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속의 음악을 듣기 위해 영화를 두번 이상 보아야 했다. 처음에는 두 사람의 감정에 이끌려 다니느라 놓친 음악들을 다시 천천히 음미하고 싶어서. 그런데 두 번째에도 놓친 부분들을 여전히 놓치고 말았다. 여기 놓치지 않은 몇개의 음악들의 소회를 적는다. 1950년 미국의 도시를 배경으로 한 영화 <캐롤>은 음악들도 1950년대 태생이 많다. 이름하여 미국판 ‘응답하라 1950’인 셈.
<You Belong to Me> 헬렌 포스터, 더 로버스
호감을 가지고 다시 만난 두 여자가 차를 타고 캐롤의 집으로 향하는 순간 캐롤의 테마 위에 겹치며 이상하고도 묘한 불협화음을 만들어낸다. 아직 온통 앞이 보이지 않는 불안함뿐이지만 ‘사랑하는 그대여 항상 기억해줘/ 내가 늘 그대와 함께라는 것을’이라고 속삭여줄 이가 있다면 어떤 불협도 음악이 될 수 있다는 것을 증명하듯. 터널 속의 빛처럼 노래는 번져나간다. 원래 <You Belong to Me>는 1952년 슈 톰슨에 의해 최초로 레코딩된 노래인데 1994년 영화 <올리버 스톤의 킬러>에 밥 딜런이 이 노래를 부르면서 전세계적으로 유명해진 노래이다. 그 후에 많은 뮤지션들이 이 노래를 커버해서 불렀고 이 영화에선 헬렌 포스터, 더 로버스의 버전이 삽입되었다.
<Silver Bell>(from <The Lemon Drop Kids>) 페리 코모
“언제는 알고 했나” 사랑이란 것. 속마음을 친구 애비에게 털어놓은 후(크리스마스를 앞두고) 캐롤과 테레즈는 함께 서쪽으로의 여정에 오른다. 첫 마음, 첫 여행에 첫 노래, 마침맞게 캐럴이다. 1950년 10월 빙 크로스비와 캐럴 리처드가 녹음하여 발표해서 히트를 친 <Silver Bell>은 1950년에 촬영하고 1951년에 개봉한 영화 <The Lemon Drop Kids>에서 밥 호프와 마릴린 맥스웰에 의해 처음으로 불린 노래다. 영화 개봉 후 영화사는 밥 호프와 마릴린 맥스웰에게 가다듬어서 다시 부르기를 요청했다는 후문도. 카터 버웰은 사람들에게 많이 알려진 빙 크로스비 버전이 아니라 <The Lemon Drop Kids>의 <Silver Bell>을 선택했다. 이 노래를 듣다보면 이대로 해피엔딩하고 싶을 정도로 행복한 출발. 역시 시작은 캐럴로!
<That’s The Chance You Take> 에디 피셔
해가 저물어 도착한 호텔 앞, 라디오에서 흐르던 노래. 아직 평행선 같은 두 사람에게 들려주는 DJ의 추천곡, 에디 피셔의 <That’s The Chance You Take>. 1952년 4월 빌보드차트 10위에 오른 곡으로 따뜻하고 강렬한 보컬에 멋진 코러스라인이 64년이 지난 지금에도 여전히 다정하다.
<Easy Living> 빌리 홀리데이
스위트룸의 친밀함 가득한 향기 속에서 다시 등장한 이 노래. 3분여의 짧은 곡인데 딱 절반이 지난 후부터 빌리 홀리데이의 목소리가 하나의 악기처럼 등장한다. 앞서 테레즈가 서툴게 연주했던 그 곡, 테디 윌리엄스와 빌리 홀리데이의 <Easy Living>이다.
<One Mint Julep> 클로버스
한결 친밀해진 그들이 시카고로 떠나는 장면, 길 위의 영화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드라이브 장면이 많은데 그중 단언컨대 두 주인공이 가장 밝게 웃던 신에서 흐르던 ‘한잔의 박하술’이라는 제목의 노래. 저음과 고음을 넘나드는 신나고 경쾌한 피아노 위에 절묘한 코러스라인, 콘트라베이스와 드럼이 단단하게 받쳐주며 멜로디를 돋보이게 한다. 한잔의 박하술이면 어디라도 좋을, 아니 함께하는 것만으로도 취하게 만드는 사랑, 그 여정 위에 흐르는 노래.
<No Other Love> 조 스태퍼드
쇼팽의 <이별의 곡>에 사랑의 노랫말을 덧붙인 <No Other Love>. ‘당신 아닌 사람은 내 마음을 따뜻하게 할 수 없죠/ 당신의 팔이 얼마나 평온했는지 이제야 알았어요/ … / 다른 사랑은 없어요/ 다른 사랑을 허락할 수 없어요.’ 파티의 분위기에 적응하지 못하고 혼자 빠져나와 화장실에서 담배를 피우며 위스키를 홀짝이는 테레즈. 그때 홀에 흐르던 노래. 이 노래 때문이었을까. 파티를 뒤로하고 혼자 빠져나온 테레즈는 제자리를 찾아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