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이름은 아닌아> Anina
감독 알프레도 소데르기트 / 목소리 출연 페데리카 라카노, 마리아 멘디브, 세자르 트론코사, 크리스티나 모란 / 수입 영화사 새사람 / 배급 수키픽쳐스 / 제작국가 우루과이, 콜롬비아 / 제작연도 2013년 / 상영시간 78분 / 등급 전체 관람가
열살 소녀 아닌아에겐 심각한 고민이 하나 있다. 바로 읽어도 거꾸로 읽어도 똑같은 이름 때문에 친구들에게 카피쿠아(머리capi+꼬리cúa)라고 놀림받는 것이다. 어느 날 친구 이셀과 다툰 아닌아는 교장선생님에게 불려간다. 교장선생님은 두 사람에게 벌의 내용이 담긴 검은 봉투를 건네며 일주일간 누구에게도 말하지도 열어보지도 않도록 당부한다. 본인은 물론 친구들의 관심까지 몰리자 호기심 왕성한 소녀는 봉투 안의 내용이 궁금해 한 가지 꾀를 낸다. 함께 벌을 받은 이셀의 봉투를 몰래 열어보려고 하는 것이다.
<내 이름은 아닌아>는 우루과이에서 제작된 남미 애니메이션이다. 퇴직교사 출신 동화작가 세르지오 로페즈 수아레즈의 동화 <Anina Yatay Salas>를 각색한 애니메이션으로 감독 알프레도 소데르기트는 원작 동화에서 일러스트를 담당하기도 했다. 우리에게 생소한 우루과이 애니메이션이란 점도 특별하지만 연필과 수채화로 그려진 일러스트풍 작화는 3D가 대다수인 최근 극장애니메이션 사이에서 도드라진다. 자극적인 내용이나 갈등, 커다란 사건 하나 없이 관객의 관심을 끝까지 잡아끄는 힘의 대부분은 긴장을 풀어주는 작화의 푸근함에서 비롯된다. 동화책을 넘기며 삽화를 보는 것 같은 맑은 톤의 그림은 우리가 잊고 있던 동심의 투명함과 닮았다. 디테일한 지점에서 신경을 쓴 흔적도 적지 않게 보이는데, 어린아이를 직접 캐스팅한 아닌아의 목소리 연기는 신의 한수다. 무엇보다 열살 소녀의 시점으로 풀어낸 세상이 귀엽고 참신해 절로 미소가 지어진다. 자신의 잘못을 다그치지 않는 엄마를 보며 “엄마도 궁금할 것이다. 하지만 엄마는 기다려준다. 기다려야만 충분히 익는 튀김요리를 하면서 기다리는 법을 배웠기 때문이다”라고 말하는 아닌아는 뒤이어 자신이 튀김이 되는 상상력을 발휘한다. 예상치 못한 지점에서 펼쳐지는 상상의 나래는 그 시절 우리가 바라봤던 세상이 얼마나 다채롭고 신비했는지 새삼 일깨운다. “출발하는 꿈은 자기 전에 생각하는 거고, 도착하는 꿈은 깨기 전에 기억하는 것”이라는 등의 아이의 시점이기에 가능한 기발한 접근이 곳곳에 녹아 있다. 자신을 돌아보는 일주일의 시간이 지나고 영화가 끝날 무렵이면 순수했던 시절을 추억하며 이렇게 외치게 될지도 모르겠다. “행운의 카피쿠아, 하나 둘 셋. 다 잘될 거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