일 거라 단정하기엔 왠지 찜찜해 다시 한번 자막이 안내하는 사이트를 기웃거린다. 어디를 봐도 끈적끈적한
동영상이나 낯뜨거운 그림은 없다. 이 나라 사람들이 말하는 섹시함이란 어쩌면 ‘쿨’이나 ‘에너제틱’에 더 가까운 것이 아닐까? 그러고보면
이 CF의 메시지는 본능대로 살라는 얘기로 풀이된다. 그런 삶을 위한 서비스를 이 방송이 해주겠다는 약속에 다름 아니다.
내친 김에 ‘섹시’를 검색란에 쳐넣고 엔터키를 두들겨본다. 모 일간지에 나왔던 기사가 눈길을 끈다. “십대가 모 인터넷 성인방송을 모니터에
켜놓고 ‘아래도 보여주세요’라고 자판을 두드린다. 그러자 여성 진행자(인터넷자키.IJ)가 ‘짓궂기도 해라. 그래, 오늘은 내가 기분이 좋으니까
섹시하게 살짝만…’ 하고는 천천히 속옷 끈을 내려 은밀한 곳을 살짝 보여준다. 은밀한 곳이 드러날 정도의 심한 노출, 폰(phone) 섹스,
속옷만 입은 채 방송진행, 성행위 장면, 불륜 현장 공개, 저속한 대화를 통한 성적 욕구 자극….” 일간지에까지 소개될 풍경이 됐으니 사이버
섹스는 이제 더이상 마니아들의 은밀한 엔터테인먼트가 아니다. 주소를 몰라서 이런 사이트에 못 들어간다는 얘기는 아득한 전설이 됐다. 마음만
먹으면 직장에서 집에서 PC방에서 얼마든지 누릴 수 있는 유희가 된 지 오래다. 검색란에서 ‘섹스’ 또는 ‘성인방송’이라는 단어만 입력하고
클릭해 보라. 이런 카테고리의 사이트가 그물에 물고기 매달리듯이 줄줄이 끌려온다. 쌩쑈, 레드TV, 69캐스트, Feelme, GO588TV,
육감, 안티바나나TV, 어덜티브이…. 느긋하게 들여다보고 있을 시간도 없고 집에 인터넷 전용선이 깔려 있지 않아 아직은 제목만 눈요기한
곳들이다. 아무튼 이 땅의 ‘섹시’ 사이트는 성도착적 영상물의 박람회를 방불케 한다.
다시 Kiss 100 얘기로 돌아간다. CF와는 달리 인쇄광고는 좀더 직접적이고 알기 쉬운 얘기를 하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Live
Sexy’라는 슬로건과 함께 선정적인 그림의 포스터가 눈길을 끈다. 빨간색의 초미니스커트를 걸친 할머니의 도발적인 제스처. 얼굴은 60대인데
몸매는 20대. 인생을 섹시하게 살라는 말씀을 이렇게 하고 있는 건가? 또다른 포스터는 철봉을 다리 사이에 끼우고 곡예를 하고 있는 여자타잔의
에로틱한 포즈를 보여준다. 한번쯤 이렇게 야성의 삶을 살고 싶지 않은 여성이 누가 있겠는가?(포스터1,2) 충분히 음란성을 개입시킬 여지가
있는 비주얼이다. 그러나 오버는 하지 말 일이다. 자칫, 오토바이나 자전거를 타는 모습까지 성적 쾌감을 구하는 행위로 연결시키는 것 같은
과잉해석으로 빠져서는 곤란하다. 광고 이미지를 성적 코드로 확대해석 하자면 끝이 없다. 콜라병, 수도꼭지, 브러시, 권총 따위는 남성의
섹스심벌로 사과, 풍선, 복숭아, 연못 따위는 여성의 생식기로 풀이해 버리는 태도는 뭔가 문제가 있다. 성적 이미지의 저수지에서 헤엄치는
우리가 범하기 쉬운 의식의 과잉이 아닐는지 모른다. 이 성인방송이 추구하는 ‘섹시한 삶’은 결국 솔직하게, 용감하게, 와일드하게, 정력적으로
사는 모습이었을 것이다. 그런 얘기를 엽기와 속악함, 키치와 슬랩스틱이 뒤섞인 희화적인 판타지로 버무리고 있는 CF이다. 억눌려 있었던
자아의 통쾌한 폭발, 배설, 표현을 도와주는 성인방송의 본질적 기능을 엿보게 한다. 결국 성인방송의 기능은 음란의 확대재생산이 아니라 카타르시스의
미학으로 돌아가야 한다.
이현우/ 프리랜서 카피라이터·광고칼럼니스트 hyuncom@unitel.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