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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씨네인터뷰] “견우와 나, 그 사이의 무언가를 정리한 느낌” - <엽기적인 그녀2> 차태현
윤혜지 사진 백종헌 2016-05-19

견우가 돌아왔다. <엽기적인 그녀>(2001)에서 한없이 그녀(전지현)에게 휘둘리기만 하던 견우도 어느새 취업을 준비하고 결혼을 해야 하는 때를 맞았다. 조근식 감독의 <엽기적인 그녀2>에서 견우는 중국인 그녀(빅토리아)와 결혼을 하고, 일본인 유코(후지이 미나)와도 직장동료로서 가까워진다. 첫 영화 주연작인 <엽기적인 그녀>로 일약 스타덤에 올랐던 차태현은 ‘의리’ 때문에라도 고민 없이 후속편행을 택했다. 15년의 시간이 흐르는 동안 차태현은 베테랑 배우가 되었고, 순진했던 견우도 능청스러운 직장인으로 변모했다. 차태현은 <엽기적인 그녀2>에서 차태현이 견우를 연기하는 건지, 견우가 차태현을 흉내내는 건지 모를 정도로 캐릭터와 혼연일체가 된 모습을 보여준다. 여러 미흡한 지점에도 불구하고 <엽기적인 그녀2>를 마냥 비난할 수 없는 건 전적으로 차태현의 덕이다. 그 누가 차태현을, 견우를 싫어할 수 있을까. <엽기적인 그녀2>로 “이제야 견우를 내려놓을 수 있게 되었다”는 차태현에게서 약간의 홀가분함까지 느껴졌다. 자연히 견우를 내려놓은 뒤의 그의 마음과 계획이 몹시 궁금해졌다.

-언론시사회 때 영화를 처음 봤다고.

=나는 후반작업 기간에 편집실을 잘 찾아가지 않는다. 내 나름의 배려인데 감독님들은 왜 관심을 안 갖느냐고 화내시더라. (웃음) 그래서 언론시사 때 영화를 처음 보는 경우가 많은데 그러다보니 편히 보지는 못했다. 안 좋은 것, 못한 것만 눈에 들어오고.

-<엽기적인 그녀>가 차태현에게 갖는 의미를 생각하면 후속편 출연이 더욱 고민스러웠을 것 같다. 신씨네 신철 대표의 권유가 있었던 건가.

=그랬다. <품행제로>(2002)를 워낙 재밌게 봐서 조근식 감독님과 같이 일하는 건 어떨까 궁금하기도 했다. 오래전부터 후속편 제작 이슈는 있었는데 온갖 말들이 많았다. 항상 ‘(전)지현이가 하면 내가 안 할 이유가 없다’고 말해왔는데 후속편 출연하면서 가장 큰 부담이 지현이와 같이 안 한다는 거였다. 오히려 전작에 대한 부담은 없었다.

-전편의 ‘그녀’가 비구니가 되었다는 설정에 대해선 다소 놀랐을 것 같다.

=해야 되나 말아야 되나 고민은 됐다. 그런데 이젠 작품을 선택할 때 고려하는 다른 것들이 많아졌다. 어릴 땐 시나리오든 뭐든 꽂히는 게 있을 때 하곤 했는데 지금은 많은 사람들이 눈에 들어온다. 솔직히 내가 <엽기적인 그녀2>를 해서 새롭게 얻을 게 뭐 있겠나. 잃을 게 더 많지. 하지만 나와 여러 사람들의 관계를 무시할 수가 없다.

-조근식 감독에게서 처음 시나리오를 받아보고선 어땠나. 당시 시나리오가 영화와 비슷한가.

=지금 버전과는 좀 다르다. 어쨌든 시나리오를 보고 마음에 들었던 건 여전히 이 시리즈가 평범한 남녀의 얘기라는 거였다. ‘엽기적인 그녀’다운 황당한 설정들도 있었다. 특히 직장동료 용섭(배성우)과의 ‘케미’를 중요하게 생각했다. <엽기적인 그녀2>는 견우가 이야기의 중심에 있으니까.

-시나리오 단계나 현장에서 의견을 보탠 것도 있나.

=시나리오는 오로지 감독님이 주시는 대로 본다. 내가 관여할 부분이 아닌 것 같다. 현장은 늘 계획대로 돌아가지 않으니까 자연스럽게 이런저런 의견을 주고받기는 한다. 애드리브도 많이 하는 편이 아닌데 이번엔 애드리브가 참 많았다. (배)성우 형이 워낙 능청스러우셔서. (웃음) 나의 가장 큰 목표는 어떻게 하면 가장 재밌는 장면을 연출할 수 있을까였다.

-둘의 ‘케미’가 제대로 폭발한 순간은 언제인가.

=물볼기 시퀀스. (웃음) 내가 제일 좋아하는 장면이다. (빅)토리아가 나체로 엎드린 나를 물수건으로 마구 때리다 성우 형한테 물수건을 던지는 장면이 압권이다. 토리아도 성우 형도 그 장면을 너무 잘 살렸다. 그런 게 ‘엽기적인 그녀’다운 재미 아닐까.

-좀더 나이든 견우였다면 어땠을까 싶다. 늘 제 옷 입은 듯 편안한 연기를 보여줬지만 이번엔 취업준비생이란 설정이 딱 맞아 보이지 않더라. 어차피 남녀의 이야긴데 결혼생활과 육아로 전전긍긍하는 견우의 현실에 주목했다면 더 자연스럽고 에피소드도 풍부하지 않았을까.

=시간이 더 흐른 뒤의 견우라…. 이분들 3편도 생각하고 있나? (웃음)

-당시 견우는 국내 로맨틱 코미디영화의 새로운 캐릭터였다. 편안함이 개성일 수 있다는 걸 처음으로 알게 한 인물이지 않았나 싶다.

=그렇지. 남녀의 고정적인 성역할을 뒤집었으니까. 그런 점이 아시아 전역에서 새로이 공감을 얻은 부분인 것 같다. 나도 이번에 <엽기적인 그녀2>를 하면서 견우를 너무 오랜만에 만났다. 세대도 바뀌었는데 어떻게 하면 <엽기적인 그녀>를 모르는 분들이 재밌게 영화를 볼 수 있을까 고민스러웠다. 아시아를 어떻게 하고… 그런 생각은 전혀 안 했고. (웃음)

-중국의 빅토리아, 일본의 후지이 미나와 연기한 경험은 어땠나. 빅토리아는 한국에서 오래 활동한 아이돌이고, 후지이 미나는 여러 차례 합작 작품을 해와서 문화적 차이를 크게 느꼈을 것 같지는 않다.

=맞다. 둘 다 한국말도 너무 잘하고 내가 합작 작품을 안 해봐서 뭐가 다른지 모르겠더라. (웃음) 내가 중국어, 일본어를 저 정도로 배워서 연기를 할 수 있을까 생각해보면 그 둘이 너무 대단한 것 같고.

-중국 웨이하이, 리장, 나시족 마을, 차마고도 옛길에서 로케이션 촬영을 했다.

=뭐 많이 간 것 같은데 보이는 게 다다. 열흘 정도만 머물렀다. 촬영할 장소가 한곳은 산이고, 한곳은 바다라 왔다 갔다 하기도 했고 자연광이 비칠 때 찍을 수 있는 시간도 많지 않았다. 오죽하면 내가 감독님한테 “중국이 이렇게 조금밖에 안 나오는데 투자를 받을 수 있어요?” 그랬다니까. (웃음) 중국을 겨냥한 것처럼 보이지만 아닐지도 모른다. (웃음) 아무튼 원래는 몽골에 가서 촬영하려고 했던 부분인데 촬영 기간이 밀려서 몽골 갈 때쯤 되니 날씨가 갑자기 영하 30도로 떨어졌다잖아. 촬영을 할 수가 없었다. 미야자키 하야오 감독이 리장 백사 마을에 가보고 <하울의 움직이는 성>(2004)을 만들었다고 하더라. 아름다운 곳이었다.

-스카이다이빙도 직접 해냈다.

=원래 콘티는 블루스크린을 친 데서 토리아가 나를 안고 뛰어내리고 CG 처리를 하는 거였다. 그런데 뭐랄까… ‘엽기적인 그녀’답지 않았달까. 감독님께 “직접 뛰어내리는 게 영화에 어울리지 않을까요?” 했더니 엄청 좋아하시더라. 그런 거 시키고 싶으셨나. (웃음) 짧게 나오는 것에 비해 과하게 연기한 게 아닌가 싶지만(웃음) 그런 장면들이 소소하게라도 영화의 리얼리티에 영향을 미친다고 생각한다.

-나라별로 프러포즈하는 장면에선 능청스러움이 극에 달했다.

=그것도 수고에 비해 너무 짧게 나왔다. (웃음) 엄청 리얼하잖나. 참 오랜 시간을 분장하고 뭐하고 했는데. (웃음) 주민등록증을 내밀며 교복 입고 나이트클럽에 들어가는 장면 같은 게 <엽기적인 그녀>다운 설정이었는데 <엽기적인 그녀2>에서도 그런 장면을 만들고 싶었다. 비슷한 세대가 따라해봄직한 시그니처 장면 말이다.

-신혼부부가 따라해볼 만한 이벤트이긴 하다.

=그렇지. 나는 아버지 제사인 걸 잊은 견우가 집에 들어오면서 제기를 보고 “(음흉하게) 오늘은 조선식이야?”라고 했다가 어머니에게 얻어맞는 장면이 너무 재밌었다. (웃음)

-이젠 생활감이 넘치는 연기를 하는 게 아니라 생활과 연기의 구분이 흐릿해진 느낌이다. <엽기적인 그녀2>의 견우를 보며 그런 생각이 많이 들더라.

=나도 영화를 보면서 견우에게서 내가 너무 보여서 놀랐다. 지금까진 내 캐릭터들에서 견우가 보이는 게 창피하거나 싫지 않았다. 그러다 견우를 연기하게 돼서 좋으니까 너무 흥분했던 것 같다. 하고 싶은 대로 하다보니 견우가 아니라 차태현 같더라. 그렇게 열심히 다시 견우를 연기하고 나니 이젠 나와 견우의 관계에 있는 무언가가 정리된 느낌이다. 그 뒤에 찍은 영화 <사랑하기 때문에>(감독 주지홍)나 드라마 <프로듀사>에선 견우의 모습이 안 보이더라.

-아마 리얼 버라이어티 예능 <해피선데이-1박2일>을 5년째 하고 있는 게 영향을 미친 것 같다.

=예능 출연을 다시 생각해봐야 하나 싶었다. 그렇다고 당장 그만둘 건 아니다. (<1박2일> PD인) (유)호진이가 난리칠 거다. (웃음) 하지만 배우로선 당연히 고민해볼 만한 부분이겠더라. 지금까진 그러지 않았지만 만에 하나라도 예능에서의 이미지가 연기할 때의 모습과 부딪치면서 연기에 피해를 준다면 나로선 어느 하나를 선택해야 하지 않을까.

-올해는 <신과 함께>(감독 김용화)를 찍느라 하반기를 다 보내겠다.

=아마 그럴 것 같다. 시리즈물을 꼭 해보고 싶었기 때문에 무척 기대하고 있다. 블루스크린 연기도 궁금하고. 며칠 전에는 CG 작업을 위해 58가지 표정 데이터를 따야 한다면서 카메라로 둘러싸인 곳에서 표정 연기만 열심히 하고 온 적도 있다.

-원작 만화를 본 독자로선 과로로 죽은 회사원인 자홍을 더 나이든 이미지로 생각했는데 막상 캐스팅 소식을 듣고 놀랐다. 어떻게 합류한 건가.

=영화는 만화랑 무척 다를 거다. 어느 촬영장에서 소품 중에 책이 한권 있어서 봤더니 그게 <신과 함께>였다. 하권만 있어서 너무 궁금하다고 상권 가져오라고 했는데 알고 보니 상•중•하더만. (웃음) 영화로 만든단 말은 들었는데 나와는 상관없을 거라 생각했다. 어떻게 영화화를 할까 궁금해하기만 했는데 그 생각한 지 일주일도 안 돼 시나리오가 들어왔다. 자홍 역으로. (웃음) 시나리오 읽고 나서 원작까지 봤는데 너무 재밌었다. 이 긴 얘길 어떻게 압축한 건가 싶었더니 내용이 완전히 바뀌어 있었다. 자홍이 거치는 7개 지옥도 원작 만화와는 많이 다를 거다. 나도 기대가 된다. 1부에서밖에 안 나오지만. (웃음)

-가수 홍경민과 ‘홍차’로 뭉쳐서 다시 한번 앨범을 낸다고도 하던데. 가수 차태현을 본 게 언제인지 까마득하다.

=노래는 나왔고 다음주에 뮤직비디오를 찍는다. (홍)경민이가 전부터 그렇게 콘서트 같이 하자고 졸랐는데 내가 콘서트를 할 만큼 노래가 많지 않다고 거절해왔다. 이번에 예능 프로그램 <투유 프로젝트-슈가맨>에 나가면서 앨범 내자는 계획이 본격화됐다. 그런데 이름이 홍차가 뭐야, 홍차가. (웃음) 아무튼 희망적이고 밝은 노래를 선보이게 될 거다.

-보는 사람이야 편안하고 좋은데 본인에겐 매너리즘이라든지, 변화 욕구 같은 건 없나. 앞으로의 행보가 지금까지보다 다채로워지고 있는데 뭔가 바꾸고 싶다는 의지가 아닐까 싶다.

=하나만 하자고 벽을 세우는 타입은 아니다. 이것도 재주라면 재주겠지. 나는 내가 예상하던 것보다 일찍 주연을 맡게 되면서 알게 모르게 스트레스도 일찍부터 받아온 것 같다. 그릇이 안 되는 상황에서 버텨온 걸 수도 있고. <엽기적인 그녀>를 하고 난 뒤론 <엽기적인 그녀>보다 더 훌륭한 작품을 하나라도 찍을 수 있다면 더이상의 성공이 없겠다 생각했는데 어쩌다보니 여기까지 왔다. 이 생각을 내가 계속 하고 있다는 것도 그 이상의 작품이 없었다는 게 아닐까 싶기도 하고. 아마 이제 하려는 여러 프로젝트들이 나의 변화의 단초가 아닌가 싶다.

-올해로 21년차 배우다. <씨네21>과 나이가 같다. 동년배 매체에 한마디 해달라.

=어릴 땐 내 40살 때 모습은 어떨까, 그때까지 계속 배우를 할 수 있을까 생각을 많이 했는데 막상 마흔이 되니 그냥 슥 지나가더라. 편하게 여겼으면 좋겠다. 한곳에서 21년을 버티고 있다는 자체로 의미 있다고 생각한다. 버티는 게 이기는 거다. 나와 <씨네21>도 편하게 계속 같이 갔으면 좋겠다. (웃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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