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1973년에 신문기자 노릇을 시작했다. 긴급조치와 유신통치의 시절이었다. 1979년 가을에, 박정희 대통령은 살해되었다. 80년 봄부터, 모든 억눌렸던 것들이 폭발했다. 그해 봄은 위태로웠다. 노동조합의 민주화와 근로조건의 인간화를 요구하는 시위가 연일 시가지를 마비시켰다. 그때, 나는 무력한 기자로서 현장에 있었다.
2002년 봄에 나는 다시 사건기자로서 현장으로 돌아왔다. 현장에 투입된 그날부터 공기업 노조들의 파업과 집회가 시작되었다. 철도노동자들은 건국대학교 운동장에 모였다. 봄바람이 흙먼지를 날렸다. 나는 이틀 동안 현장을 지켰다.
노동자들은 ‘민영화 반대’와 ‘24시간 맞교대 철폐’를 부르짖었다. 24시간 맞교대는 30년 전의 취재현장과 조금도 다르지 않았다. 또 24시간 연속근무에 따른 수많은 인간고의 문제도 30년 전과 다르지 않았다. 유신시대의 투쟁구호를 그들은 30년이 지난 후에도 여전히 외치고 있었다.
24시간 맞교대는 인간의 몸의 조건을 조금도 고려하지 않는 노동제도이다. 소나 말을 24시간씩 맞교대시킨다면 노동조건의 문제는 제기되지 않을 것이다. 몸의 조건은 평등하다. 24시간 맞교대는 하루나 이틀이라면 몰라도 그 직업을 생애로 삼아야하는 사람들이 몸으로 받아들일 수 없는 노동제도라는 것은 자명하다. 그 자명함에는 이념이나 노선이 끼어들 여지가 없어 보인다. 진보이기 때문에 24시간 맞교대가 부당하고, 보수이기 때문에 그것이 타당할 수는 없는 것이다. 진보나 보수를 내세우며 말을 소비하지 않더라도, 그러한 노동제도는 인간이 인간이기 때문에 감당할 수 없는 것이고, 인간이 인간에게 그런 방식의 노동을 요구할 수는 없는 것이고, 더구나 국가가 그 방식을 제도화해서 시행할 수는 없을 것이었다.
그토록 분명하게도 부당한 것들의 부당함이 보이지 않도록 가로막는 것이 이른바 이념이라는 것이었을까. 다시 돌아온 취재현장의 아우성과 흙먼지 속에서 나는 난감하였다. 노선과 지향성을 입에 담지 않더라도, 인간에 대한 가장 초보적인 감수성만이라도 작동되고 있었다면 이 사회는 한 시대의 무지몽매에서 벗어날 수 있었을 것이다.
노동자들은 30년 전의 투쟁구호를 여전히 외쳤다. 함성을 지르고 주먹을 내두르는 노동자들의 머리 위로 흙먼지가 회오리쳤다. 젊은 전경들이 길바닥에 쭈그리고 앉아서 식판을 끌어안고 점심을 먹었다.
30년 동안, 아마도 그보다 더 오랜 세월 동안, 이 사회는 앞서 넘어진 바로 그 자리에 계속해서 넘어지고 있구나, 흙먼지 속에서 점심을 먹는 전경들의 모습이 그런 생각들을 일깨워주었다. 나는 전경들이 밥을 먹는 거리의 중국식당에서 짬뽕으로 점심을 먹었다. 인공조미료가 역겨운 누린내를 풍겼다. 전경들의 식판 위로 먼지는 계속 날아들었고, 두부가 뜬 그들의 된장국은 바람 속에서 금방 식어버렸다. 인간에 대한 가장 큰 죄악은 인간에 대한 둔감함이라고, 그 역겨운 짬뽕 국물이 나에게 말해주고 있었다.
그 다음날, 노사협상은 타결되었다. ‘민영화 철회’는 쌍방의 입장을 세워가며 어물어물 넘어갔지만, 24시간 맞교대는 3교대 방식으로 개선해 나가기로 합의하였다. 노동자들은 작업장으로 돌아갔다.
철도 파업은 사흘 만에 끝났지만, 그 사흘 동안 막대한 경제적 손실이 발생하고 사회적 갈등은 증폭되었다. 그 경제적 손실을 화폐로 계산한 금액은 24시간 맞교대를 3교대로 바꾸는 데 드는 비용보다 더 많아보였다.
명백히 잘못된 것들을 고쳐나가는데, 이처럼 막대한 손실과 갈등을 대가로 치루어야 하는 것이 이른바 발전의 원리인 것인가. 어째서 인간이 인간의 말을 알아듣지 못하고, 인간이 인간의 몸을 들여다보지 못하고, 그 단순하고 명백한 사실에 따르지 않고, 아니라고 뻣대어가면서 한 시대를 허송세월하는 것일까. 인간의 말을 도저히 알아듣지 못하던 인간들이 어째서 한바탕 ‘본때’를 보이고 나면 비로소 말을 알아듣는 것일까. 기어이 ‘본때’를 보여야 명백히 그릇된 일들을 바로잡을 수 있다면 그 ‘본때 보이기’는 또 얼마나 고통스러운 것인가. 이렇게 살 수밖에 없는 것인지, 다른 길은 정말로 없는 것인지, 말의 힘과 말의 소통능력으로 현실을 조금씩 바꾸어나갈 수는 없는 것인지…. 흙먼지 속에서 마감시간은 다가오고 있었다.
노동조건의 개선을 절규하는 무수한 담론과 소설과 시와 음악이 있었다. 결국 개선은 ‘본때’의 힘에 의해 이루어졌다. 노동자들의 성취 내용을 송고하면서 늙은 글쟁이는 비통했다. 말로 세상을 바꾸는 일은 이처럼 어려워야 하는가.김훈/ 소설가·한겨레 사회부 기자 hoonk@hani.co.kr