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인 노동자 다섯명이 동남아에서 피랍됐다. 회사쪽은 한명분의 몸값만 준비했고, 기업 협상전문가 주성찬(신하균)은 이 돈으로 네명을 구한다. 셈으로 치면 만족스러운 결과다. 하지만 현장에서 형을 잃고 살아 돌아온 남자는 몸에 폭탄 조끼를 두르고 성찬 앞에 나타나 외친다. “난 회사나 인질범보다 네가 더 역겨워!” 인질로 잡힌 애인을 구하기 위해 성찬은 곧바로 방송국 카메라 앞에 무릎을 꿇고 협상의 내막을 밝힌다. “저는 차라리 협잡꾼, 사기꾼에 가깝습니다. 적은 몸값에 분노한 인질범들이 인질 중 한명을 죽이는 걸 시나리오에 넣었습니다.”
마치 악인이 그간의 죄를 몽땅 고백하는 복수극의 최종회 같은 첫회. tvN <피리부는 사나이>의 부제는 ‘일촉즉발 협상극’이다. 배후에서 폭탄테러를 도운 일명 ‘피리부는 사나이’는 성찬의 반성에도 원격으로 폭탄을 터뜨려 현장의 사람들을 제물로 삼았다. “넌 아직 네 잘못을 몰라.” 대체 타인을 도구로 삼아 테러와 범죄를 사주하는 자가 협상가에게 추궁할 수 있는 잘못이 뭘까?
성찬의 고백은 재벌의 언론 통제로 보도되지 못했고 방송국을 테러의 표적으로 삼은 ‘피리남’은 벼랑 끝에 내몰린 이들의 비명을 덮고, 진실을 무마하고, 갈등을 축소하는 언론을 비난한다. 하지만 복수극 대신 협상극임을 강조했던 드라마가 목적으로 삼는 것은 심판보다 기능의 회복일 것이다. 기업협상가에서 경찰청 위기협상팀 자문위원이 된 주성찬과 협상관 여명하(조윤희) 콤비를 주인공으로 삼은 것도 이들이 절박한 위기에 놓인 사람들의 목소리를 듣고, 말하고, 설득하는 상징적인 존재가 되기 때문이다. 복수하는 자로는 할 수 없는 이야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