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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TEP 03 고급. 우리 자신과 타자를 이해하기
송경원 2016-01-19

예술이 역사의 트라우마를 다루는 방식

<레드 툼>

어떤 영화는 잊힌 역사를 재조명하는 것으로 그 소명을 다하기도 한다. 하지만 우리는 영화가 결국은 사실이 아니란 점을 잊어선 안 된다. 영화는 허구와 재현을 전제로 하는 만큼 역사에 접근하는 방식에 대한 고민도 필요하다. 고급 과정에서는 영화가 역사를 다루는 방법과 영화의 윤리에 대해 살펴보려 한다.

<액트 오브 킬링>

<레드 툼>과 <액트 오브 킬링>

1949년 이승만 정권은 좌익인사를 계몽, 관리한다는 명목으로 국민보도연맹을 만들어 불특정 다수를 가입시켰고, 6•25 전쟁이 발발하자 이들이 인민군에 동조할지도 모른다는 불안감에 무차별 살해했다. ‘빨갱이 무덤’을 뜻하는 <레드 툼>은 국민보도연맹 학살로 가족을 잃은 사람들의 증언을 바탕으로 당시 상황을 생생히 되살려낸다. 국가에 의해 자행된 집단 학살은 그 자체로도 끔찍하지만 아무런 진상 조사나 관련자 처벌도 없이 그대로 묻혀버린, 현재진행형인 사건이라는 점이 더 참담하다. 기자 출신인 구자환 감독은 자신의 관점을 특별히 뒤섞지 않고 학살을 직간접 경험한 이들의 육성을 고스란히 담아 구술사적 기록을 쌓아나간다. 반면 1965년 인도네시아 킬링 필드를 다룬 <액트 오브 킬링>은 외부인인 감독이 적극적으로 개입해 당시 사건을 연극적으로 재현했다. 파격적인 형식이 주는 충격으로 여러 영화제에서 격찬을 받았지만 일방적이고 계몽적인 태도에 대한 반대 의견도 상당하다. 특히 죄책감조차 모르던 대상(가해자)의 무지를 이용하는 방식이나 외설적이고 비윤리적인 카메라는 한번쯤 생각해볼 문제다. 현재 구자환 감독은 <레드 툼2-우리들의 공화국> 제작을 위한 후원금을 모금 중이다.

<쇼아>

<쉰들러 리스트>

<쇼아>와 <쉰들러 리스트>

홀로코스트는 20세기 서구의 씻을 수 없는 트라우마다. 숱한 영화들이 이 끔찍한 사건을 소재로서 끊임없이 소환하는 건 어쩌면 상처를 직시해 애도하기 위함인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역사를 극화하는 시점에 이미 왜곡의 가능성이 포함될 수밖에 없다. 그런 면에서 클로드 란즈만 감독의 <쇼아>는 독보적이다. 무려 9시간30분에 달하는 이 다큐멘터리는 일체의 재현이나 기록 영상 없이, 오직 생존자와 증인들의 인터뷰만으로 채워져 있다. 현재시점에서 말할 수 있는 것만을 단 하나의 이미지로 담겠다는 클로드 란즈만 감독의 의지가 묻어나는 방식이다. 히브리어로 ‘절멸’을 뜻하는 ‘쇼아’라는 제목을 붙인 것도 그 때문이다. 완전한 부재의 증명을 통해 역설적으로 홀로코스트를 현재의 관점에서 보도록 유도하는 것이다. 그래서 란즈만 감독은 스티븐 스필버그의 <쉰들러 리스트>와 같은 재현을 격렬하게 거부했다. 란즈만에 따르면 <쉰들러 리스트>는 시각적 재현이 가진 스펙터클과 매혹에 경도된 볼거리에 불과하며 관객에 의도적으로 안전한 자리에 위치시켜 홀로코스트를 그저 과거에 머물게 만든다. 두 영화는 재현을 통해 과거를 뒤돌아볼 것이냐, 과거의 연장으로서 현재를 직시할 것이냐 하는 질문을 남긴다.

<노예 12년>

<링컨>

<노예 12년>과 <링컨>

미국 흑인 노예제도에 얽힌 실화를 바탕으로 했다. 한편은 노예제 아래 수난을 겪은 흑인 솔로몬 노섭(치웨텔 에지오포)의 체험을, 다른 한편은 노예제를 폐지하고자 하는 링컨 대통령(대니얼 데이 루이스)의 고뇌를 다룬다. 처한 입장도 상황을 조망할 수 있는 관점의 자유도도 전혀 다를 것 같지만 의외로 이 두 영화는 닮았다. 둘 다 인물을 중심으로 따라가고 불가항력적인 상황을 극복하고자 하는 의지를 그린다. 하지만 스티븐 스필버그의 <링컨>과 스티브 매퀸의 <노예 12년>의 결정적인 차이가 있는데, 인물의 고통(혹은 고뇌)을 얼마나 직접적으로 재현하고 전시하는가의 여부다. <노예 12년>은 솔로몬 노섭의 이야기라기보다는 스티브 매퀸이 관찰한 노예의 고난사에 가깝다. 실감나지만 평면적이다. 반면 <링컨>은 스필버그의 재해석이 확연히 들어갔음에도 링컨이란 인물의 심리적 입체감이 충분히 살아 있다. 두 영화는 역사와 실화를 다루는 데 있어 화자의 관점과 해석이 어떻게 조율되는지 비교해볼 좋은 사례다.

<암살>

<모던보이>

<암살>과 <모던보이>

일제강점기는 우리에게 이중적으로 다가온다. 근대 문물이 급격히 쏟아져 들어온 개화의 시기이자 식민 지배를 받은 굴욕과 회한의 시대이기도 하다. 2000년 이후 한국영화에서 일제강점기를 무대로 한 영화들은 이 두 가지 관점에서 선택의 기로에 놓인다. 2000년대 중반 유행했던 1930년대 배경의 영화들은 2000년 초부터 문화계 전반에 유행했던 경성에 대한 매혹의 연장선에 있다. <YMCA 야구단>(2002)을 시작으로 <청연>(2005), <라듸오 데이즈>(2007), <원스 어폰 어 타임>(2007), <모던보이>(2008) 까지 경성의 갓 유입되기 시작한 근대 문물과 소비문화를 소재로 한 영화들은 그 시절을 일종의 향수처럼 그리움의 대상으로 추억한다. 반면 최근 다시 눈에 띄는 일제강점기 배경의 영화들은 좀 더 역사적 인식과 인물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암살>에서 “알려줘야지. 우리가 계속 싸우고 있다고”라는 독립운동가 안옥윤(전지현)의 대사가 독립운동가들의 투쟁을 대변하는 것처럼 말이다.

<그때 그사람들>

<화려한 휴가>

<그때 그사람들>과 <화려한 휴가>

실화를 재현할 때 사건과 얼마나 거리를 둘지는 중요한 문제다. 임상수 감독의 <그때 그사람들>은 개봉을 둘러싼 법적 공방으로 표현의 자유에 대한 관심을 환기시킨 영화다. 하지만 그보다 이 영화를 빛나게 하는 건 시종일관 냉소적인 감독의 태도다. 이 역사적인 사건에 일말의 숭고함이나 비장함조차 허락지 않을 때 비뚤어진 권위과 부패한 권력에 대한 조롱이 폭발한다. 임상수 감독은 어느 편에도 서지 않는다. 말하자면 이 영화는 전혀 정치적이지 않다. 인물의 심리가 아니라 표면에 몰두하는 감독의 태도는 역설적으로 역사의 알레고리와 권위의 모순을 구체화하는 것이다. 그야말로 제대로 된 블랙코미디다. <화려한 휴가>는 좀더 대중적이다. 철저히 장르영화의 공식을 따르는 이 영화는 5•18이라는 사건이 아니라 그 속에서 뛰어다닌 허구의 인물이 품은 드라마, 인물의 개인적인 감정에 집중한다. 흥행적으로 불리한 요소가 될 수도 있는 다소 불편한 소재임에도 재조명하여 대중적인 화법으로 풀어내 저변을 넓혔다는 점에서 적지 않은 의미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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