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월 앙코르와트를 여행했다. 앙코르와트는 정말 대단했다. 동아시아에서 대단한 규모란 중국에나 있는 것이라 생각했는데. 돌로 만든 불가사의한 건축예술은 그리스·로마·이집트에나 있는 것이라 생각했는데. 나무뿌리에 칭칭 감긴 사원처럼 5백년 동안 아열대의 정글에 묻혀 있었던 흔적들은 앙코르와트의 인상을 더욱 특별하게 만들었다.
그런데 앙코르와트에서 돌아오면서 나는 왠지 허전해졌다. 그 이유가 뭘까.
80년대 중후반이었던가, TV에서 전옥숙씨 일행의 앙코르와트 답사를 다큐멘터리로 보여주었다. 해외여행도 뜸하고 캄보디아 정정도 불안해서 좀처럼 접하기 힘들었던 유적지가 마침내 국내에 공개된다는 분위기였다. 그 때문인지, 내 기억 속에 앙코르와트는 무진장한 규모의 거무튀튀한 돌무더기, 막 잠에서 깨어난 고대사원으로 최초의 밑그림이 그려졌다.
그뒤 그림은 계속 덧칠됐는데, 디즈니 만화 <정글북>은 무대가 인도지만 나는 불 만드는 법을 알아내 사람이 되려하는 원숭이 왕 루이가 사는 고대사원이 바로 앙코르와트일 거라 여겼다. 한비야씨는 세계여행에서 가장 인상적인 장소로 ‘앙코르와트’를 꼽았다. 그곳의 원숭이들은 여자들을 집적거리는데 막대기를 휘둘러도 돌을 던져도 꿈쩍 않다가 남자를 데려와야 도망간다고 했다. 그는 얘기 끝에 “하등동물일수록 여자를 무시한다니까”라고 했다. 이렇게 해서 내 상상의 앙코르와트에는 제 잘난 맛에 사는 원숭이들까지 끼어들었다.
<화양연화>에서 영영 엇갈리는 두 남녀 사이에 남은 애틋한 미련은 마지막 신에서 앙코르와트의 석벽 속에 봉인된다. 1천년 동안 침묵한 석벽이라면 한 슬픈 남자가 속삭이는 순애보를 비밀로 간직해줄 테지, 라고 생각하면서 나 역시 뮤직비디오의 리듬으로 움직이는 앙코르와트의 이미지를 굵고 낮은 톤의 첼로 음향과 더불어 마음에 봉인해 두었다.
그런데 앙코르와트를 보고나니 그 풍부하고도 신비스런 이미지 덩어리는 쫓겨나고 대신 명료한 기억들과 실증적인 지식들이 그 자리를 차지했다. 이제 ‘앙코르와트’ 하면 내가 다니던 신문사 구석구석처럼 환하게 떠오르고 3백년 크메르제국의 역사는 조선왕조나 되는 것처럼 시시콜콜 생각난다. 상상의 공간에 축조되었던 앙코르와트는 간밤에 꾸었던 어지러운 꿈처럼 잊혀졌다. 어른어른한 이미지의 장난이, 어두컴컴한 가운데 즐기던 그림자놀이가, 갑자기 ‘번쩍’하고 들어온 밝은 조명 앞에서 사라져버리는 것처럼.
그 비슷한 기분을 예전의 기억들 숲에서 찾아낼 수 있을 것 같다.
앤소니 퀸이 나오는 영화 <노인과 바다>를 보았을 때였다. 바다는 내가 상상했던 것보다 덜 치열한 느낌이었고 노인의 배에 매달린 참치의 뼈도 항구를 허무함으로 채우기에는 좀 작다는 느낌이었다. 이것도 앤소니 퀸 영화였는데, <싼체스네 아이들>을 보았을 때는 멕시코 빈민가정의 비루함이 그럴싸하게 꾸며진 모델하우스 안에 갇혔다는 느낌이었다.
이문열의 <황제를 위하여>가 언젠가 TV드라마로 만들어졌을 때, 나는 한회를 다 보지 못하고 TV를 꺼버렸다. 방송사로선 충실히 제작했을 테지만, 나는 소설이 건설해놓은 이미지의 왕국을 보존하기로 했던 것이다. 황석영의 <장길산>은 여러 차례 TV나 영화로 만들어진다는 소문이 있었는데 그럴 때마다 은근히 기대와 불안이 엇갈렸다. 구월산에 산채를 짓고 황해도 일대를 편력하던 장길산 패거리들의 활극을 다시 보고 싶다는 기대 한편에, 오랫동안 마음 한 구석에 보존돼온 이미지의 원시림이 훼손되지나 않을까 불안했던 것이다.
사실, <해리포터와 마법사의 돌>을 보러가기 전에도 약간의 주저함이 있었다. 상상 속의 호그와트학교에 안녕을 고해야 할 것 같아서. 영화를 보고나니, 스크린의 호그와트가 내 상상의 호그와트를 몰아낸 건 틀림없지만, 별로 손해본 기분이 들지는 않았다. 하지만 나는 마르케스의 <백년 동안의 고독>이나 카프카의 <변신>은 영화로 보지 않을 수 있기를 바란다. 흰개미 떼가 사람과 집을 갉아먹고 한 마을이 일진광풍에 모래바람이 되어 사라지는 이야기나, 커다란 딱정벌레가 방구석에서 정체성 혼란으로 허둥대는 모양이, 컴퓨터그래픽의 도움으로 얼마나 실감나게 그려지건 간에 말이다.
어쩌면, 상상의 구조물이야말로 가장 풍부한 것이 아닐까. 돌로 지은 건축물이나 필름에 투사된 영상보다도 더? 그렇기도 하고 그렇지 않기도 할 것 같다. 상상의 구조물이란 것들도, 우리가 보고들은 무수한 이미지와 이야기들을 재료로 설계되고 축조되고 장식될 테니까. 가령 앙코르와트를 보고나니 그 시대와 사람들에 관한 또 다른 상상의 구조물이 지어지기 시작했다. 앙코르와트 여행은 아주 좋았다. 거기에 꼭 한번은 가보고 싶었고 가길 잘 했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여행에서 돌아오면서 한 가지 사소하고도 엉뚱한 결심을 한 게 있다. 이집트는 가지 않겠다고 말이다. 이집트 피라밋은 상상 속에 그대로 묻어두겠다고 말이다. 조선희/ 전 씨네21 편집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