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조종국 <씨네21> 편집위원
이제 소귀에 경 읽기도 지겹다고들 한다. 벽창우가 따로 없다. 부산시를 두고 하는 말이다. 지난 4월18일 ‘부산국제영화제 지키기 범영화인 비상대책위원회’(이하 영화인 비대위)가 올해 부산국제영화제(이하 부산영화제) 참가를 전면 거부하기로 결의했다는 발표를 하고, 이러다간 정말 올해 부산영화제가 못 열리거나 초라한 ‘동네영화제’로 전락할 수 있다는 우려가 커졌다. 그런데도 부산시는 곧바로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동안 밝혀왔듯이 부산영화제와 협력하여 금년 영화제를 개최하겠다는 의지를 표명하였다’는, ‘공식 입장’을 버젓이 발표했다.
부산시는 마치 영화인 비대위의 ‘전면 보이콧’ 결의 발표에 맞대응하려는 듯 20일 서울에서 기자간담회를 열었다. 이 자리에서 부산시 김규옥 경제부시장은 지금까지 파행의 모든 책임을 집행위원회에 미루고, “부산시는 많은 것을 양보하고 있다”는 등 앞뒤가 안 맞는 변명에 급급한 피해자 코스프레를 연출하다가 기자들의 호된 질문 공세에 진땀을 뺐다고 한다. 영화인 비대위의 참가 거부 결의에 대해서도 “이런 것들이 보이콧을 할 만한 쟁점인지 의문이다. 갈등을 증폭시키고 있는 것 같다”라고 말하는 등 부산영화제 사태와 영화인 비대위의 ‘전면 보이콧’ 결의에 대한 안일하고 무지한 현실 인식을 여지없이 드러냈다. 가장 큰 문제는, 영화인들의 ‘전면 보이콧’과 해외 영화인들의 참가 거부가 어떤 의미인지 부산시가 잘 모르고 있다는 점이다. 자칫하면 동네조기축구회 불러서 월드컵 개최하는 꼴이 된다는 걸 체감하지 못하는 무지이거나 알면서도 어쩌지 못하면 무능한 것이다.
이젠 정말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 부산영화제는 20세기에 기틀을 잡아 부산이 유네스코 영화창의도시로 지정받게 한 한국 최고이자 세계적인 문화자산이다. 이대로 흘러간다면 서병수 부산시장과 관련 고위 공무원들은 그 부산영화제를 망친 반문화적인 부산시장과 하수인들로 그 이름이 기록되어 역사에 길이 남을 것이다.
카드가 하나 있다. 국내외 영화계, 사회•문화•예술계, 부산 지역사회 등 전반적으로 신망이 두터우며 ‘교집합은 가장 크고, 거부감은 가장 적은’ 김동호 명예집행위원장을 조직위원장으로 선출하는 ‘원포인트 정관개정’을 해서 얼마 남지 않은 올해 부산영화제 준비에 매진해야 한다. 말 많고 탈 많은 정관개정도 일단 파국은 피한 다음 절충해서 타협점을 모색할 수 있다. 지금이야 양극단의 개정 방향을 고수할 수밖에 없는 명분 싸움이 되고 있지만, 별도의 전담기구를 만들어서 시간을 갖고 하자투성이인 지금의 정관을 제대로 정비하는 일을 병행하는 것이 합리적이고 현실적인 해결책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