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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상까지 맞춰 입고 연기한다
김현수 사진 백종헌 2016-02-02

<엑스파일> 멀더 역의 이규화 성우

멀더와 스컬리는 드라마의 주인공을 넘어 시대의 아이콘이 된 캐릭터다. 그중 멀더의 목소리 연기를 맡은 이규화 성우의 삶도 그로 인해 완전히 달라졌다. 1982년 KBS 성우 17기로 입사해 멀더를 만나게 된 이후 그는 줄곧 이규화가 아니라 멀더의 삶을 살아왔다고 말한다. 그 말에는 어떠한 위화감도 느껴지지 않는다. 실제 성격도 극중 멀더의 성격과 흡사하다는 인상을 받았을 정도로 그는 완전한 멀더 그 자체였다.

-시리즈가 재개된다는 소식을 듣고 어땠나.

=내가 녹음했던 다른 외화와 차이점이 있다면 <엑스파일>은 1990년대 인터넷 문화의 태동과 함께 동호회와 팬클럽이 생기는 등 많은 인기를 누린 첫 번째 수혜 작품이라는 거다. 내겐 성우 인생의 전부라고 할 수 있을 정도로 중요한 작품이다. 시리즈가 다시 시작한다는 이야기를 듣고 무지 감격스러운데 어떻게 표현이 안 되더라. 너무 벅차서. (웃음) 요새 대부분 자막 방영을 하는 추세라 더빙을 못할 줄 알았다. 여러모로 감격스러운 일이다.

-녹음을 위해 첫편만 미리 본 것으로 아는데 소감이 궁금하다.

=데이비드 듀코브니가 좀 도깨비 같은 친구인데, 오랜만에 봤는데도 별로 변한 게 없더라. 14년이나 지났는데도 수염만 좀 덥수룩하게 길렀을 뿐이지. (웃음) 그는 예나 지금이나 저 너머의 진실을 밝혀내고야 말겠다는 의지가 강한 캐릭터다. 여전히 무언가를 찾아 헤매는 모습이 보기 좋았다.

-목소리 연기는 오랫동안 하지 않으면 잊어버리기 쉬운데 다시 멀더 연기를 하려니 어렵겠다.

=나는 성우 이규화라기보다 지금도 멀더 이규화로 살고 있다. 14년의 공백이 있었다고 해도 여전히 멀더의 이미지로 거의 모든 녹음을 하기 때문에 한시라도 그와 떨어져본 적이 없다. 광고나 다큐멘터리 등에서 애초 나를 섭외할 때도 이규화가 아니라 멀더를 섭외하는 거니까 낯설지가 않다. 매번 해오던 거라 연장선상에 있다고 생각한다.

-그동안 멀더의 목소리 연기를 하면서 기억해뒀던 특징이나 녹음 노하우가 있다면.

=극중 멀더는 언제나 슈트 차림에 코트를 걸치고 등장한다. 다른 옷을 입은 적이 거의 없다. 사람들은 대부분 의상에 따라 행동양식이 달라지곤 하는데 나는 항상 녹음할 때 멀더의 의상과 똑같이 맞춰 입고 녹음했다. 아무것도 아닌 것 같지만 대본을 받고 화면을 보면 연기할 때 의상이 차지하는 비중이 꽤 크다. 마침 오늘도 별 생각 없이 수염을 기른 채 점퍼를 걸치고 나왔는데 신기하게도 화면 속 멀더가 딱 그런 모습이더라. 역시 인연인 것 같다.

-멀더라는 캐릭터가 지닌 매력이 뭘까.

=멀더는 남녀간의 사랑을 초월한 인간적인 사랑을 느끼는 캐릭터다. 나는 그런 멀더의 감정선을 가장 중요하게 생각해왔다. 드라마 전체 주제와도 맥이 닿아 있는 듯한데 사사로운 감정에 얽매이지 않고 오직 초자연적인 현상과 드라마에 집중할 수 있었던 이유는 바로 그런 멀더의 성격 때문이라고 생각하며 연기했다.

-오랜만의 더빙, 드디어 진짜 멀더와 만날 순간을 앞둔 소감 혹은 각오를 다진다면.

=새삼스러울 것은 없다. 나는 사실 다른 성우에 비해 발음도 약하고 목이 풀리는 시간도 오래 걸리고 성격도 무난하지 않아서 기분에 따라 녹음 차이가 확연히 드러나는 단점이 있다. 그래서 남들이 시사 한두번 할 때 나는 열번 한다는 각오로, 부족하면 뭐든 더 한다. 내가 갖고 있는 신조다. 남은 에피소드도 모두 무조건 최상의 컨디션을 가지고 임하겠다. 대한민국에서 나처럼 운이 좋은 성우도 드물다고 생각한다. 이제는 멀더와 함께한 내 운을 다른 사람들에게도 나눠주며 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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