덩치가 작아 ‘마이크롭’이란 별명이 붙은 다니엘(앙주 다르장)은 그림을 잘 그리는 몽상가다. 어느 날 다니엘의 반에 테오(테오필 바케)가 전학 온다. 테오는 직접 개조한 바이크를 타고 다니는 괴짜로, 고물상에서 이것저것 주워다 엉뚱한 소품을 발명하는 일이 취미다. 다니엘과 테오는 금세 단짝이 되고, 무료한 생활에 지친 둘은 여름방학을 맞아 직접 만든 자동차로 프랑스 전역을 누비기로 한다. 둘은 긴 모험을 하며 여러 사람들을 만난다. 감독 자신의 어린 시절 이야기를 영화화한 <마이크롭 앤 가솔린>은 미셸 공드리의 전작을 통틀어 가장 현실적이고 보편적인 성장담이다. 현실적이라고 했지만 어디까지나 그의 전작에 비해서일 뿐 귀엽고 사랑스러운 상상력은 여전하다.
-지금까지의 작품 중 가장 무난한 내용과 형식으로 전개되는 영화다. 자전적 이야기에 바탕했다는 점이 일종의 현실감을 부여한 것은 아닌지 묻고 싶다.
=알다시피 그동안의 작품들에서 꿈과 환상에 대한 이야기는 충분히 해왔다. 이번 작품만큼은 솔직하고 단순하게 만들고 싶었다. 시나리오 초고엔 꿈과 꿈에 관한 질문을 많이 담기도 했는데 고치는 과정에서 대부분 삭제했다.
-실제 경험담을 얼마나, 어떻게 담았나. 구체적인 사례를 하나 꼽자면.
=오프닝부터 영화의 반은 온전히 나의 이야기다. 내가 만들긴 했지만 나의 어린 시절이 그대로 드러나 얼마나 부끄러웠는지 모른다. 중간지점부터는 절반 정도의 내 이야기에 친구들 이야기를 덧붙여서 만들었다. 다만 친구와 함께 자동차를 만들기로 한 부분은 허구다.
-주인공 다니엘과 테오는 어디서부터 출발한 인물들인가.
=전작 <무드 인디고>(2013)는 프랑스의 유명한 소설을 영화화한 작품이다. 이번엔 내 안에서 나온 내 이야기를 하고 싶었다. <무드 인디고> 때 함께 일했던 오드리 토투도 곁에서 용기를 북돋아 주었다. 나는 내 어린 시절의 추억들을 작은 카드에 하나씩 적었고 서로 연결이 안되는 것들은 과감하게 버리면서 카드에 적힌 이야기를 토대로 큰 이야기를 만들어갔다. 하지만 연결이 되지 않아도 포기할 수 없는 이야기들이 있었다. 그래서 두명의 소년을 등장시켜 이야기를 자연스럽게 연결했다. 테오는 내 어린 시절 함께 어울린 친구들의 모습을 많이 반영하고 있다.
-다니엘을 그림을 잘 그리는 소년으로, 테오를 기름 냄새와 기계를 사랑하는 소년으로 그린 이유가 뭔가.
=내 어린 시절이 그랬기 때문이다. 두 가지 모습이 다 내게 있었다. 난 다니엘처럼 초상화를 그리는 걸 좋아하는 아이인, 동시에 테오처럼 뭐든 뚝딱거리며 만드는 걸 즐기는 아이이기도 했다.
-이상한 치과의사, 마사지숍의 여인들, 럭비 선수들, 이벤트를 여는 항공사 직원들 등 두 소년이 여행길에 만나는 인물들은 어떻게 만들어진 캐릭터들인가.
=시나리오를 쓰면서 어린 시절의 추억에 몰두해보았다. 쓰는 동안 여러 차례 꿈을 꾸었는데 영화 속 인물들의 상당수가 꿈에 나온 사람들이다. 아마 어릴 때 만난 인물들이 차례로 꿈에 등장한 것이 아닌가 싶다. 그래서 시나리오를 쓰는 과정도 무척 즐거웠다.
-여행을 마치고 두 소년은 각자 다른 세계로 진입한다. 하지만 그것이 ‘성장’의 단계인지는 모호하다. 예컨대 다니엘은 자신이 좋아한다고 생각했던 로라의 관심을 끄는 데 성공하지만 정작 로라가 다니엘의 시선을 원할 때는 돌아보지 않는다. 결말을 다니엘과 로라의 역전된 관계로 설정한 이유는 뭔가.
=그 결말은 시나리오 초기 단계에서부터 생각한 아이디어다. 초반 장면을 보면 다니엘이 로라의 뒤통수를 하염없이 본다. 그런데 마지막 장면에선 로라가 다니엘의 뒤통수를 보고 있다. 처음엔 다니엘이 로라를 사랑하고 나중엔 로라가 다니엘을 사랑하게 되는 아이러니를 표현하고 싶었다. 테오가 조언을 해준답시고 다니엘에게 “로라에 대해 신경을 끊는 순간 로라가 너를 원하게 될 것”이라 예견했듯. 그것이 성장인지 그냥 꿈의 일부인지 판단하는 일은 관객 몫이 아닐까.
-영화를 통해 무언가를 해체하고 재조립하는 것을 즐기는 것 같다. 영화 속 자동차는 당신의 그런 취향이 반영된 결과물 같다. 다니엘과 테오는 고물로 취급되기 쉬운 물건들로 아름다운 집이자 자동차를 탄생시키잖나.
=말했듯이 난 어릴 때부터 항상 뭔가를 만드는 데 몰두해왔다. 자동차든 비행기든 간에 뭐든 이것저것 만드는 걸 좋아했다.
-독특한 외양의 자동차는 어떤 과정을 통해 설계됐나.
=극중 테오와 비슷한 친한 친구가 실제로 내게도 있었다. 그가 있었기 때문에 내가 지금처럼 꿈을 꾸며 살게 되었다. 그 친구 역시 테오처럼 가정환경이 불우했다. 그때 우린 무척 들뜬 기분으로 자동차를 설계하고 디자인했는데 실제로 만드는 일까지 함께하지는 못했다. 그래서 나는 영화에서 그 친구와 만들기로 했던 모양을 그대로 재현해 자동차를 만들었다.
-오드리 토투와는 <무드 인디고>에 이어 함께 일하고 있다.
=<무드 인디고>를 끝내고 오드리가 내게 좀더 사적인 이야기를 해보는 게 어떠냐고 제안했다. 그 덕에 <마이크롭 앤 가솔린>이 탄생했는데, 촬영하면서도 오드리가 열심히 응원해줬다. 오드리는 아주 작은 역할이지만 다니엘의 엄마 역을 맡아 완벽한 연기를 보여줬다. 내 어머니도 참 좋은 분이었다. 우울증을 앓고 계셨지만.
-아직 국내 개봉하지 않은 작품이 한편 더 있다. 다큐멘터리 <미셸 공드리와 노암 촘스키의 행복한 대화>다. 촘스키를 만나기로 마음먹은 이유는 무엇인가.
=우연히 촘스키에 관한 다큐멘터리 <매뉴팩처링 콘센트: 놈 촘스키 앤드 더 미디어>(Manufacturing Consent: Noam Chomsky and the Media, 1992)와 <놈 촘스키: 레블 위드아웃 어 포즈>(Noam Chomsky: Rebel Without a Pause, 2003)를 봤다. 훌륭했다. 보자마자 그의 진실한 모습에 빠져들었고 그가 매우 훌륭한 과학자임을 깨달았다. 그는 과학적인 동시에 정치적인 방식으로 세상에 접근하는 학자다. 정치는 주관적일 수 있고 과학은 데이터를 기반으로 하는 객관적인 학문인데 그는 둘 모두 가능한 드문 사람이었다. 그에 관한 작품을 하나 해보고 싶었고 <미셸 공드리와 노암 촘스키의 행복한 대화>가 그 결과물이다.
-<마이크롭 앤 가솔린>이 당신에게 어떤 추억으로 남을까.
=음, 내 모든 것이 담긴 영화라 생각해주면 좋겠다. (웃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