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르면 간첩이다. 간첩도 권투선수 홍수환을 안다. 간첩이라면 모르겠지만, 남한 사람이라면 죄다 문성길도 안다. 모두 WBC 밴턴급으로 출발해서 각각 J 페더급과 S 플라이급에서 뛰었던 두 복서가 만약 대결을 한다면, 그것은 아마도 한국의, 한국인에 의한, 한국인을 위한 최고의 경기가 될 것이다. 하지만 강펀치의 인파이터 문성길과 비호 같은 풋워크와 여우 같은 지략을 가진 복서 겸 파이터인 홍수환의 활동시기는 무려 10년이나 차이가 난다. 권투팬들 좋자고 애꿎게 ‘선수’들에게 게임을 요구할 수도 없다.
하지만 영화에서는 그것이 가능해진다. 허종호 감독의 2001년작 <승부>(35mm, 컬러, 21분)는 그 홍수환과 문성길의 경기를 담은 영화지만, 시대배경은 둘 다 겨우 국내에서 10전 정도를 치른 시절이다. 물론 독립영화답게 조금은 실험적이고 단편영화답게 아우라가 흘러넘친다.
누구나 그렇겠지만 둘 역시 맞고 싶지 않고 쓰러지고 싶지도 않다. 특히 까만 눈망울의 여자아이가 있고 퀵 서비스를 해야 생계가 유지되는 문성길과, 애인 부모의 반대로 결혼을 미루고 있는 게다가 임신까지 덜컥 되어버린 홍수환은 더욱 그렇다. 동물적인 본능에서만 그런 것이 아니라 사회적으로도 절실한 것이다. 하지만 누구나 맞아야 하고 누군가는 쓰러져야 한다. 영화는 훈련된 동작을 절묘하게 찍은 경기 모습과 그들의 일상 그리고 다큐멘터리 터치의 인터뷰로 교차편집되어 있다. 누가 이겼을까? 그거야 영화를 보시면 안다. 그런데 두 가족이 삼겹살집에서 우연히 만나 합석까지 한다. 아, 삶은 가혹하다. 또 하나. <시뮬 시티>(박주한, 16mm, 13분, 1997)는 옛날(?)영화라서 그런지 좀 그렇다. 독립영화계의 3년은 다른 바닥의 10년과 같다는 생각이 든다. 이효인/ 영화평론가 yhi60@yaho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