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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가 다 말할 수 없었던 것들
윤혜지 2015-12-22

<히말라야>의 소재가 된 실화 이야기

산이 아닌, 사람의 이야기. 2005년, 휴먼 원정대가 히말라야 에베레스트에서 눈감은 고 박무택, 백준호, 장민 대원의 시신을 수습하러 가겠다는 숭고한 결단을 내린 것은 산악인들이 산으로 향하는 궁극적 이유가 결국 사람에 닿아 있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히말라야>에서 이동규 대장으로 나오는 실제 인물, 손칠규 원정대장에게 엄홍길 대장이 무전을 친다. 잔뜩 갈라진 목소리로 ‘무택이를 만났는데 도저히 함께 내려갈 수가 없어 동쪽 해 잘 드는 데에 묻어줬다’고 하는데 그 목소리가 강하게 각인이 됐다.” 엄홍길의 그 목소리가 주승환 프로듀서를 히말라야 설산으로 한발 한발 내딛게 만들었다. 실화의 위엄이 막강한 만큼 JK필름은 4년에 걸쳐 <히말라야>의 이야기를 다듬었고, 완결된 이야기로서의 구색을 갖춘 뒤에야 프로덕션에 제대로 시동이 걸렸다.

2004년 5월18일 오전 ‘2004 계명대 에베레스트 원정대’를 이끌고 에베레스트 정상에 오른 박무택 산악대장은 불과 한 시간여 만에 귀환이 어렵겠다는 소식을 전진캠프에 전했다. 당시 박무택은 함께 정상에 올랐던 후배대원 장민을 먼저 하산하라며 내려보냈다. 급격한 기상악화로 인해 산 아래에서는 도저히 박무택이 고립된 지점까지 구조대를 보낼 수가 없었고, 이에 박무택의 선배대원 백준호가 박무택을 홀로 버려둘 수 없다며 어둠 속의 에베레스트를 혈혈단신으로 올라 박무택을 만났다. 그리고 그길로 백준호, 박무택, 장민은 모두 불귀의 객이 되고 말았다. 박무택과 네 차례나 설산의 정상을 함께 올랐던 엄홍길은 그해 가을, 동료들의 시신을 수습하러 가겠노라고 휴먼 원정대를 결성한다.

<히말라야>의 큰 줄기는 실화와 같다. 하지만 관객은 엄홍길과 박무택의 관계가 얼마나 끈끈한지 알지 못한다. <히말라야> 제작진은 엄홍길이 숱한 부담을 안을지언정 박무택의 시신을 데리러 가야만 하는 근거를, 이 실화가 영화로 만들어져야만 하는 이유를 박무택의 인간적 매력으로 극화했다. 다큐멘터리로는 알 수 없었던 생전의 박무택의 모습을 배우 정우는 좀더 유머러스하고 싹싹하며 기운찬 인물로 해석했다. 주승환 프로듀서 말에 따르면, 유가족들은 “실제 박무택 대원의 성격을 잘 표현했다”고 말했다 하고 “하산 중 엄 대장의 다리가 뒤틀리는 사고가 생기자 박무택이 산 아래까지 엄 대장을 업고 내려왔다”고도 하였으니 실제로도 박무택은 온화한 성정의 인물이었던 것 같다. 영화는 주변 인물들의 심경 변화도 그냥 지나치지 않는다. 특히 실제 휴먼 원정대엔 없었던 여성 캐릭터들을 더함으로써 <히말라야>를 보다 균형 잡힌 영화로 바꾸었다. 라미란이 연기한 조명애는 영화에만 있는 오리지널 캐릭터다. 조명애는 휴먼 원정대에 동참하면서 “대장님이 무택이만 예뻐하시는 것 같아 서운했습니다”라고 말하며 영화가 중반을 넘어서는 동안 다른 대원들과 관객이 공통적으로 느꼈을 엄홍길의 박무택에 대한 편애를 지적한다. 자신이 여성이란 이유로 엄홍길의 등반 파트너가 될 수 없었던 것에 대해 드러내놓고 묻는다. 당황한 엄홍길이 진심으로 사과하면서 내내 인물과 관객의 마음에 걸렸던 응어리도 스르르 풀어진다. 엔딩에 이르러서는 어떤 ‘평등한’ 광경에 더욱 마음이 편안해질 것이다. 정유미가 연기한 박무택의 아내 최수영은 엄홍길이 끝내 박무택의 시신을 가져오지 못하는 상황이 닥쳤을 때 엄홍길과 대원들의 죄스러움을 던다. 실제 상황에선 “박무택의 시신을 얼음덩어리로부터 분리해내는 데만도 무려 세시간이나 걸렸”고, 혹한에 꽁꽁 언 탓에 특수제작한 보디백에 시신을 넣을 수도 없었다. “100kg이 족히 넘을 듯한 시신”을 두 시간 동안 운구한 거리가 불과 100m도 되지 않았다. 하산은 불가능했다. 하지만 관객은 이러한 사실 역시 모른다. 영화는 지난한 고행의 과정을 굳이 보여주지 않는다. 대신 (실제로는 네팔에 가지 못했던) 최수영을 베이스캠프로 불러와 원정대가 시신을 안고 돌아오지 못하는 이유를 관객에게 감정적으로 납득시킨다. 유선이 연기한 엄홍길의 아내 최선호는 가족에게도 아빠가 필요하다고 말한다. 산악인들을 바라보는 제3의 시선을 대신하는 것이다. 특수한 실화는 ‘보편’과 ‘평등’을 장착하고 ‘영화’가 되는 데 성공했다. (실제 있었던 일에 관하여서는 심산 작가의 <엄홍길의 약속>을 참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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