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날의 시사회에서, 대부분의 기자들이 좋은 평가를 내린 까닭에 대니 보일 감독과의 인터뷰는 그 어느 때보다 유쾌하게 진행됐다. 기자들의 호의적인 태도에 한결 마음을 놓은 대니 보일이 이번 작품에 대해, 그리고 작품을 함께한 특별한 동료들에 대해 진솔한 이야기를 전했다.
-1984년과 88년, 98년을 묘사하면서 각기 다른 카메라/필름을 사용했다.
=그렇다. 각각의 프레젠테이션은 16mm, 35mm, 알렉사 카메라로 촬영했다. 이를 통해 일종의 기술 혁신이 되어가는 모습을 날것 그대로 보여주고 싶은 마음이었다. 16mm 촬영을 통해 컴퓨터의 시초가 태어나던 순간의 강렬함과 투박함이 잘 전달됐다고 믿는다. 아! 이건 비밀인데, 16mm를 쓴 또 다른 이유는 배우들을 좀더 어리게 보여주기 때문이다. (웃음) 두 번째 프레젠테이션을 준비하던 순간은, 잡스의 인생에 있어서 잊지 못할 아름다운 이야기가 가득하다고 생각했기에 당연히 35mm가 잘 맞았다고 생각한다. 마지막 프레젠테이션은 알렉사 카메라로 촬영했는데, 사실 96년 <토이 스토리>에서 잡스는 이미 이 카메라를 사용한 바 있다. 세 번째 프레젠테이션 장면을 알렉사 카메라로 촬영한 것은 그때 당시 나에게 놀라움과 충격을 안겨주었던 스티브 잡스에 대한 나만의 존경의 표시다. (웃음)
-이 작품을 맡으면서, 스티브 잡스의 일대기를 다룬 다른 영화나 다큐멘터리를 보았나.
=보지 않았다. 나에게는 훌륭한 원작과 극작가가 있었기 때문에 영화를 준비하고 만드는 순간에는 다른 작품들을 보고 싶은 생각이 들지 않았다. 영화를 다 마무리해놓은 지금은, 다른 작품들 보면서 우리 영화와 비교를 해봐도 재미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기는 한다.
-리사를 자신의 아이로 인정하지 않던 잡스는 리사가 매킨토시에 추상화를 그린 것을 보고 난 뒤 양육비를 더 주겠다는 뜻밖의 결정을 내린다. 이런 태도 변화가 무엇 때문이라고 생각하나.
=음… 잡스는 매우 복잡한 인간이다. 나는 그가 의미를 두는 자식이란, 어쩌면 생물학적인 존재라기보다 기계 그 자체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했다. 리사가, 자신이 막 발명한 매킨토시를 이용해 추상화를 그리는 모습에서 어쩌면 그는 자신이 평소에 믿고 있었던 누구나 편하게 조작할 수 있는 기계의 실현을 확인한 것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것도, 자신의 생물학적 딸을 통해! 물론, 이 장면은 우리의 상상을 바탕으로 만들어진 것이니 누구라도 오해는 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웃음)
-유난히 대사가 많고 긴 에런 소킨의 작품을 연출하는 데에는 분명 즐거움 외에 어려움도 있었을 것 같다.
=‘도대체 어떻게 찍어야 하지?’라는 질문을 정말 많이 했다. (웃음) 사실 이제 와서 하는 말이지만 그의 197페이지짜리 극본은 2시간 안에 읽기에도 벅찬 분량이었다. (다시 웃음) 그런데 소킨은 이 방대한 분량의 극본을 던져주고서는 어떤 간섭도 하지 않았다. 이것은 그가 나에게 건넨 초대장이자 도전장으로 보였다. 희극과도 같아 보이는 그의 극본을 가지고 연극이 아닌 영화를 만드는 것, 그게 나에게 주어진 과제라고 생각했다.
-마이클 파스빈더와의 작업은 어땠나.
=그는 평상시는 매우 친절하고 좋은 사람이다. 그런데, 촬영이 시작되면 매우 강경한 완벽주의자가 된다. 나는 그의 외형이 스티브 잡스와 닮았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하지만 완벽주의를 추구하는 그의 태도를 볼 때마다 그를 통해 잡스라는 인물에 좀더 다가가는 느낌을 받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