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 적이 실수할 때 방해하지 않아.” “전사로 와서 전사자로 돌아갈 순 없다.” 비무장지대에 침투한 북한 특수부대원과 그를 북으로 돌려보내려는 한국 특전사가 육탄전을 벌이다 잘 갈고닦은 멋진 말을 주고받으며 헤어진다. 총을 겨누고 격투를 해도, 여기는 대화의 기량이 가장 중요한 로맨틱 코미디의 세계다.
KBS 드라마 <태양의 후예>는 특전사 대위 유시진(송중기)의 위협적인 신체능력을 자주 보여주지만, 그를 위험한 남자와 위험한 직업에 투신한 남자로 가르는 경계는 분명하게 알고 있다. 상체를 벗고 ‘알통구보’하는 특전사들을 병풍처럼 세우면서도 유 대위가 외과의 강모연(송혜교) 선생 앞에서 함부로 옷을 벗어 근육을 자랑하는 일은 없다. 티셔츠를 올려 배를 살짝 들추는 장면조차 상황의 통제권은 상처를 치료하는 강 선생에게 있다.
언제 군용헬기를 타고 훌쩍 떠날지 모르는 남자. 어디서 뭘 하는지도 물을 수 없는 남자의 연인이 되긴 곤란하다고 강 선생이 결론을 낼 때마다 유 대위는 세상에 둘도 없을 정중한 표정으로 그녀의 의사를 받아들이고 존중한다. 사람이면 누구든 거절의 말에 상처 입게 마련이고, 서로 끌림을 감추지 않는 사이에 야속한 마음이 없진 않을 텐데, 그런 내색을 절제하는 품위 때문에 이런저런 제복을 공작새처럼 뽐내도 근사하기만 한 것이다.
“내가 군인이 아니라 평범한 재벌 2세였다면, 우린 좀 쉬웠습니까?” “아니요, 그건 너무 평범해서.” 알다시피 재벌 2세를 평범하다고 말할 수 있는 세계는 로맨틱 코미디뿐. 남자주인공의 정신적 트라우마를 치유하던 이 세계의 판타지는 그늘 없이 강인한 남자로 이동하는 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