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피 아워>의 주연배우 가와무라 리라와 다나카 사치에(왼쪽부터).
하마구치 류스케 감독의 <해피 아워>(2015)는 여러모로 놀라움을 준다. 러닝타임이 무려 5시간17분인데 보고 있으면 전혀 그 시간이 지루하게 느껴지지 않는다. 드라마틱한 사건이랄 건 없다. 30대 후반 네명의 여자 친구들의 일상과 그 일상의 균열이 만들어낸 파문이 그대로 영화의 러닝타임이 된다. 게다가 자연스러운 얼굴로 일상의 순간을 담담히 연기한 네명의 주인공들 모두가 비전문배우라는 점은 더욱 놀랍다. 이혼 후 새로운 길을 모색하는 준과 겉으로는 강해 보이지만 누구보다 외로운 아카리를 연기한 가와무라 리라와 다나카 사치에가 전주를 찾았다. 데뷔작 <해피 아워>를 만들면서 그들이 경험한 생의 첫 번째 순간들에 대해 들어봤다.
-한국 관객과 처음 만났다.
=다나카 사치에_영화를 일본, 로카르노국제영화제 때에 이어 오늘까지 총 세번 극장에서 봤다. 긴 러닝타임에 인터미션도 없어서 관객이 지루해하면 어쩌나 걱정했는데 끝까지 자리를 지켜주셨다. 또 중간중간 웃음도 터뜨려줘 한시름 놨다. 상영 때마다 느끼는 거지만 국가마다 웃는 지점이 다르다는 게 신기하다. 한국 관객은 준을 비롯한 여자주인공들의 남편들이 등장할 때 많이 웃으시던데 그 이유를 좀더 들어보고 싶어졌다.
-두 사람 다 연기 경력이 전무하다. 어떻게 <해피 아워>로 배우가 된 건가.
=가와무라 리라_시나리오를 공부 중이었다. 하마구치 류스케 감독님의 작품들에 관심이 있던 차에 2013년 고베에서 감독님이 영화 관련 워크숍을 기획한다는 소식을 들었다. 몇 개월 동안 워크숍에서 영화 작업에 대한 다양한 이야기를 나눴다. 워크숍이 끝나던 2014년 초에 감독님께서 함께 작품을 해보면 어떻겠느냐고 제안해주셨다. 그해 2월에 대본을 받고 리딩을 처음 해봤고 5월에 촬영을 시작했다. 감독님께서는 대략적인 캐릭터 설명만 해주실 뿐 어떻게 연기해달라는 말씀은 한번도 하지 않으셨다. 관찰력이 탁월한 분이셔서 워크숍 때 우리의 모습을 눈여겨보시고 캐릭터화한 게 아닐까 짐작된다. 생각해보면 사치에는 아카리와 비슷한 면모가 있다. 강인하고 활발하면서도 그 이면에는 소녀 같은 구석이 있다.
다나카 사치에_그러고 보니 현장에서 엄마처럼 스탭들을 일일이 챙기던 리라도 영화 속 차분하고 결단력 있는 준과 비슷하다. 나는 전문 무용수로 활동 중이다. 감정을 표현한다는 점에서는 무용과 연기가 비슷해 보였다. 무대 위에 서는 사람으로서 무대와 카메라 앞에서의 내가 어떻게 다를 수 있는지 항상 궁금했다. 처음에는 어떻게 연기해야 할지 전혀 모르겠더라. 감독님께 여쭤봐도 ‘현장에서 자연스럽게 놀아보자’는 얘기만 하시더라. (웃음)
-영화 초반, 네명의 여자 친구들이 ‘마음의 중심의 소리를 들어라’라는 워크숍에 참석해 몸을 부딪히고 서로의 속내를 들어보는 장면이 상당히 자연스럽게 찍혀 있다.
=가와무라 리라_크랭크인하고 제일 먼저 촬영한 게 바로 그 워크숍 신이다. 그 현장이 뭔지도 몰랐고 설명도 없었다. 정말 그 워크숍에 참가해서 각자의 몸을 맞대보고 몸의 움직임을 느껴보고 마음의 소리를 들어보는 자리였다. 그러다보니 아직 극중 인물들의 이름이 익숙하지 않아 실제 이름들을 부르기도 했다. 거의 다큐멘터리라고 봐도 될 장면이다.
다나카 사치에_그 워크숍이 끝날 때 리라가 ‘행복했다’고 말했다. 감독님께서는 그때 그 말을 기억해두시고는 나중에 영화의 제목 ‘해피 아워’를 생각하신 것 같다. 신기하게도 촬영 때 우리가 지나갔던 골목길에 ‘해피 아워’라는 카페도 있었다. (웃음)
-지난해 로카르노국제영화제에서 주연 여배우 4명 모두 여우주연상을 수상했다.
=다나카 사치에_영화제라는 게, 그 상의 의미라는 게 뭔지도 잘 몰랐다. 함께 작업하면서 친해진 배우들과 여행가듯이 영화제에 참석했다. 결과를 받아들고서는 어찌나 놀랐던지. 휘둘리지 말고 차분해지자는 생각뿐이었다. 계속 연기를 할지는 아직 모르겠지만 뭔가 새로운 분야에 계속해서 도전해보고 싶은 마음만큼은 커졌다. 그리고 이 말을 꼭 하고 싶다. <해피 아워>는 러닝타임이 긴 영화가 아니다. 그저 ‘슬로 무비’, 천천히 흘러가는 영화일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