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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호상의 TVIEW] 125년을 건너온 오마주

<그리고 아무도 없었다>

공상과학 소설가인 아서 C. 클라크나 팝 가수 엘튼 존, 그리고 비틀스의 폴 매카트니는 모두 영국 왕실로부터 작위를 받았다. 다시 말하면 엘튼 존 ‘경’이다. 후작이나 남작, 백작 등은 마치 <삼총사> 속 달타냥에게나 주어지는 중세시대의 명칭 같지만, 현대 영국에서는 예술인들에게도 폭넓게 이런 작위를 수여하는 모양이다. 그리고 그 영예는 중세시대의 그것 못지않다. 이 작위를 추리소설가로서 1971년에 받은 인물이 있다. 추리소설의 여제 애거사 크리스티다. 그녀의 수많은 명작 중에 으뜸이라고 꼽히는, <그리고 아무도 없었다>(And Then There Were None)를 그녀의 탄생 125주년을 맞아 <BBC One>에서 3부작 특집 드라마로 방송했다. 번역본이 늘 그렇듯이 ‘그리고 아무도 남지 않았다’의 제목을 단 번역본을 처음 접한 나로서는 ‘남지 않았다’의 오싹함이 더 깊숙이 와닿지만, 어쨌든 추리소설 좀 읽어본 사람이라면 손에 꼽을 정도의 명작이라는 사실엔 변함이 없다. 원작과 기본 줄거리는 물론 같다. U. N. Owen이라는 사람에게 초대받은 여덟명의 손님과 ‘병정섬’에 고용된 집사 부부. 외딴섬에 고립된 열 사람의 운명은 방마다 걸려 있는 액자 속 시와 같아지고, 결국은 아무도 남지 않는다. 초판의 열개의 흑인 인형이 이후 열개의 인디언 인형이 되고, 이 특집 드라마에서는 열개의 꼬마 병정이 된다. 상상으로만 존재하던 섬의 을씨년스러운 분위기, 개성 넘치는 열명의 캐릭터와 그들의 죄 많은 과거에 대한 비주얼적인 재현도 볼거리다. 영국 영어 특유의 각진 발음도 극의 연극적인 전개에 매력을 더한다. 하지만 무엇보다 자국의 소설가 탄생 125주년을 맞아 바치는 그들의 조심스럽지만 확실한 존경은 질투가 날 정도로 부럽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