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가 몇해 전, 마당에 깔아놓은 잔디가 누렇게 죽어가던 초등학교 2학년 여름방학의 어느 날. 마당 한 귀퉁이의 그네에 어머니와 세련된 투피스 정장 차림의 젊은 여자가 마주 앉아 이야기를 하고 있었다. 여자는 어린 내가 보기에도 미인이었는데 두 사람은 아주 진지하게 한참 동안 이야기를 나누었다. 어머니와 저 여자는 무슨 이야기를 하는 걸까? 궁금해서 기웃거렸지만 알 수 없었다. 그리고 얼마 후, 우리 집과 우리 동네의 내 또래 아이들 집에 교학사의 아동 도서가 배달되어왔다. <세계 전래동화 전집> <어린이 자연 과학 만화 전집> <어린이 글짓기 교실>, 이렇게 세 가지 전집이었다. 우리 집 앞집에 살던 친구 집에도 나와 비슷한 구성의 교학사 전집들이 배달되었는데, 친구의 책들 중에는 나에게 없는 <우주 소년 아톰>이 있었다. 친구에게 빌린 <우주 소년 아톰>을 보다가 가슴이 저릿저릿하는 이상한 감정을 경험했다. 그것은 슬프기도 했지만, 무서웠다. 여름의 더위가 서서히 물러가던 어느 날, 서늘한 마룻바닥에 엎드려 만화책을 보다가 앞으로 내가 평생을 마주 해야 할 어둠을 처음으로 보게 된 그런 느낌이었다.
내 안의 죄의식을 일깨운 이야기
<우주 소년 아톰>의 아톰 탄생 이야기도 슬펐지만 만화책 말미에 데즈카 오사무의 단편 만화들이 한두편 부록처럼 딸려 있었는데, 두편의 단편이 40여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기억에 생생히 남아 있다. <낙반>과 <붉은 배트>가 그것이다. <낙반>은 탄광의 어두운 갱도 안에서 이야기가 시작된다. 한 청년이 중년 남자와 어두운 갱도를 걸어간다. 중년의 남자는 20여년 전, 이 갱도에서 낙반 사고가 일어났을 때 동료들을 구출하고 영웅이 된 사람이고, 청년은 사고 당시 목숨을 잃은 광부의 아들이다. 사고를 취재한 신문 기사 내용은 낙반 사고가 일어나자 부상을 입은 청년의 아버지를 구하려는 중년의 남자에게 청년의 아버지는 자신보다 중상자인 광부를 먼저 구출하라고 양보했고, 중년의 남자가 구조대와 함께 갱도로 돌아왔을 때 청년의 아버지는 이미 숨을 거두었다는 아름다운 미담이었다. 당시 사고에 대해 중년 남자가 기억하는 청년의 아버지와 그의 행동에 관한 이야기는 기사와 사뭇 다르다.
사고 직후 인터뷰에서 중년의 남자는 낙반 사고가 일어나자 청년의 아버지를 구하려 찾아 헤맸지만 보이지 않아 구할 수가 없었다고 말했고, 사고가 일어난 지 십년이 되는 날 중년 남자가 말한 녹음에는 청년의 아버지가 나무 기둥에 깔려 자신의 힘으로는 도저히 구할 수가 없어 먼저 광부 한명을 구출한 뒤 구조대와 함께 들어갔을 때 청년의 아버지는 이미 숨을 거두었다고 말한다. 조금 다르기는 하지만 최악의 비극인 상황에서 중년 남자가 발휘한 동료애는 변함이 없다. 그런데 청년이 주머니에서 종이쪽지를 꺼내 중년 남자에게 내보인다. 죽음 직전 청년의 아버지가 메모를 한 쪽지였다. 중년 남자는 소년의 아버지에게 돈을 빌렸는데 돈을 갚지 않기 위해 갱목을 일부러 부러뜨려 낙반 사고를 내 청년의 아버지를 죽인 것이었다. 추악한 진상이 드러난다. 신문 기사에 난 광부들의 미담판 낙반 사고를 전할 때 데즈카 오사무의 그림체는 아주 단순화된 신문 네칸만화 그림체였지만, 마지막 진상이 밝혀질 때 데즈카 오사무의 그림체는 실사에 가까울 정도로 정교하고 누아르영화처럼 빛과 어둠이 강렬하게 대비되는 그림이었다. <붉은 배트>는 프로 야구 선수인 주인공이 자신의 라이벌을 제거하기 위해 그를 죽이고 승승장구해 최정상에 오르지만 죄의식 때문에 괴로워하고 급기야 죄가 만천하에 드러나 고통스럽게 몸부림 치며 죽는다는 강렬한 내용이었다. 늦여름의 어느 날, 나는 인간의 사악한 마음과 어두운 본성을 데즈카 오사무의 만화로 만나게 된 것이다. 초등학교 일학년, 처음으로 교실에서 도난사건이 발생했을 때 우리 모두에게 눈을 감으라고 하고 돈을 훔쳐간 아이가 죄의식에 시달리다 얼마나 고통스럽게 죽었는가에 대한 이야기를 선생이 했을 때, 내가 훔치지도 않았는데 마치 내가 훔친 것만 같았던 더러운 기분. 학교 층계에서 장난을 치다 한 아이가 굴러 떨어졌을 때 누가 한 짓인지 찾아내려고 선생이 한명 한명에게 질문을 던졌는데 혹시 내가 친구를 밀친 것은 아닌가? 하는, 심장이 폭발할 것 같은 끔찍한 기분. 죄와 벌을 생각해야 하는 일들이 일어날 때마다 나는 데즈카 오사무의 <낙반>과 <붉은 배트>를 떠올렸다.
전력을 다해 삶과 죽음을 그리다
이듬해 <소년중앙> 별책부록으로 새로운 만화가 연재되었다. 나는 이 만화가가 그리는 종류의 이야기에 빠져들 수밖에 없었다. 만화의 제목은 <뱀파이어>로 김우영 글, 그림이었다. 보름달을 보면 인간에서 늑대로 변하는 소년. 소년을 괴롭히는 것은 그가 늑대로 변해 저지르는 끔찍한 범죄였다. 변신했을 때의 소년은 통제가 안 되고, 아무것도 기억하지 못한다. 평상시의 소년은 온순하고 이타적이며 마음씨 고운 사람이지만 늑대로 변한 소년은 세상의 모든 것을 증오하며 닥치는 대로 물어뜯는 끔찍한 괴물이다. 날이 밝아 늑대에서 사람으로 돌아오면 소년은 자신이 또 무슨 끔찍한 짓을 저질렀을까 고통스러워하면서 죄의식에 휩싸인다. 소년은 보름달이 뜨면 달을 보지 않으려 애쓰며 자신의 운명을 저주한다. 그때 소년의 비밀을 알게 된 악당들이 소년을 이용해 범죄를 저지르려 소년을 협박하는데, 그들이 내민 것은 늑대가 된 소년이 저지른 죄들에 대한 증거 사진들이다. 이 만화는 몹시 무서우면서도 매혹적이었다. 소년을 끊임없이 협박하는 더러운 인간들. 그들에게 시달리며 죄를 짓지 않으려는 소년. 이야기가 점점 재미있어지려는 그때, 만화 연재는 아무런 설명이나 사과 없이 중단되어버렸다. 같은 해 소년잡지 <어깨동무>에서 <불새>가 연재되었다. 모든 사람은 죽는다. 그런데 영원히 죽지 않는 새가 있다. 그 새의 피를 마시면 영원히 죽지 않는 생명을 얻는다고 한다. 그 새의 이름은 ‘불새’ . 영원한 생명을 얻기 위해 불새가 산다는 험한 산속을 오르는 사내의 모습으로 만화는 시작된다. 사내는 화산재가 날리고 용암이 끓어오르는 화산의 분화구 근처까지 올라가 불새를 잡으려 한다. 화살이 불새의 몸을 꿰뚫지 못하자 사내는 그렇다면 맨손으로라도 불새를 잡겠노라며 불새에게 달려든다. “그 피를 마신 자는 영원한 생명을 얻는다!” 불새를 잡아 껴안는 순간 사내의 몸은 불타기 시작한다. 영원한 생명을 얻으려다 불에 타 젊은 나이에 죽는 사내의 이야기로 이 장대한 만화는 시작된다. 하지만 이 만화 역시 3회를 넘기지 못하고 어떠한 설명도 없이 연재가 중단되고 말았다. 비슷한 시기 <소년중앙>에서 <원더3>가 연재된다. 우주에서 지구를 멸망시키려 정찰 온 세 우주인이 인간이 아닌 토끼, 말, 오리의 몸속에 들어가 인간의 세계를 정찰하는 이야기였는데, 이것 역시 무척 재미있었지만 3회 연재를 넘기지 못하고 아무런 설명 없이 연재가 중단됐다.
그 이듬해 헌책방에서 일본 소년만화 잡지를 사보게 되면서, <뱀파이어> <불새> <원더3>가 일본 만화가의 작품이란 것을 알게 되었고, <우주 소년 아톰>과 몇해 전에 보았던 <낙반> <붉은 배트> <사파이어 왕자, 리본의 기사> 역시 그 일본 만화가 한 사람이 그린 만화란 사실을 알게 되었다. 털과 벌레가 이름에 들어 있는 재미있는 사람이었다. ‘모총치충’(70년대에는 일본인, 중국인의 이름을 한자음 그대로 읽었다). 이상하다기보다는 재미있었다. 이 만화가의 만화에 등장하는 넝마인지 해골인지 분간이 안 가는 작가를 대변하는 캐릭터도 재미있었다. 이 모총치충이란 만화가는 꽤나 어두운 이야기를 만화로 그리지만 참 유쾌하고 재미있는 사람이란 생각이 들었다.
궁금했다기보다는 사실 두려웠다. 태어난 모든 인간은 반드시 죽는다는 사실이. 기독교 집안에서 자란 나는 죽음에 대해 일주일에 한번 교회에서 생각해봐야 했고, 여름 성경학교 어린이 부흥회에서 지옥의 공포를 미끼로 어린이들을 협박해 종교에 의지하게 하려는 얄팍한 수작을 부리던 나쁜 전도사 덕분에 천국의 존재에 의지하지 않고 죽음에 대해 생각하기 시작했다. 목사의 사모님이었던 할머니는 이유는 알 수 없었으나 교인 환자의 집으로 기도를 해주러 갈 때마다 나를 항상 데리고 갔었다. 안방에 들어서자 한 소녀가 이불 속에 누워 있었다. 나보다 대여섯살 많은 중학생 또래의 소녀였는데 병원에서 병을 못 고치고 죽어가고 있었다. 나이가 들어 뭉크의 그림에서 내가 보았던 그 방 안과 비슷한 풍경이 그려져 있다는 것을 알았는데, 그 어둠과 죽어가는 사람이 풍기던 비릿한 냄새는 어린 나에게 강하게 각인되었다. 동네 골목으로 들어오는 나병 환자를 보기 위해 집 장독대의 장독 사이에 숨어 골목을 훔쳐본 적이 있었다. 몇해 전 할아버지가 아버지의 묘비를 임시로 세우려 나무를 깎아 십자가를 만들고 페인트칠을 하던 그 자리에서 나는 나병 환자를 보려고 장독 뒤에 숨어 있었다. 겨우내 얼어붙었던 땅이 녹아 진창이 되었는데 추운 날씨에 누더기를 걸친 커다란 청년이 퉁퉁 부은 맨발로 진창을 철퍼덕 소리를 내며 걸어오고 있었다. 청년의 발은 보라색이었다. 초등학교 입학식 날 학교 교문 앞에서 마주친 나병 환자였다. 몇해 후, 나는 장독대 뒤에서 아버지의 십자가와 초등학교 입학식 날 보았던 나병 환자 청년을 생각하며 숨을 죽이고 골목을 엿보고 있었다. 그날 온몸을 검은 옷으로 감싼 나병 환자는 느릿느릿 아무런 소리도 내지 않고 골목을 걸어갔다.
모총치충, 데즈카 오사무의 만화 <불새>는 나는 왜 태어났고 언제 죽을 것이며, 나병 환자는 왜 고통을 받아야 하는가. 죽으면 어떻게 되는가라는 것에 대한 이야기가 잔뜩 들어 있는 만화였지만, 그 만화의 전모를 파악하기까지 40여년을 기다릴 수밖에 없었다. 중학생이 된 나는 일본 로봇 만화에 관해 어마어마한 지식을 자랑하던 우리 반 만화의 신이 “데즈카 오사무는 별로야. 애들이나 보는 만화지. 나가이 고와 마쓰모토 레이지가 최고야”라고 하는 거들먹거림을 어설픈 미소로 동의하고 그에게 <철완 아톰>의 일본 단행본을 빌려보았다. 가슴이 먹먹해지는 에피소드가 있었다. 그것은 ‘플루토 에피소드’와 제목이 기억나지 않는 다른 하나로, 극지로 악당을 찾으려 간 아톰은 자신을 구해준 소녀를 사랑하게 되는데 그 소녀의 오빠가 바로 자신이 찾는 악당이고 그는 생각만큼 악당이 아니라 인간들이 더 사악한 존재인 것을 깨달은 아톰이 마지막에 그와 싸워 그를 죽여야 하는 고통에 대한 이야기였다. 이 만화가는 시시한 만화를 그리는 사람이 아니었다. 인간의 고통을 그리는 만화가였다. 그는 어린이들이 보는 만화라고 허투루 하지 않고 자신이 두려워하는 죽음과 삶의 고통을 전력을 다해 만화로 그리는 사람이라고 생각했다.
대학을 졸업하고 빈둥거리던 시절, 날마다 술에 취해 친구의 화실에서 뒹굴고 있을 때, 라면 냄비 받침으로 사용한 탓에 표지에 김치와 라면 국물이 말라붙어 있고, 겉표지가 찢어져 너덜너덜해진 만화책을 만나게 되었다. <붓다>였다. 술이 확 깼다. 이 만화는 처음부터 끝까지 인간은 왜 죽는가. 인간은 왜 고통스러운 존재인가를 이야기하는 만화였다. 다음날 아직 술이 안 깬 상태로 해장을 하러 술집으로 달려가면서도, 배고픈 인간에게 줄 것이 없자 자신의 몸을 불태워 그 고기를 주려한 토끼 생각이 어른거렸다.
연민의 힘만이 구원이라는 믿음으로
세월이 흘러 데즈카 오사무의 <불새> <붓다>와 그의 대표작들이 천천히 국내에 정식 발매되었다. 나는 <불새>의 죽음과 고통에 관한 수많은 이야기 중 <망향>편을 가장 고통스럽게 읽었다. 먼 훗날, 우주 부동산 업자의 사기에 속아 자신들만의 별천지를 찾아나선 신혼부부가 척박한 어느 별에 정착하면서 새로운 인류를 만드는 거대한 이야기는 시작된다. 남편이 사고로 죽자 주인공 로미는 아들을 낳고 동면에 들어가 그가 성장할 때까지 기다렸다 깨어나 그와 관계해 자식을 낳는다. 근친상간 때문인지 여자아이는 태어나지 않고 남자아이들만 태어난다. 이대로 가다가는 인류는 멸종되고 만다. 그들 중 거대한 덩치의 식충이 사내아이 세이브는 로미를 혼자 차지하려 욕심을 부리고 화가 난 로미는 다시 동면에 들어간다. 세상의 단 한명의 여자. 어머니이면서 동시에 아내인 여자. 그녀는 끝없는 생산과 불멸에 넌더리가 난다. 어머니이면서 여자인 로미를 원하는 아들이면서 남자인 세이브는 화산의 분화구에 올라 자신의 간절한 욕망을 빌고 그 앞에 로미이면서 로미가 아닌 다른 외계의 생명체가 나타나 새로운 자손을 번식한다. 그리고 새로운 인류가 탄생한다. 불멸에 대한 가장 끔찍한 이야기 중 하나이면서, 인류의 탄생에 대한 이야기이기도 한 <망향>편은 인간의 삶과 죽음에 대해 이야기하려는 작가의 노력이 고통스럽게 드러나는 비극적인 에피소드다.
<붓다> 역시 죄를 짓는 인간들에 대한 장대한 이야기다. 세상의 어느 만화가 이렇게 인간의 죄와 고통, 죽음에 대한 두려움으로 가득 차 있을 수 있겠는가. <붓다>에는 나병 환자의 고름을 입으로 빨아 고통을 덜어주는 이야기부터 자신의 과거와 이름을 숨기고 다른 사람이 되었다가 파멸하는 이야기, 멸시와 증오로 사악한 마음을 갖게 되는 인간의 성장기 같은, 그가 만화에서 자주 그렸던 이야기들이 총망라되어 있다. 데즈카 오사무의 <붓다>가 감동적인 것은 마지막까지 붓다를 신으로 그린 것이 아니라 죽음을 두려워하는 인간으로 그려내기 때문이다. <붓다>의 마지막 장을 덮는 순간 고통받다가 죽어갈 인간들에 대한 연민의 힘만이 구원임을 끝까지 믿으며 우직하게 그려대는 잉크로 얼룩진 그의 손이 보이는 것 같았다.
월트 디즈니가 되고 싶었던 패전국의 의사 지망생 청년은 월트 디즈니가 비미활동위원회의 청문회에서 매카시의 오른팔이 되어 어마어마한 자신의 천년왕국을 건설한 것에 비해, 일생을 원고 마감에 시달리면서 어마어마한 양의 만화를 남기고 죽었다.
이제 그는 일본의 개그만화에 유쾌하게 등장한다. 오타쿠의 대선배 안노 히데아키는 돈을 벌고 제일 먼저 한 것 중 하나가 강담사의 데즈카 오사무 전집을 산 것이라 자랑하고, <괴짜가족>에서는 만화가 뱀파이어의 꿈속에 만화의 신으로 등장해 “만화를 우습게 여기지 말게”라는 말을 하고는 조용히 사라져 그가 누군지 모르는 뱀파이어를 어리둥절하게 만들기도 한다. 그뿐이 아니다. 일본 만화가들이 혹사당하는 환경의 예시로 70년대 그가 정점에 있었을 당시 어느 편집자가 그의 원고를 그의 눈앞에서 찢어버린 이야기가 전설처럼 떠돈다. 일본 만화계에서 혹사당하다 알코올중독자가 된 아즈마 히테오의 <실종일기>에 등장해 콘티 검사를 받지 않는 아즈마를 놀라워하며 편집자의 콘티 검사에 전전긍긍하는 모습으로 등장하기도 한다. 데즈카 오사무가 그의 자서전 말미에서 한 이야기로 그에 대한 글을 끝맺자. 데즈카 오사무는 화가 고야가 귀족들을 그린 그림에는 고야가 안 보이고, 고야가 시장통이나 악마들의 향연, 늙은 개를 그린 그림에서 관객에게 웃음을 선사한다며 이렇게 말한다. “이것이 만화가의 길이다. 권력이나 세력의 비호 아래서 만화가는 아무것도 할 수가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